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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an 23. 2024

브런치 연재 2개월 미룬 자의 긴 변명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건 

2023년 9월,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미를 거쳐 남미에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도시에선 일주일, 한달살기를 하며 천천히, 기약없는 여행으로 남미를 돌고 있어요. 


브런치북 연재가 일부 크리에이터들에 한해 시범 적용했을 당시, 감사하게도 여행 크리에이터로서 9월 중순부터 우선 연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원래는 마침 멕시코부터 시작해서 기약 없는 중남미 한달살이 & 여행을 하고 있는 차였기 때문에 스스로 꾸준히 글 쓰는 습관을 들일 겸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범 연재로 글이 노출되는 창이 하나 더 생기면서 구독자들이 단기간에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면서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는 매주 수요일 연재로 시작했던 연재 브런치북을, 나중엔 욕심이 생겨 매주 월, 목 연재 브런치북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주 3일 연재를 하는 게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느긋하게 여행하는데 조금 일찍 일어나 글을 작성하는 루틴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브런치 작가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도전해 볼 법한 '무라카미 하루키 글쓰기 습관'을 한번 나도 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쓸 자신은 없다. 하지만 트레킹이나 도시 간 이동을 수행하는 일정이 아니라면, 오전 7시쯤 느긋하게 일어나 간단하게 커피 내려놓고 브런치 글 쓰는데 두어 시간 투자하면 되겠다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리고 약 2달간은 그래도 이 루틴을 꾸준히 유지했다. 


시차가 정반대인 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로서는 매번 한국시간에 맞춰 브런치 시간을 발행해야 했는데 예약 발행 기능이 없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종종 적지만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대체 내가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해외에서 뭐하는지 궁금한 지인들에게 "나 요새 이런 글 써"라고 알리는 명분이 되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행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꾸준히 할 수 있는 동인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세사기를 당해도 새벽 4시에 글을 쓸 수 있을까



2023년 11월 30일 브런치 북에 부랴부랴 연재글을 올리고 1월 23일까지 글을 올리지 못했다. 변명을 대자면, 12월 초 예상치 못한 전세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 전세 사기까진 아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장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처지였다. 


메시지를 통해 집주인과 법까지 운운하며 언쟁이 지속되었고, 내용 증명까지 알아보며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 함께 여행하는 남자친구 C와도 갈등이 생기면서 일종의 번아웃이 생겼다. 


마음이 복잡해지니, 여행을 해도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일주일 단위로 빌린 숙소에서 3일은 밖에 밥 먹으러 갈 때 빼곤 방에 박혀 현실을 도피했다. C와 함께 밖에 나가 밥을 먹거나 하이킹을 해도 나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는 다른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 유럽 출신인 C에게선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정말 중요한 문제였는데 나에겐 크리스마스고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을 요리하고, 어떤 것을 할 것인가 재잘재잘되는 C의 말에 내가 무뚝뚝하게 대응하니 C는 종종 화를 내곤 했다. 


집 문제는 12월 한달간 지속되었는데 한 번 문제가 터지니,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고요한 마음 가짐에서 글쓰기는 할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세사기고 뭐고 이런 걸 안 당해봤을 거야. 이런 일을 당해도 그는 새벽 4시에 멀쩡히 일어나 글을 쓸까"라며 괜히 내가 개인사로 인해 글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자위했다. 


물론 그 와중에 매일 브런치북 연재를 놓칠 때 뜨는 알림을 보면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브런치앱에 떠있는 숫자 알림을 애써 무시하며 1개월 넘게 브런치 앱에 들어오지 않았다. 




페루 아레끼파 광장에서 카운트다운 

새해를 시작하며 글을 다시 쓰자라고 다짐했다. 다행히 집 문제는 원활하게 해결됐다. 하지만, 이번엔 C에게 직장 관련 분쟁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C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기 시작했다. 1월 1일 페루 아레끼파 광장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터뜨리고 소리 지르며 사람들과 춤추며 "행복한 신년 (Feliz año nuevo!)"을 외쳤던 게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1월 첫 주부터 우울했다. 


C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온라인으로 스페인 회사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낮에는 잠을 잤다. 그래도 페루 마추픽추나 몇몇 하이킹을 할 때는 기분 전환되고 좋았으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점점 C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스트레스받을 때 그가 묵묵히 참고 견뎌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최대한 C의 기분을 존중해 주며 그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다. 요새 입맛이 없다며 좀처럼 식사를 하지 않는 C에 나는 다시 밖에 나가서 혼밥 하기 시작했다. 


혼자 숙소 밖에 나와 페루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을 입에 욱여넣고 천천히 씹어먹고 있는데 눈물이 나왔다. 내 여행의 즐거움의 8할은 원래 현지 음식 즐기고 알게 된 것을 글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이번달엔 음식을 즐기기보단 허기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는 사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손가락이 무거워져 연재 글을 계속 미루면서 생기는 죄책감, C와 내가 여행을 계속 같이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볶음밥과 함께 나온 완탕 국물이 식어 차가워질 때까지 좀처럼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고 다음 들어온 손님들도 식사를 마칠 때쯤에야 난 계산 하기 위해 일어섰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중 자유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시 글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래서 2024년 신년을 맞이하고 하는 결심치곤 다소 늦었지만, 이번주부터 미룬 연재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전에 2개월간 글을 쓰지 못한 이유라도 올려야 할 거 같아, 중국집 옆에 있는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확실히 글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세 시간째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쓰면서 천천히 글을 쓰는데 이것만으로도 뭔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 중 하나가 내려간 기분이 든다. 아무리 손가락이 무거워진다 한들, 글은 다시 써야겠다. 지난 2개월의 나를 반성한다. 





<연재 중인 브런치북> 

일탈 속 일상 https://brunch.co.kr/brunchbook/nomatravel 

캐리어보다 배낭이 편한 여자 https://brunch.co.kr/brunchbook/backp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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