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box Jun 07. 2021

하나_ 상민 씨, 당신의 내일은
백지처럼 하얗길

첫 번째 인터뷰 (한상민, 40세)

나와 내 사람들의 인터뷰, 아카이브북 만들기. 

듣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와 기록.


그 첫 번째는 나의 육아 동지이자 몇 살 많은 친구인 상민 씨다.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로서 나는 그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그의 격렬한 반대와 함께 인터뷰는 시작됐다.


1.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내 사람들을 인터뷰하자, 마음먹은 뒤 시작한 첫 일정 그리고 첫 질문이었다. 상민 씨는 갑자기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어느 정도 예상되는 ‘갑분눈물’ 타임이 있기는 했지만 첫 질문부터 이런 시간을 마주할 줄은 나도 몰랐기에.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안도감도 있었다. 아, 평범한 인터뷰는 아니겠구나. 상민 씨는 한숨이 나온다 했는데 조금 미안하게도 나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 싫어. 갑자기 눈물 나. 나는 나 자신이 없어서… 지금의 나? 글쎄… 그런 게 없어. 이름은 있는데 딱히 어떻게 난 누구다 그런 게 없으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한상민이라고 해요.’ 그런 거밖에 없으니까. 다른 사람은 본인 특징 얘기하잖아. 그런 게 없으니까 좀 씁쓸하다. 서글프다. 왜 한숨부터 나오지. 난 내 얘기하면 슬퍼. 안 하면 안 돼?”

          

오늘, 최대한 멀리 가고 싶다고 했는데   

“바람이 쐬고 싶었어. 집밖에 없잖아, 있는 데가. 혼자서 멀리 가면 청승맞아. 되게 청승맞아. 바람을 쐬러 가도 커피숍에 가는 게 너무 청승맞아. 어디 가서 나는 만약에 간다면 커피 사가지고 차에 가서 마시고. 그게 너무 좀 쓸쓸한 게 외로운 게 싫어. 늘 어딜 가면 멀리 가진 않아도 애들 데리고 가고 늘 누군가를 데리고 가서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게 있겠지.”    

 

혼자 있는 시간을 되게 원하는데 왜?     

“그렇지. 원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거지. 즐기는 방법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그냥 나 집에서 애들 다 보내고 집이 되게 지저분해. 애들이 가져오는 장난감 핀 어질러져 있고 옷도 벗어놓고 간 그대로고. 보면 멍때려 잠깐. 그러다 보면 정신 번쩍 차리고 애들 오기 전에 얼른 얼른 뭐뭐 해야지, 그 시간을 즐길 수 없어. 그러다 보니까 익숙하지 않고 하는 것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건?     

“혼자 있으면 하고 싶은 거? 아무것도 없어. 그게 나는 아직까지 내가 뭘 하고 싶다 그런 게 없어. 다른 사람들은 막 책을 읽거나 본인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 많잖아. 예전에 우리 애들 아빠가 나한테 애들 보내고 나서 시간 그냥 보내지 말고 운동을 하든 뭘 하든 개인 취미생활 가져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너무 빡세. 내가 난 여러 번 얘기하는데 체력이 필요해. 애들 케어할 수 있는 내 체력이 필요해. 애들 오잖아, 너무 정신없어. 애들 봐가면서 타이레놀 두통약을 먹어. 너무 머리가 아파. 여러 가지 신경 쓰다 보니까 내 체력도 안 되고 머리도 복잡하고 힘들고. 그러니까 주말이면 꼭 약을 먹어, 타이레놀. 너무 머리가 아파. 특히 내가 주말에 비 오면 아예 나가지를 못하잖아. 그러니까 주말 되면 늘 타이레놀 달고 살아. 두 알씩 먹었어, 토요일 두 알 일요일 두 알. 너무 머리가 아파.”          



2. 머리 안 아팠던 시기의 상민 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랬다. 나와 상민 씨는 서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만났다. 우리 둘은 너무 익숙한 지금의 서로를 전부로 알고 살아가지만, 나는 문득 상민 씨의 20대가 궁금해졌다. 20대의 상민 씨는 어떤 자기소개를 했을까. 그의 인생에서 타이레놀이 필요 없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인생에서? 결혼하기 전. 근데 애들 아빠는 나 만나서 행복하대. 나랑 결혼해서 고맙대.(웃음) 스물다섯 살 이후에 김포 쪽에서 일하다가 시골 부모님집으로 내려와서 그때 1년 정도 쉬었을 때. 1년 정도 쉬었는데 그때 집에서 터치 안 하고 술 마셨을 때. 나 술을 되게 좋아했어. 방에 캔맥주 나뒹굴 정도로 좋아했어. 낮에는 부모님 도와드렸지. 농사지으시잖아. 낮에는 같이 밥도 해드리고 간식도. 참이라고 해, 참도 갖다 드리고. 낮에는 참 갖다 드리고 같이 한 잔씩. 스물여섯 정도 됐을까. 그때 회사 그만두고 내려와가지고 그때가 되게 좋았어. 엄청 재밌었는데. 그때 회사 다닐 때는 꼭 그런 게 패턴이 있잖아. 술 먹더라도 꼭 출근해야 되고 그런 게 있잖아. 그리고 친정 내려왔을 때는 그때 1년 정도 술 먹는다고 누가 뭐라고 안 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까?     

“그때는 그렇게 안 살 거야. 너무 좋았는데 몸이 망가져. 나 한때는 우리 언니가 조카를 데리고서 왔었어. 병원에 예방접종 하러 갔는데 거기 병원 간호사가 나보고 필리핀 사람이냐고. 그러니까 그 정도로 많이 그랬지. 우리 언니가 웃겨 죽는 줄 알았어. 그런 말까지 들을 정도로 많이 꾸미지 않고 너무 프리했지. 그때 선크림도 안 바르니까 너무 까매져가지고. 근데 재밌었어, 그게. 아빠 엄마가 맨날 봉지째 캔맥주가 봉지째 나오니까 그때는 주량이 좀 그랬지.”     


그때의 ‘나’를 위해서 뭘 하고 싶은지   

“그때로 다시 가면? 취미생활을 그때 해가지고 만들고 싶어. 하고 싶어, 취미생활. 시골이어도 취미생활을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나가서, 차 타고 나가서 취미생활 내가 즐길 수 있잖아.”      


과거로 돌아간다면, 상민 씨는 ‘지금’을 위한 준비를 하려는 것 같았다. 지금 하지 못하는 취미 만들기도 미리 해 놓고, 즐길 수 있는 삶을 조금 준비해놓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가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의 나를 위한 취미를 만들겠다는 그의 답을 들으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상민 씨는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가엾은 지금의 나를 위해 취미를 만들자, 지친 지금의 나를 위해 그때 준비해두자, 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조금 아팠던 것 같다.  



3. 상민 씨의 결혼, 그 이상에 대하여


인터뷰에서 상민 씨는 다시 돌아간다면, 결혼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결혼을 안 하겠다는 그의 말은, 지금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더는 사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온 힘을 다하는 그의 삶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자신을 위한 곳에 조금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 그의 사랑은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희생’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음 생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으로 쓰고 싶다고 말하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리라.     


“내 바람은 그냥 평범해. 다른 사람처럼 평범해. 퇴근 시간 정해져 있고 주말이면 애들 데리고 나가서 가까운 데 가서 같이 놀고. 근데 그게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바라는 건 그거.”     


환경을 알고 결혼한 건데     

“알고 결혼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던 거지. 가게가 괜찮아지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하면 주말이건 월요일이건 규칙적으로 쉬고 가까운 데 애들 데리고 나갔다 온다, 쉰다 했는데 계속 사정이 안 좋아지니까 작은 바람도 이루어지지 않는 거지. 더 각박해지고 애들 아빠는 일하는 게 힘드니까 내가 힘든 걸 얘기 못 해.”  

   

지금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돈. 돈이 자꾸 힘들게 해.”    

 

돈만 있으면 해결되나?     

“아니지. 돈만 있으면 애들 키우는 것도 아니고. 돈 다음은? 애들. 애들이 뛰지 않았으면 좋겠어. 애들 집에 오면 뛰지 마라, 시끄럽게 하지 마라, 그거야.”     


그다음에 하고 싶은 건      

“취미생활 갖고 싶어. 몸으로 하는 거. 요가나 자전거로 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댄스는 안 되고 내가 몸치다 보니까. 예전에 나도 취미생활 갖고 싶어서 수영장 알아보려고 했더니 그때 내가 중이염 걸려가지고 귀 아파서 열 나서 병원 다니고 그랬거든. 그래서 흐지부지해서 넘기고. 근데 지금은 다니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몸이. 나도 나한테 투자를 하고 싶어. 나는 내 옷을 산 적이 없어. 애들을 데리러 가도 옷이 나는 많이 안 바뀌어. 근데 그 돈 갖다 나한테 투자하는 대신에 애들 옷을 사고 애들 먹여주고 그러거든. 그게 후회가 안 돼. 그게 더 좋아. 나보다 애들이 더 이뻐 보이고 좋아 보였으면 좋겠어.”     


내가 아는 상민 씨의 모습은 딱 이랬다. 아이들 살뜰히 챙기고, 부지런하고, 그 안에서 소소하게 웃는 얼굴. 물론 그것이 상민 씨의 모습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지금 우리 둘 삶에서 육아가 가장 큰 일은 맞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인 삶은 아니길 바라는, 아니고 싶은 마음.      



4. 아이 셋의 엄마상민 씨의 하루는?     


처음 인터뷰를 계획했을 때, 나는 아주 단순하고 무식하게 이 질문을 타이틀로 했었다. 아이 셋의 엄마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 그런데 돌아보니 이 문장은 참 모순적이었다. 아이 셋의 ‘엄마’로서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찾는 것은 뭔가 부조화스러웠다. 그런데 또 너무 익숙한 모습이니 당연한 질문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답정너’밖에 안 되는 질문 같으면서도. 지금 생각해도 이 말은 참 단순하고, 무지한 질문이 아닌가.      


“힘들어. 고달퍼. 신경 써야 되는 것도 많고 애 하나하나 성향 같은 거 챙겨야 되고 파악해야 되고 하니까. 그리고 지금 애들이 어려도 많이 예민하잖아. 특히 지은이 여자애다 보니까 예민하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힘들어. 근데 힘든 건 힘든 거고 좋은 건 좋은 거지. 아직까지는 힘든 게 더 커. 힘든 게 더 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으니까.”    

 

언제쯤 나아질까   

“그걸 내가 생각을 안 했다. 주변에서는 딱 그러잖아, 지금 어리고 힘들어도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다 괜찮아진다고. 그거 다 아니야. 그거 다 거짓말이야. 괜찮다는 말 거짓말이야. 믿으면 안 돼. 작은 희망을 주느라고 하는 말이지, 그렇지 않아. 오히려 초등학교 가면 그거에 맞게 애들 키워야 되니까. 그거 다 거짓말이야.”     


그럼 애 셋의 엄마로서 힘든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그때쯤.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 5학년까지 가면 괜찮을 것 같애.”      


그럼 몇 살이야, 50인가?

“나 이제 내가 지금 마흔이잖아. 자꾸 나이 얘기하면 서운해, 하지 마.”     


10년 후에 취미를 찾을 수 있겠네     

“그전에 간간이 만들어야지. 이것저것 해봐야지. 내가 관심 있는 거를 몇 개 해가지고 한 번씩 해봐야지, 찔러봐야지. 지금은 못하겠어. 모든 상황이… 그땐 나아질 거라고 믿어. 나아졌으면 좋겠어. 제발 정말 어디다 기도드릴 거야. 그 정도로.”     


50에 취미를 찾으면 그전 나의 30대 40대가 너무 아깝지 않나    

“난 지금도 아까워. 난 지금도 아깝고 후회하고 있어. 집에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가만히 다른 사람 주식하듯이 예를 들어서 소소한 거라도 뭔가 했어야 되는데 그런 걸 못 찾으니까. 나 애들 보내고 나서 자. 너무 힘드니까. 난 나한테 나도 투자하고 싶어.”     


올해 하고 싶은 게 있을까     

“나의 바람은 많지, 다 소소하지만. 우리 가족 다 여행 가고 싶어. 그냥 언제인지 기억 안 날 정도로 재작년 애들 다 데리고서 청주에 동물원 있잖아. 거길 잠깐 갔다 왔어. 갔다 와서 애들 아빠 출근했다. 그런 거 말고. 난 그냥 되게 바람이 크지 않아. 로또가 된다든지 집이 하나 생긴다든지 그게 아니라 되게 소소해 나는. 그게 안 되니까 우리는 그게 안 되니까 소소한 것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행. 여행 갔으면 좋겠어. 너무 답답해.”     



5. 상민 씨의 30대를 보내주다


올해 마흔이라는 숫자를 마주한 상민 씨. 나는 상민 씨에게 짓궂은 동생이다. 마흔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놀리는 내게, 상민 씨는 진심으로 우울하다고 말했다. 그저 나이가 차곡차곡 쌓여서 오는 우울함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그의 30대에는 여러 색깔의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그저 힘들다는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그렇지만 꼭 한번은 풀어내야 하는 그 감정들이 가득했다.     

 

지나간 30대 세월에 하고 싶은 말은     

“고생했다고, 잘 버텨줬다고. 잘 버텨줬지. 너무 기특해, 내 자신한테. 30대가 정말 힘들었어, 유난히… 그러니까 30대 이전에는 되게 재밌었지. 뭐가 있어도 재밌었지. 별 헤프닝 다 있었는데 딱 30대가 정말 힘들었어. 너무너무 힘든 30대였어. 나 30대 다시 가라면 죽어버릴 거야. 그 정도로 30대가 싫어.”     


이미 갔으니까 다행이네     

“다행이야. 30대가 너무너무 싫어.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는데 너무 힘든 30대였어. 앞으로가 좀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이제 40대 시작이잖아. 좀 나아졌으면 좋겠어. 너무 힘들었어. 30대 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너무 힘들었어. 지쳤어.”    

 

그 시기는 무슨 색 같아?  

“검은색. 솔직히 말할까 검은색도 아니야. 검은색이랑 회색이랑 막 어두워. 칙칙해. 어두운 색이란 색은 다 섞여 있는 그런 색. 검은색은 그래도 색깔 자체가 있잖아. 그런 색도 아닌 그냥 어두운 색 다 섞어 놓은 그런 색깔.”     


예쁜 애들 셋이 태어났는데     

“그거랑 별개로. 애들은 애들이고 난 나잖아. 내가 애들 엄마이긴 해도 난 나잖아. 그래서. 난 언제까지나 애들 엄마일 수는 없는 거잖아.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누구 엄마 말고 나도 내 이름이 있으니까. 나는 소연이 네가 내 이름 불러줬을 때 내 이름 한상민 좋아. 내 이름 불러주는 게. 내 이름 불러주는 사람 별로 없어.”   

  

다시 내 소개를 한다면     

“다시 하라고 해도 내 이름, 나이 이거밖에 없는 거야. 내가 뭐 취미생활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 엄마 그거밖에 없는 거야. 난 내 얘기 별로 없어, 똑같애. 소소해. 내 얘기 하래서 내 얘기 할 만한 게 없는데… 처음에 살짝 울려고 했던 게 내 자신 얘기할 게 없는 거야. 살아온 게 내 살아온 게 특별한 것도 없고 소소하게 얘기할 것도 없고. 나? 나를 어떻게 소개하지. 그 생각밖에 없는 거야.”     


‘아이 엄마’도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말인데 왜 그건 싫은지   

“그게 어딘가에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니까. 그게 무슨 타이틀이 될 수가 있어. 내 소개니까… 없으니까 그게 너무 서글퍼. 뭔가 특별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뭔가 내 소개할만한 게 없어. 어떻게 해가지고 뭐뭐입니다, 그게 없어. 뭐 잘하는 한상민입니다, 아니면 내 성격이라든가 아니면 당당하고 활기찬 한상민입니다,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게 아니라서 소개할만한 게 없어서.”    

 

미래의 자기소개 희망사항은?     

“나의 희망사항. 앞에 어디서 뭔가 어떤 걸 즐기고 있는 한상민입니다. 그런 거 있잖아.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한상민입니다.’ 애들만 키우는 게 아니라 나의 취미생활을 잘 즐기고 있는 그런 타이틀을 갖고 싶어. 그때는 너무 애들한테만 올인하는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첫번째 인터뷰를 마쳤다. 예상보다 훨씬 묵직했고, 또 의미 있었고 우리에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한번 상민 씨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인터뷰에서 상민 씨는, 자신의 30대가 온통 어둠이라 했다. 그런데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인터뷰 당시 하지 못했던 나의 말을, 지금 전한다. 그녀가 칠흑으로 느꼈던 10년은, 온몸으로 빛을 만들어내던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눈에 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봐야 할 가족이 많아서 정작 자신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10년이었다. 스스로를 보지 못한 시간이라 상민 씨는 자신의 30대를 어둠으로 느꼈겠지만, 자신도 보지 못한 채 달려온 그에게서 어떻게 빛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 펼쳐지게 될 40대도 천지개벽하듯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상민 씨의 스케치북의 또 다른 페이지는 하얀 백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오늘도 너무나 피곤할 상민 씨가 이 인터뷰를 읽는 지금은 반짝이는 자신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내 글이 그의 40대를 여는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스케치북은 새로 시작됐다. 지나간 그림은 잘 간직하고, 한 번씩 열며 추억하면 된다. 한상민이라는 이름이 쓰인 스케치북 안에는 아직도 그리지 못한 도화지가 가득하다. 그 도화지의 그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새로 시작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상민 씨, 우리 오늘도 내일도 새 도화지 안에 마음껏 그려 봅시다. 백지처럼 하얀 당신의 40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5년 뒤 10년 뒤에도 상민 씨의 인생 그림을 인터뷰로, 꼭, 함께  담아 보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