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터뷰 (윤정아, 37세)
나와 내 사람들의 인터뷰, 아카이브북 만들기.
듣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와 기록.
두 번째 인터뷰는 철없는 시절을 함께했고, 여전히 철없는 시절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 정아 씨다. 정아 씨와의 인터뷰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우리의 과거사는 ‘추억팔이’ 아닌 ‘목격담’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목격했던 20대, 서로의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해 놓는 오늘은 그래서 참 벅찬 밤이다.
“서른일곱살 서울 사는 직장인입니다.”
요즘 근황은
“근황이랄 게 그냥 맨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유튜브 보다 자는 거. 항상 똑같지 뭐.”
일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내가 요즘에 방탄에 빠져가지고 그걸 보는 게 제일 재밌지.”
(대박) 어쩌다가
“그냥 처음에는 노래를 듣다가… 근데 이 과정이 내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처음에 노래를 듣다가 그중에서 좀 특이한 목소리가 있었어. 그래서 걔를 이렇게 찾아보다가 걔네들 이제 달방이라고 하는 예능이 있어. 고걸 보다가 아 얘들 너무 귀여운 거야. 그러다가 무대 보다가 이걸 반복했지. 무대와 예능 무대와 예능. 너무 귀여워.”
언제부터
“올 초. 나 아미 하려고. 지금 사실 아미인데 아직 멤버십 가입을 못했어.”
무슨 차이지
“어쨌든 팬은 팬인데 그 팬클럽 가입을 안 했다는 거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가입을 안 했으니까 아미라고 해도 되는진 모르겠어. 근데 암튼 나는 방탄 팬이긴 팬이야.”
돈도 쓰고?
“아니. 아직 돈은 안 들였어. 근데 들여야 될 거 같아. 일단 멤버십 가입하고… 콘서트 하면 가고 싶은데 사실 이번에도 언택트 공연 같은 게 있는데 그걸 지금 결제를 할까 말까 생각 중이야. 얼마 안 남았는데. 영상을 그 시간에 맞춰서 스트리밍 하는 건데 양일로 가면 이틀 하는데 이틀 다 하면 한 9만 원 정도. 걔네 영상도 어떤 거는 보려면 돈 내고 봐야 되는 영상도 있어. 돈 많이 벌어야 돼, 덕질하려면 돈이 필요하거든.”
왜 좋을까
“애들 너무 귀여워. 귀여운데 무대 너무 잘하고 그건 네가 한번 봐야 돼, 영상을 한번. 아 진짜 한번 봐봐. 무대 영상을 보고 걔들이 예능을 따로 걔네 자체 예능을 하거든. 그거를 보고 애들이 너무 예쁘고 착하고 착한 데 웃기고 웃긴데 또 멋있고 그래. 다 예쁘고 예뻐 죽겠다고. 내가 클라우드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데 걔들이 광고해가지고 클라우드를 마셔 봤다니까. 그런 느낌인 것 같아, 내 새끼 키우는 느낌.”
집에 있어도 꿀잼이네
“그래, 난 항상 행복해. 집에만 있어도 방탄이 함께 있고 아미가, 그런 커뮤니티 같은 게 있어.그래가지고 팬들이 맨날 예뻤던 영상이나 짤 같은 걸 막 올려주거든. 그것만 봐도 너무 재미있어.”
서로 사는 거주지가 다르고, 코로나 시국이라 더 그렇고 여러 이유로 인해 못 만나다가 인터뷰를 핑계로 서울에서 정아 씨를 만났다. 인터뷰에서 뜻밖에도, 예상치 못한 정아 씨의 근황을 마주했다. BTS라니. 앞으로 연재할 인터뷰 대상자들 중에서 BTS로 시작하는 근황은 아마 처음이지 마지막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월드스타의 위엄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인터뷰의 문을 열었다.
“그냥 30대 이후로는 멈춰 있는 느낌이랄까. 발전해 가는 그런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사실 뭐가 더 큰 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변화 없이 그냥 변화 없이 흘러가는.”
이십 대는 어땠나
“이십 대 때는 맨날 뭐 작심삼일 이거 하고 싶고 저거 하고 싶고.”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는 거네
“그렇지. 근데 이게 안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항상 불안은 한데 의욕이 없으니까 뭘 하고 싶지도 않고 약간 의미 없이 사는 느낌이야.”
왜 그럴까
“사는데 목적이 없으니까. 어쨌든 하고 싶은… 이걸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이걸 해서 여기까지 도달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이 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막 뭘 열심히 해서 내가 여기에서는 얼마큼 하고 싶다 이런 게 없으니까.”
제일 최근에 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게 없어. 그러니까 근 몇 년 동안 계속 없었어. 이게 그냥 의미 없이 사는 느낌. 그냥 하루를 보내는 느낌.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해서 퇴근해서 놀다가 자고 이게 그냥 계속 똑같잖아, 사이클이.”
그러다 보면 우울하진 않은지
“우울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우울보다 약간 무기력에 가까운데, 비슷한 것 같아. 우울한 느낌이나 무기력한 느낌이나 비슷한 것 같아. 약간 이런 느낌이야. 죽고 싶진 않지만 어차피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이런 느낌.”
아무 맛이 없는 거지
“응. 지금 삶에 크게 불만이 있다거나 이런 게 아닌데 그냥 재미가 없어, 사는 게. 좀 이상하네. 방탄을 볼 때는 재미있긴 한데. 말하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 방탄을 볼 땐 재밌지, 그런데 이제 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좀 그래.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일은 어떤 의미인지
“사실 의미가 없지, 그냥 돈을 벌기 위해 수단이지. 보람은 없어. 옛날에는 그냥 어떤 일은 재밌기도 했었던 것 같아. 근데 지금은 사실 같은 데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까 더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똑같은 일의 반복이고 지루하고 이게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더 막 대하는 느낌. 그런 것도 싫고 그냥 일은 진짜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거지. 옛날에 약간 애사심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싶고 이런 게 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진짜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내가 이 회사에 굳이 내 에너지를 많이 쏟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그녀의 말이 무슨 느낌인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랜만에 통화하면 다른 곳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혹은 이직할 곳이 정해졌다는 안부가 정아 씨에겐 참 자주 들렸었다. 물론 30대 초반쯤까지의 일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직장 생활의 불만, 동료와의 불만으로 우리는 함께 흥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정아 씨와의 대화에서 언제부턴가 그런 ‘화’가 멈춰졌다. 아마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정아 씨는 기대도 목적도 사라진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직접 현실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그녀에게 참 씁쓸한 일이었겠구나,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정아 씨의 인터뷰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과거’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과거? 내 과거… 막 그렇게 딱 바로 떠오르는 게 없네. 그냥 너랑 같이 있으니까 옛날에 그거 생각난다. 우리 기타 사가지고 그 약간 무슨 궁 같은 데 가가지고… 그거 생각나네. 나는 근데 그날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 되게 신났던 것 같아. 그 뒤로 기타를 배우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날 기분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 그 기타를 들고 그 궁 같은 데 간 게 좀 어두울 때였어. 그때가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을 때였어서… 맞아, 그때가 제일 좋았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고. 꿈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고 다 재밌어 보이고.”
왜 지금은 재밌는 게 별로 없을까
“그러니까. 지금 뭘 배워도 그게 되게 신나서 배우는 게 아니라. 재미는 있겠지, 그런데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아. 들뜨고 설레고 이런 느낌은 아닌 것 같아. 지금 뭘 배운다고 해도.”
지금까지 선택 중 제일 잘한 건
“나는 그래도 작곡을 배운 거는 정말 잘한 것 같아. 난 그때 되게 좋았어, 학교에 들어간 거. 그냥 그게 완전 그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잖아. 내가 여태까지 했던 거랑 완전 다른 거였고. 학교에 들어가서 그런 과제 작품 하거나 이런 것도 너무 좋았고. 어린 친구들이랑, 내가 스물여덟이었는데 스무 살 애들이랑. 애들이 너무 착한 거야. 좋았지, 다 좋았어. 그때 기억은 다 좋았어. 그때 작품 내고 이제 다 같이 모든 학년이 다 모여서 거기서 내 작품을 연주하고 교수님 평가하는 게 있거든. 그때 나 교수님한테 엄청 까였거든. 근데 그것도 좋아.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좋아. 재밌어. 근데 1년도 채 안 됐지. 2학기 중간에 그만뒀으니까.”
다시 기회가 있으면 가고 싶은지
“그러니까 배우고 싶기는 해. 학교를 갈 수 있으면 당연히 좋긴 하겠지만 그때도 사실 내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애들이 잘 배려를 해줘가지고 다니긴 했지만 지금은 나이 차이가 더 너무 많이 나잖아. 그러니까 학교를 가서 거기서 적응을 하고 애들이랑 같이 과제를 하고 이렇게 즐기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기회가 되면 배우고는 싶지. 좋을 거 같애. 아 그때 막 내가 작곡하고 이럴 때 너가 가사 쓰고 내가 곡 쓰자고 했는데.”
우리는 한참을, '그때'를 회상하며 웃었다. 웃다가 나는 조금 씁쓸해졌고 또 웃다가도 조금 슬퍼졌다. 정아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그때의 우리와는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그때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될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그래서 그 여운이 조금 더 아팠던 것 같다.
왜 서울에서 일하는지
“어쩌면 보험 같은 의미지. 내가 원할 때 모든 곳이 다 가까이 있는 게 편리하니까. 그냥 괜히 서울이 좋은 그런 게 있어.”
서울 처음 왔을 때 느낌은
“기억력이 안 좋아서.”
왜 왔을까
“뭔가 서울이 더 좋게 보이고 뭔가 이런 꿈꾸는 그런 게 있었으니까 왔겠지.”
처음 서울에서 생활은
“근데 그때도 사실 집 회사 집 회사. 아 이 성향이 어디 가냐고. 근데도 그냥 집 회사만 해도 그냥 서울에 있다는 그 느낌은 있잖아. 부모님 집에서 다니는 거랑은 좀 다르긴 했던 것 같아.”
지금은 어떤지
“영화관이 가깝고 한강도 도보로 가고. 지금은 그래도 한 15분 20분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깝고 20분 더 걸리려나… 아무튼 그래도 버스 타면 두 정거장이면 가니까 버스 타고 가도 되고. 아무튼 그런 심리적 안정감이 있어.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가진 않을 거지만. 언젠가 한강에 갔던 기억 때문일까. 가지는 않아도 가깝다는 느낌이 있으니까 한강에 갔을 때 그 좋은 기억들이 있을 거 아니야. 언젠가 한강에 가고 싶다는 느낌이 떠오를 때 그게 가깝다는 건 뭔가… 내가 지금 만약에 부모님 집에 있어, 그러면 내가 지금 아무리 한강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잖아. 가까우면 가고 싶으면 선택을 할 수 있잖아. 내가 갈지 안 갈지를.”
한강이 주는 의미는
“한강은 사실 너랑, 너랑 그때 너네 집에 가면서 그때가 떠오르는데 그때 건물 보면서 저거 중에 하나는… 그게 뭔지 모르겠어. 약간 동경 같기도 하고 뭔가 꿈 같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을 잘 못해가지고 이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어. 아련한 느낌이야. 그때 너무 기분 좋았던 느낌이 있는데 좀 아쉬워. 그때는 분명 우리가 거기서 생각했을 때는 한 10년 전 뒤 지금쯤을 생각하면서 얘기를 했을 텐데.”
지방에서 서울로 갈까 말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오라고, 오라고. 무조건 오라고. 그래도 어쨌든 지방에 있는 것보다는 더 많이 경험할 것 같아. 그런 감정적인 것들을 많이 경험을 할 것 같아. 내가 지금 말할 때도 보면 너랑 있었던 얘기들이 되게 기분 좋았던 기억들이 많잖아. 근데 내가 지방에서 일을 하면서는 사실 그런 느낌을 많이 못 받아봤거든. 그게 뭐라고 해야 되나. 되게 설레고 희망적인 그런 느낌이 그땐 있었는데 지방에서 일할 때는 사실 그 정도의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20대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 20대 초반이 제일 중요해, 처음 발 디딜 때가.”
같은 마음으로 서울로 가서,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같은 마음으로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서울이 우리에게 줬던 에너지가 지금의 정아 씨에게도 그러했으면, 하고 바랐다. 다음 인터뷰를 가장한 스케줄은 한강이면 좋겠다. '가지 않을 거지만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한강에, 진짜로 가서 위안을 받고 와야겠다. 물론 정아 씨와 함께.
오늘은 어떤 날인지
“오늘은 그냥 좀 옛날 생각을 많이 한. 그래서 좋았지. 평소 같았으면 목요일에도 그냥 집에 하루 종일 tv 보고 밥 시켜 먹고 방탄 보다가 잤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할 일이 사실 많지 않으니까 또 너를 만났으니까 너랑 있었던 추억을 생각할 수가 있잖아. 만약에 너를 오늘 안 만났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평소 안 하던 생각도 하고 옛날 생각도 많이 하고 그때 기분이 좀 느껴지기도 하고.”
오늘 기분을 색깔로 표현하면
“나 이런 건 좀 어려운데.”
아니면 노래
“노래? 방탄 노래 진짜 좋은데.”
방탄 노래 중에서 하나로 표현하면
“지금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아 몰라.”
집에 가서 뭐 할 건지
“집에 가서 티비 보고. 다시 돌아가겠지, 내 생활로. 옛날 같았으면 이렇게 얘기를 하고 가면 뭔가 그날은 의욕이 솟아서 막 뭘 했을 텐데 지금은 뭐… 누구를 만나고 나면 원래 옛날에는 하루 이틀이라도 뭘 하고 싶고 이런 게 있었거든. 지금은 모르겠네.”
내일의 바람은
“내일의 바람? 내일 없이 살아서. 요즘에 진짜 생각 없이 살아. 그래서 이런 질문이 사실 되게 어려워. 내가 이런 거 생각 안 하면서 산 지가 몇 년이 됐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생각 없이 살아가지고 이런 질문들이 되게 어려워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걸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됐어.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내년쯤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할 얘기가 더 생겨날까. 내가 뭔가를 시작한다면 그렇겠지만 내가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의미 없이 산다면 없지 않을까. 아니 최근에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을 했어. 근 반년에서 1년 동안 계속하는 것 같애. 그러니까 죽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 죽는 거나 계속 사는 거나 똑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계속 이런 상태면 내년에 더 할 얘기가 없지 않을까. 뭘 하질 않았으니까.”
우리는 참 그때에 비하면 무미건조한 지금을 사는 것 같았는데, 여전히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를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함께 얘기하면서 그 불씨가 활활 타올랐고 번쩍였고 뜨거웠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가 되어 모두 사그라들고는 했다. 그래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의 목격자’로서 살아갈 수 있음은 참 값진 일이다. 존재만으로도 반짝이던 우리의 서로를 기억하고 공유하고 잠깐이나마 타오를 수 있는 찰나의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 말이다.
정아 씨와 나는 항상 만나면 뭔가를 계획했고, 그 계획을 실현시켜줄 책이나 도구를 구입했고, 또한 계획을 완료할 미래의 자신에게 한껏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있던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는 식사 후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이어트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정아 씨와 내가 20년째 노는 방법이고 우리의 루틴이다. 그 루틴의 끝은 항상 ‘흐지부지’였으나, 그 루틴 덕에 우리는 꽤 재미있는 과거를 만들 수 있었다. 정아 씨는 다를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는 내일이라 했지만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흐르는 시간도 영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방탄으로 인해 행복했을 정아 씨의 오늘이, 늘 그렇듯이 다이어트에 실패한 나의 오늘이, 지난날 그랬던 우리의 루틴처럼 재미있게 쌓이고 있기를. 먼 미래 언젠가 또 다시 꿈꾸듯 즐겁게 나눌 목격담을 생성하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