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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작가 Oct 26. 2024

13화 노크 노크

타로 (Tarot)

  첫 연설을 성공적으로 마친 재훈, 지연은 IT대학 학생회실로, 태오는 강의실로 갔으나 준아는 무리로부터 살짝 빠져서 본관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린을 보러 들어갈 수 있을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9시 30분, 1교시 강의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 지나자 지각생들 조차 모두 들어갔는지 본관 앞 다른 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준아는 조용해진 틈을 타 본관 1층에 있는 경비실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춥네요.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셔요."

  준아는 경비 아저씨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따뜻한 음료병이 잘 보이게 꺼냈다. 


  "아 그치, 아주 추워 주겠어 요즘은, 학생도 밖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감기 걸려. 머, 이런 걸 다.."

  "네, 그럴게요. 마침 지나가다가 생각나서요. 이거 드시면 몸도 따뜻해지실 거예요."

  "그려, 고맙구먼. 인상도 좋고 착하네 그려."

  준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저씨에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돌아서 가려다 다시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아 저기, 아저씨, 뭐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별거 아니긴 한데요."


  "응.. 그려. 뭔데?"

  "이 건물 안에 철문이 있다고 들어서요.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겠죠?"

  아저씨는 '별 걸 다 묻네'라는 표정으로 준아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준아는 아저씨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청소하시는 분들도 왔다 갔다 하실 테고요.. 그분들이 지키는 사람 없을 때 들어가 본 적 있으세요?"


  화들짝 놀란 아저씨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준아를 째려보았다.

  "그런 적 없어. 나도 모르는 일이고. 별 걸 다 궁금해하네."


  "네, 제가 좀 호기심이 많아서요. 제가 취미로 타로를 좀 보는 아마추어 점술가인데요. 여기 카드 중에 한 장만 선택해 보시겠어요? 오늘의 운세를 좀 봐드리려고요."

  아저씨는 갑자기 카드를 꺼내 펼치는 준아의 손놀림이 자연스러운 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가 한 장을 선택했다.


  "아, 이 그림을 보면 따뜻한 물이 든 욕조에서 목욕을 신나게 하고 있네요. 지금 이 자리가 행복하신가 봐요."

  "머.. 그렇지머. 본관에 있으니 높으신 분들도 많이 보고. 눈에도 띄고.."


  "네, 물은 계속 따뜻할 수는 없는 거라서요. 결국 식기 마련이에요. 오늘 점 괘를 보니 '물이 식은 후에 욕조에서 나오면 너무 늦는다'라는 의미네요. 경비 장소는 서로 로테이션하죠?" 

  "아니, 학생이 그걸 어떻게 알지? 격주마다 돌지,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제가 점술가라고 했잖아요. 하하. 

   흠, 다음번 이동 장소가 고생할 수 있는 곳이네요. 이래서 정보가 중요해요. 다른 경비실 얘기도 좀 들으시고요. 저는 그럼, 오늘의 운세란 걸 잊지 마시고요."


  경비는 싱거운 학생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준아의 얘기를 곱씹어 보았다. 준아는 본관을 돌아 근처 벤치에 앉아 작전을 구상했다.


  아린은 오후 수업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평상시 오후 수업이 있는 날에는 10시까지 자는데 오늘은 준아 때문에 아침부터 잠을 설쳤다. 그래도 괜히 들떠 있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가을에 어울리는 옷보다는 봄의 꽃처럼 밝고 화사한 코디를 선택했다. 은은한 회색 빛깔의 얇은 시폰 치마는 햇빛을 받으면 마치 금처럼 빛이 나 그녀에게는 특별한 날에 즐겨 입는 옷이었다. 상의는 프리지어처럼 싱그런 노란색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보물 상자처럼 황금색 광택이 나는 가방을 손에 들고 문을 나섰다.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와 보니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1층에 보안 요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철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제 등교하나 봐. 우리 오늘 벌써 두 번 보네."

  아린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준아였다. '누군가 나를 집 앞에서 기다린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경험이었으나, 그게 준아여서인지 매일 기다려준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놀라지 않은 척하려 무표정을 지었으나 준아의 손에 쥔 바구니를 보고 입꼬리가 살짝 움직이고 말았다. 바구니에는 연한 핑크색의 장미꽃들이 안개꽃과 함께 담겨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초콜릿과 쿠키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자, 이거 받아."

  "어? 이거 뭐야..?"


  "응, 그냥.. 아침에 기분이 좋아서.. 이 기분을 나만 느끼기에는 뭔가 아쉬워서 갑자기 네가 생각나더라고."

  "응.. 그게 다야? 뭐 더 할 말 없어?"

  준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린을 지극히 쳐다보았다. 아린은 얼굴이 빨개지며 바구니를 뺐었다. 


  준아는 '왜 그러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모퉁이에서 다른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보안요원 두 명이 대화를 하며 철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린은 급히 준아의 팔을 끌어 같이 철문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보안요원 중 한 사람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성큼성큼 철문 쪽으로 다가왔다.


  "거기 누구 십니까!"


  준아는 기획처장을 따라 사인했던 각서가 떠올랐다. '아! 제대로 걸렸다.' 숨소리도 없이 철문을 응시하다 옆에 떨고 있는 아린을 보았다. 그녀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건 처음이었다. 달콤한 향기 때문인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어서인지 순간 몸이 공중으로 뜰 것만 같았다. 


  '이대로 일분만 아니, 일초만 더 있고 싶다.'


  삐거덕- 철문이 열리면서 눈치 없는 빛이 새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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