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은 방에 들어오자 지친 모습으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준아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갔으면 잘 나갔다고 연락이라도 해주지.' 아린은 준아에게 연락이 없어 혹시 아직까지 본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철문을 지나자마자 방이란 방은 다 훑어보았다. 혹시나 잘못된 것은 아닐까 준아를 찾아 철문 밖 본관 곳곳을 돌아다녔다. 워낙 대규모 저택이라 한 바퀴 도는 데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때 마침 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준아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거야? 걱정했잖아." 아린은 버럭 화를 내었다.
"아, 걱정했구나. 미안. 다행히 잘 나왔어. 거기에 같은 편 한 분 계셔서.."
"응? 누구? 어떻게? 여기는 다 감시와 지키는 게 전문인 아저씨들인데."
"그러게. 오늘은 운이 참 좋았네. 지금 방에 있니? 여기 별이 참 예쁜데, 저번에 보니 별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응. 별 아름답잖아. 근데 여기 창문에서는 별이 보이진 않아."
"그래? 창가로 한 번 와볼래?"
아린은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타로 카드 중에 Star라는 카드가 있거든. 카드의 의미는 별이 빛나는 것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만, 뒤에서 별을 밝히기 위한 숨은 노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야."
"아- 그런 뜻이구나. 그렇지, 별이란 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마 전 인문대 옥상에서 준아와 별을 보던 기억을 떠올렸다. '얼마 만에 본 별이었던가.'
"그래서 말인데. 내가 별을 만들어 줄게."
"별을? 설마 날 위해 별을 따다 줄게. 뭐 그런 농담 아니지?"
준아는 괜히 뜨끔 했지만 하하- 헛웃음을 삼켰다.
"나 점술가잖아. 가끔은 마법이라는 것을 믿어봐.
먼저 창문 커튼을 열어. 그리고 창문 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봐.
아린은 치익- 커튼을 치고 창문 앞에 섰다. 어둠 속 창문 밖은 방금 끈 TV 화면 같이 깜깜했다.
"분부대로 커튼을 열고 창문 앞에 섰습니다."
준아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물었다.
"그래? 뭐가 좀 보이니?"
"별? 하나도 안 보이는데?"
5초간 침묵이 흘렀다. 어둠 속에는 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 별똥별이다!"
아린은 빛이 나타나자 신이 나서 외쳤다.
"나 별똥별 처음 봐. 오빠도 밖에 나와 있어요? 너무 신기해! 빨리 소원 빌어야 하는데.."
한껏 들뜬 아린은 난생처음 보는 자연의 신비로운 광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아쉬워라. 벌써 끝난 건가. 너무 짧다. 그래도 너무 신기했어."
"아 그래? 신기하지? 살면서 반세기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을 오늘 보게 될 거야."
그 순간 별이 하나 더 빛났다.
"별이 하나 생겼어!"
"응응- 계속 지켜봐 봐."
옆자리에 별이 하나 더 생기더니 별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무언가 모양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열 개가 넘어 가자 아린은 머릿속에는 한 가지 별자리가 그려졌다.
준아는 오늘 본 별자리 운세에 쌍둥이자리 의미가 다시 떠올랐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투시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만남이 쉽게 전개되겠군요. 승리는 당신의 몫!'
"이제 방 불을 한 번 켜 보겠니?"
아린이 방 불을 켜자 준아의 눈에 아린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 보여?"
"응! 잘 보여."
"오빠, 어디에 있는 거야."
"나? 이 별자리 속에.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날 이후로 자꾸 네가 생각나. 이렇게 조금 멀리 있더라도 우리는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어."
그 순간 준아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별의 수명은 수백만 년. 별은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내 마음은 한결같이 널 향할 거야.'
준아가 플래시를 켜자 아린의 정면에 서 있는 레고처럼 작은 준아가 보였다. 아린은 신기하게도 저 멀리서 준아가 쳐다보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준아의 눈은 아린의 눈과 수평선 상에 위치했다. 노천극장 꼭대기 거대한 햇빛 가림막 조형물은 본관 꼭대기 층인 아린의 방과 딱 맞는 높이였다. 그곳에는 준아가 세워 둔 열두 개의 이젤이 있었고 이젤에 걸쳐 있는 열두 개의 플래시들이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