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메디컬라이터의 관련 전공이 약학과 말고도 간호학, 수의학, 임상병리학, 치위생학 등 여러가지 의료인/의료기술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생명/바이오 전공자도 제약 관련 분야의 학업이나 경력을 쌓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맞다. 사실 메디컬라이터를 신입으로 뽑는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메디컬라이터의 공고를 확인해보면 필수조건으로는 "4년제 대학 졸업자", 우대조건으로 "메디컬라이터 2년 이상 경력", "제약관련업계 경력자", "석사이상"이라고 쓰여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대부분 4년제 대학을 이미 다녔거나 다니고 있으며, 관련 전공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경쓰이는 것은 필수조건보다는 우대조건일 것 같다. 다음화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 모든 우대조건을 다 갖출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우대'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화에서 우대조건 중 "제약관련업계 경력자"에서의 그 "경력"에 대해 자세히 말해볼 것이다.
이때 말하는 ‘관련 경력’은 무엇일까?
여기서도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앞선 글에서 봤던 커뮤니케이션 MW와 임상연구 MW를 보자.
커뮤니케이션 MW에게 요구되는 경력은 ‘광고업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케팅(+제약), 영업(+제약), 학술(+제약), 대학원(+제약)의 경력 중 괄호 안의 제약산업과 관계된 부분이 있다면 관련 경력으로 인정해 준다. 전공을 불문하고 신입으로 노려보기에 가장 좋은 직무는 제약과 관련된 '영업/마케팅'이다.
임상연구 MW는 계획서/동의서, 보고서 작성 및 결과 논문 작성을 해 본 경험이면 된다. 경력을 쌓기에 가장 좋은 직무로는 CRC(임상시험 코디네이터)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MW의 초기 경력 쌓기에 좋은 직무는 제약과 관련된 '영업/마케팅'이라고 했다. 자, 그럼 영업과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 MW의 초기 경력 쌓기를 알아보자.
1) 먼저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등 자신이 사용하는 채용 플랫폼에 들어간다.
2) ‘제약’ 키워드를 두고, 마케팅, 영업을 검색한다.
3) 무수히 많은 경력 중 ‘신입’ 이라는 단어가 있는 공고를 확인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마케팅이나 영업 관련 졸업생들이 엄청 많을텐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여기가 우리가 대학에서 배워왔던 전문지식이 쓰이는 시점이다.
제약 관련 영업직무에는 전문의약품이나 약리작용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의약학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제약회사에서 A라는 고혈압 치료제를 출시한다고치자. 제약 영업 종사자들은 치료제가 출시되기 전 단계인 임상시험 단계에 관해 보고 받을 것이다. 해당 약물이 어떤 성분이 들어가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홍보전략을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약물에 대해 ‘이해’하는 역량이 부족하면, 관련 회의를 하거나 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많은 곤란을 겪는다.
우리 곁에 흔한 소비재로 말한다면 유모차가 누가 쓰는지, 어떤 원리로 접었다 펴는지 모르는 사람이 유모차를 팔아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잘 설명하고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이다. 제약산업의 마케팅과 영업은 의약학 분야의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줄 아는 눈을 갖춰야 한다.
흔히 아는 '마케팅이나 영업 직무를 하는' 일반 전공자들이 진입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다. 반대로 간호나 약학 등의 의료전공자들은 대부분 병의원으로 빠져나간다.
이 때문에 1차 후보군의 숫자가 현저히 적어진다. 따라서 본인이 관련 전공자로서 신규임에도 제약 관련 경험을 쌓고 싶다면 제약영업/마케팅 직무로의 취업이 비교적 낮다.*
(*그러나 언제나 리크루터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다를수 있다.)
또한 영문으로 된 문서를 많이 접해야하는 제약산업 특성상, 영어 성적이나 외국어로 소통해 본 경험(유학, 워홀, 교환학생, 외국계기업 인턴 등)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다음으로 임상연구 MW가 되기 위한 초기 진입경로에 대해 알아보자.
전공과 경험과 관련없이 경험을 쌓고 싶다면 제약회사, 대학병원, 공공기관 관련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전공이 있다면 CRC가 경험쌓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전공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의 CRC로 지원해볼 수 있다. 특히 간호를 전공했다면 "채혈가능", "환자 라포형성"이라는 특징을 살려서 지원해볼 수 있겠다.
CRC(임상연구 코디네이터)**가 신입이 들어가기에 장벽이 가장 낮다. 계약직(1년이 보통이나 6개월 혹은 3개월, 시간제 등 다양한 형태의 단기계약직도 많음)이 보통이고, 임금도 기관에서 정한 수준이라 최저시급을 조금 더 웃도는 정도의 신입월급일 경우가 많다.
병원이나 다른 회사에서 1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사람에겐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조건이다 보니 생각보다 초기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CRC (임상시험 코디네이터) 란?
연구책임자의 위임 및 합의 하에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와 일반인들이 시험에 적합한지 검증한다. 임상시험과 관련된 모든 일정을 관리하고 진행하며, 연구계획서를 검토하고 임상시험 수행 관련 일정표와 안내문을 개발한다. 시험대상자에게 연구에 대해 설명하여 동의를 받는다. 시험약을 투약한 후 관련내용을 기록한다.
- 워크넷 한국직업사전
워크넷에서 내린 CRC의 정의를 보니, 이 직업은 의료면허를 가진 직업인만 가능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에게 임상시험이 필요한 분야라면 모두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관련 전공은 유전체 관련 연구, 영양 관련 전공이라면 영양 관련 병원 연구 혹은 건강식품 관련 연구도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간호학 전공이 필자에게 익숙하기에 덧붙여 보자면, 간호학과를 졸업하면 그 즉시 병원에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개인 의원에서도 근무할 수 있다. 병원이나 회사의 규모는 어디든 상관없다. 질병이나 환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해본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연구분야나 회사에 따라 지원자의 배경(학벌, 성적, 영어성적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다는 점은 염두하면 좋다. 신입의 경우, 한동안 ‘광탈’의 시기가 있기 때문에 너무 맘고생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만약 한동안 광탈이 되고, 돈은 빨리 벌어야 하고, 임상연구 MW 관련 경력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겐 오히려 짧은 계약직 CRC나 연구소 단기 알바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보건의료계열 전공자의 경우 병원으로의 취업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병원 밖 회사로 갈 땐 안정적인 직무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 단기보단 장기 계약직을, 계약직보단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틈새시장을 노린다면 초기 진입장벽을 깨부수기 좋다. CRC 중 단기에 가까울수록, 페이가 적을수록, 입사 확률이 높으니 오히려 열악한 환경을 이용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다가 계속 거기에만 머무르면 어떡하죠?”
걱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임상경력처럼 MW 분야도 경력이 깡패라는 점을 생각하며 이직을 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처음 경력을 쌓은 CRC나 해당 연구분야 이외에 취업이 될 수 없지 않느냐고 걱정하기엔 세상은 넓고 일자리는 많다.
그리고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 MW 분야이기에 경력을 시작하려는 초년생, 혹은 다른 일을 하다가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예외도 있다. 학교 이름이 국내 유수의 대학 혹은 해외 유명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으면 한번에 이름 있는 외국계, 대기업 갈 수 있다. 내가 말한 부분은 무시하고 지원하여 성취하면 된다.
이 글은 필자와 같이 다소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배경(인지도 낮은 지방사립대, 학점 2점대, 토익무)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글인 점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본인이 의료와 관련된 전공이 아니라면, 그 외에 제약회사나 대학병원에서 임상연구 데이터 입력 보조 알바 등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 병원이 아니더라도 공공기관으로 눈을 돌려서, 기관의 연구 데이터 입력 알바나 연구대상자만 상대하는 상담원을 뽑을수도 있다. 일례로 내가 하던 연구의 경우, 혼자서 연구대상자를 모두 상대할 수 없어서 임상병리사 선생님을 단기계약직으로 고용하거나 데이터 입력 알바를 구하기도 했다.
메디컬라이터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여러분이겠지만, 사실 메디컬라이터를 신입으로 채용하는 곳은 많지 않다.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그럴듯한’ 자리로 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바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며 꾸준히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 덜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 소개
에이전시 메디컬라이터로 제약산업 마케팅의 메디컬 콘텐츠 생산자이자 메디컬 커뮤니케이터로 일하고 있다. 지방 4년제 간호학과를 꼴찌를 겨우 면하여 졸업한 뒤, 임상 1년을 쌓았다. 그 뒤로 코이카 해외봉사 1.8년, 환경역학 보건연구간호사 1년, 국제보건 사업관리자 10개월, 보건소 역학조사관 6개월, 발암물질 간행물 집필 연구원 6개월을 거쳐 지금의 회사로 왔다. 더불어 온라인 석사과정(영국) 1년과 국내 일반대학원 석박통합과정생 2년(ing)으로 박사학위를 위해 달려나가고 있다.
편집자 소개
지방4년제 간호학과를 막 졸업하고, 종합병원의 VIP병동에서 8개월간 근무를 했다.
입사 6개월차가 되던 때에 취미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다. '나는 직장생활이 불행한데, 다들 그런가'라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인터뷰 프로젝트였다.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지 인터뷰를 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 저자와 만나 '편집자'라는 거창한 칭호까지 받으며 본 매거진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