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생누영 정승희
누군가에겐 단순한 생각이 누군가에게 영감으로, 누생누영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11번째, 누생누영팀을 만나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직장인들과는 약간 결이 다릅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찾기보단, 직접 만들어온 분들이거든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모아,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일이 즐겁다"라고 말하는 누생누영팀, 승희님을 먼저 만나보겠습니다!
나노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
제가 창업한 지 7년 정도 되었는데, 피보팅이라고 해서, 아이템이 그동안 여러 번 바뀌었어요. 그렇게 아이템이 2-3번 바뀔 때 즈음에 ‘대체 우리는 왜 사업을 하는 걸까?’라는 본질적인 질문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때 슬럼프였어요.
첫 아이템은 소상공인들을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서비스였어요. 보통 창업하시는 분들은 고정된 대상을 두고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는 대상이 계속 바뀌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어요.
돈을 많이 벌 생각으로 창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럼 왜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깊게 해 봤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의 사업 대상은 계속 바뀌었지만, 결국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걸 시작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다가 ‘누생누영’ 커뮤니티가 생겨났어요.
저희는 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신만의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아직 기회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요.
누생누영 커뮤니티는 3년 정도 됐고, 플랫폼은 2023년 9월 1일에 론칭했어요.
이 아이템으로 구상을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이었어요.
'정말 사람들이 이런 걸 필요로 하나?'라면서 검증을 하던 것이 두 달 정도 걸렸어요. 테스트 결과, '사람들에게 이 서비스가 필요하겠다'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후에 준비를 해서 지금까지 왔어요.
누생누영팀을 만들고 나서는 제가 '커뮤니티 매니저' 역할을 해온 것 같아요. 어떤 커뮤니티가 필요할지, 어떤 사람들이 참가자로 들어왔는지 이런 것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요.
모임들을 관리하는 그런 매니저 역할을 해오신 건가요?
네, 지금은 매니저 역할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는 원래 기록을 기반으로 영감을 나누는 커뮤니티였어요.
그래서 그때 저는 사람들의 글을 뉴스레터로 만드는 일을 했어요.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올려놨던 글들을 모아보니까, 너무 좋은 글들이 많은 거예요.
'분명 이런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 글 정말 좋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다 보니까,
아예 이걸 뉴스레터로 만들어서 발행을 했었어요. 그게 '영감 샌드'였어요.
제 나름대로 회심의 네이밍이었는데요 (웃음),
샌드를 "send"라고 하면 "보낸다"가 되는 것이고, 과자 "샌드"처럼 맛있는, 과자가 봉지에 담긴 선물상자의 콘셉트로 뉴스레터를 운영했어요.
그중에서 유난히 글을 잘 쓰고 인사이트가 큰, 세 분정도 모아서 책을 만들고 펀딩을 진행했어요. 그동안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보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걸 꾸준하게 해오셨다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요.
이걸 본업으로 하고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멱살을 잡고서라도 이것을 끌고 가야 하는 자리에 있으니까요 (웃음)
그리고 성격적인 면도 있는데, '뚝배기' 같다고 할까요?
달아오르는 데 정말 오래 걸리는데, 누가 불판에 올려놓으면 계속해요. 끈기가 강한 편이에요. 이 친구(민호)가 불을 켜놓으면, 저는 그 불을 끝까지 가져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거 정말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제가 존재감 있게 일을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일이라는 게 어찌 됐든 성과가 나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정서적인 만족은 분명한데, 커리어적인 만족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게 가끔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도 해요. 어렵네요.
원래는 저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스타일리스트로 일했어요.
그때는 제가 거만해질 정도로 주변에서 "잘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나 정말 잘하나 보다'라면서 고취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창업을 시작하면서, 뇌 정지가 오는 일이 많아요 (웃음)
원래는 제가 컴퓨터를 정말 싫어해서 대학 수업도 포토샵 이런 것도 안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IT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명확하게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직무로 치면 마케터, PM, 기획자 이런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해요.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거든요. 거기에서 만족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도, 저는 "아냐 나 진짜 못해"라면서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일이 힘들어도 돼요. 일이 많아서 밥을 못 먹어도, 잠을 못 자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니까 그게 힘든 것 같아요. "내가 못한다"라고 질책만 계속하게 돼요.
창업하기 전까지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해서 스타일리스트로 일했어요.
맨 처음에는 여성복 스타일리스트 팀에서 일을 했어요. 그때 인정을 받아서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해 봤어요. 그러다가 남성복 분야에서도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황스러웠어요. VMD라고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것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여자는 어떻게 스타일링을 하는지 알겠는데,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그때 당시 꿈꿔왔던 것은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최고의 스타일링을 해야 하겠다는 목표의식이 생긴 거죠. 그래서 유니폼, 아동복,, 되는대로 경험을 해봤어요.
그러다가 25살 때 즈음 일을 그만두고, 1년간 일을 안 하고 쉬었어요.
패션업계가 좀.. 거칠다고 해야 하나요? 동료들끼리도, 옷을 떼어주는 도매업자들도 서로에게 그리 상냥하지는 않아요.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말투가 바뀌었다"라고 하더라고요. 도매시장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말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니까, 저도 똑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하면 나라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겠다'라는 두려움이 크게 와닿았어요. 일하면서 '저런 건 싫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느꼈던 걸, 어느새 저도 모르게 똑같이 흡수하고 있더라고요 그 후로 1년을 쉬면서 대인기피증, 공황이 같이 오면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밖으로 나가게 된 시기가 있어요.
저에게 정말 은인과 같은, 친한 언니가 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둔 후에도 저에게 지원공고가 뜨면 자꾸 보내주는 거예요. "너 정말 잘해. 아까워"라고요.
제가 지원을 안 하고 있으면 "대신 넣어줄까?"라면서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언제 한 번은, 언니는 제가 대인기피증 때문에 밖에 못 나가고 있는 걸 아니까,
"내가 월차를 내고 네 면접장까지 같이 가줄게. 면접 볼 때 잠깐만 들어갔다 오면 돼."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마음이 움직였어요.
'월차를 내고 같이 면접을 가줄 정도로 나를 믿는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다시 일을 시작하기는 어려웠어요.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그럼 같이 일을 하자"라고요. 언니와 가방 브랜드를 같이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의상 디자이너에게 도매시장에서 옷을 떼어다 파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언니와 함께라면 다시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가방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창업 관련해서, 정부 지원 사업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권장하는 대로 '실용신안등록'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실수였어요. 가방을 다 만들었는데 심사하는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거예요. 그동안 가방을 팔 수 없고요.
그렇게 묶여있다가 언니는 생계 때문에 취업을 하러 떠나게 되었어요.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정부 지원 사업에 있던 이 친구 (민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그 팀에 합류를 하면서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경험이 제일 중요했던 것 같아요.
급여에 상관없이, 유니폼, 아동, 남성 상관없이 안 해봤던 것이라고 하면 무조건 해봤어요.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라는 목표가 명확했으니까요. '20대에는 돈 안 벌어도 된다'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일을 해보려고 했어요.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에요. 사실은 같이 일하는 사람도 경험만큼 중요해요. 거의 일 순위에 가까워요.
저는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그 직장을 계속 다녔던 것 같아요.
굳이 하나의 조건을 더 말하자면,,, 지리적인 위치? (웃음)
어차피 경기도에 살기 때문에 어차피 가깝지 않지만, 강남은 너무 멀어요. 물리적으로 멀다기보다는 교통편이 너무 안 좋아요. 엄청 밀릴 땐 버스로 3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시간 예측이 전혀 되지 않아요. 그러면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폐소공포증이라는 방해물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꺼려지더라고요.
창업을 하고 나서는, '기여도'가 일 순위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만족감이 제일 중요해요. 결국에는 그래야만 재화가 생기기도 하고요.
창업을 하고 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CS (고객상담)이었어요.
저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이에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기도 하지만, 창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대인기피가 있었어요. 음식점에 전화를 하는 것도 힘들었죠. 업무 자체를 생각하기보다, 이 일이 결국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면 그 일을 했어요.
그다음에는 여기에서도 '사람'이에요. 저는 사람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고 하셨을 때 사실 놀랐어요. 전혀 그랬을 거라고 상상을 못 했거든요.
그게 제가 창업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예요.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웃음)
저는 원래 걱정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어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에 대해 걱정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창업을 하면서 '이게 될까?' 했던 일들이 실제로 되는 걸 경험했어요.
'콜 더 메일'이라고, 영상 크리에이터를 위한 번역 서비스를 준비할 때, 저희는 명함도 없고, 홈페이지도 없었어요. '이게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같이 일하는 동료(민호)가 "될 것 같은데?"라면서 일을 밀고 가더니, 정말 해내더라고요.
무언가를 하려면 무언가 구색을 갖추고 화려해야 할 것 같았는데,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는구나'를 느꼈어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마인드가 바뀌었어요.
또 창업을 하면서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다 보니까 이렇게 변하더라고요.
제 장점이 끈기 있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거예요. 제게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걸 해냈을 때의 만족감도 크고요.
직장이나 창업이나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긍정적인 사람이요.
제가 어떤 의견을 던졌을 때 "그게 되겠어?"라면서 묵살하기보다는, "해보는 것이 어때?"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좋아요.
또 험담 안 하는 사람이요.
이전 직장에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 좋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그런 사람은 주변에 없는 것 같아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남 험담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일 잘하는 사람보다 사람 좋은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일은 태도만 되어있다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떠오른다면, 그걸 직업으로 삼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옷을 좋아해요. 패션을 좋아했는데, '패션을 통해서 무엇이 좋았지?'라고 다시 생각해 봤어요.
저는 저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을 때 자신감이 생겨요.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을 때 자신감이 생기는 걸 보는 것도 좋아요.
생각해 보니 저는 옷 자체가 좋은 건 아니었더라고요. 사람들이 더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제가 좋아하는 일이어요.
그게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발현이 되었다가, 지금은 IT 서비스로 발현이 될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저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생누영팀을 더 알고 싶다면?
누생누영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sny_zz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