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부산 광안리인데 지금처럼 번화하기 전, 꼭 현재 생활하는 어촌 마을을 닮은 바닷가였다. 직장은 서울에서 다니며 어찌어찌 대도시에서의 생활을 이어오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선택한 곳이 작은 고깃배가 드나들고 조그만 어장이 있는, 태어난 고향과 무척 닮은 환경이라니 몸속에 배어있는 귀소본능이 작동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태어난 곳보다는 훨씬 외진 섬(이지만 연륙교로 연결된 섬 아닌 섬)에 살고 있다.
자연을 대할 때 경험하는 감정은 주로 처한 현실에서 결핍된 부분이 강한 기폭제가 되는 듯한데, 도시 생활에 답답함이 컸던지 바다를 만날 때면 탁 트인 개방감과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먼저 다가왔다. 바닷가 시골 마을로 귀촌한 후에는 바다를 느끼는 신체의 감각기관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앞서 이야기했듯 도시에 살 때 그것은 주로 시각(적 개방감)과 (파도 소리라는) 청각이 우선 작동했다면, 지금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그 공기의 흐름에 실려 오는 냄새를 폐 속 깊숙이 들이키는 후각을 먼저 활짝 여는 편이다.
시골에 내려온 후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상을 누리며 느낄 수 있었던 한 가지는, 당연한 얘기 같지만, 바다에는 냄새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바다의 냄새는 주로 계절이 바뀔 때, 즉 간절기에 조금 더 또렷하게 전달되며 봄과 가을이 다가올 때보다는 여름과 겨울이 다가올 때 더 강하게 전해온다. 봄과 가을이 조금 온화하며 부드러운 계절이라면, 여름과 겨울은 더욱 강렬하고 거친 계절인 것처럼 바다의 냄새마저 그런 계절과 닮아있다니 신비롭다.
겨울에서 봄을 향할 때의 바다는 마치 가습기를 틀어놓은 듯하다. 바다 위로 해가 솟아오르며 간밤의 냉기를 녹이면, 뽀얀 물안개가 해수면 위와 바닷가 마을을 뒤덮는데, 그곳에서 숨을 한껏 들이켜면 조금은 짠 듯, 조금은 비린 듯한 바다의 미스트 입자가 후-욱 숨길을 가득 채운다.
여름에서 가을을 기다릴 때도 이와 비슷한데, 이때는 안개보다 조금 더 비에 가깝다. 가습기보다는 분무기로 바닷물의 입자를 흩뿌린 듯 아침이면 대지는 촉촉이 젖어 있으며 바다의 냄새와 여름동안 달궈진 땅의 열기를 식혀주려는 건지 흙먼지 냄새가 뒤섞여, 마치 우리 둘은 원래 하나였다는 듯, 코를 간지럽힌다.
바다가 품은 계절 냄새가 확연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때는 여름과 겨울이 다가오는 간절기인데 두 계절의 강렬함을 너무도 닮았다. 여름이 다가오는 바다의 냄새는 한마디로 ‘비릿함’이다. 흔히 “바다 냄새난다.”라고 할 때의 그 짠 비린내. 다가올 뜨겁고 열정적인 여름의 전주곡인 양, 한 바가지 땀을 흘릴 준비가 되었냐는 듯, 초여름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그 땀 냄새를 닮은 짠 내가 담겨 있다.
겨울이 다가올 때의 바닷냄새는 맛이 있다. 굳이 단어로 표현하자면 여름처럼 ‘비린내’에 가깝지만 조금은 미역과 해초의 냄새랄까, 아니면 굴(석화) 냄새처럼 맛있는 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이제 산과 들이 얼어붙으면 땅에는 먹을 게 부족하지? 여기 바다로 와, 바닷속에는 한겨울에도 맛있는 것들이 제법 있어!”라고 코끝에 대고 속삭이듯 후세포를 간지럽힌다.
매일 보는 바다와 매일 듣는 파도의 소리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후각’이라는 감각 기관을 하나 더 열었을 뿐인데, 알고 보니 바다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묘사하지 않은 바닷물의 ‘촉감’도 계절마다 다른데, 때론 미끈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정수기에서 갓 따른 냉수 같기도 하다. 그동안 시각과 청각만으로 대했기에 아직 다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면서 마음속에 바다에 대한 섣부른 정의를 담아두고 있었구나 싶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매 순간 만나는 대상이 가진 저마다의 계절을 완연히 느낄 수 있기를, 그래서 그 ‘계절의 냄새’도 함께 즐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