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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귀찮아질 때

-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다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요즘 따라,먹는 게 귀찮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먹는 식탁이 귀찮아요.

신랑과 함께하는 식탁이 아니라, 혼자 먹는 식탁일 때는 유독 더 챙겨 먹기가 싫어집니다.


혼자 먹는 식탁이어도,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에 주방 정리까지 하고 나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아무리 간단하게 해결해도 말이죠.

게다가 간간이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려야 하고요.


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차라리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자는 게 더 '생산적'일 것만 같아요.


특히 집중하고 있을 때,

슬며시 배고픔이 올라오면

살짝 짜증이 날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식욕이 없냐고요? 전혀요.

엄청 강렬하진 않아도,

커피, 빵, 구운 고기 같은 것들이 잠깐 머릿속을 스치기도 하거든요.

소식좌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먹으면 또 한 그릇 뚝딱 잘 먹습니다.


그냥 그 한 그릇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그 전후의 과정이

요즘은 유난히 성가시게 느껴지는 거죠.


먹는 즐거움보다 그 성가심이 더 크게 느껴지는 까닭에,

'먹는 게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듯합니다.




도대체, '먹는다는 것'은 뭘까요.

"의식주"

"엥겔지수"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지"

이런 익숙한 표현들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먹는 일이 우리 삶의 중심에서 얼마나 중요한 '줄기'인지를 담고있는 표현들이죠.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고

외국에 오래 나가 있으면 한국음식이 그리워 향수병에 걸리기도 하죠.

여행지에서는 그곳의 음식에서 그곳의 문화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에 큰 돈을 들이고도 "그 시간이 온전히 만족스러웠다"고 말해요.


이처럼,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먹는다는 건 그저 끼니를 때우는 일을 넘어, 나를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죠.

내가 먹은 것이 곧 나의 혈액이 되고, 세포가 되고, 에너지가 됩니다.

음식은 곧 나의 몸이고, 삶의 힘이 되는 거예요.




결국, 먹는다는 것

살아있음을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체험하는 일.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이고,

그것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건,

삶 자체를 포기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건 '즐겁게 먹는 것'이 아닌,

'먹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상태요.)


식음을 전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더는 살고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고 버겁다는 걸 온몸으로 드러내는 일처럼요.




부모님과 통화할 때마다 "밥은?"하고 묻는 것.

손자가 배고픈 건 할머니에게 가장 큰 비상상황이 되는 것.

이 보편적인 장면들은

먹는 것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식사를 신경쓰고 챙기는 일이 얼마나 깊고 강한 사랑의 표현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정성스럽게 먹는 일

나의 가장 기본을 챙기는 일이고

내 삶을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네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주고 싶은 마음,

그들이 기분 좋게 배부르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정성 들여 요리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나 혼자의 식탁도 챙긴다면...




어쩌면,

최근 제가 먹는 게 귀찮았던 까닭은

제 식탁에 애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일지도요.


무지출 챌린지를 해보겠다면서,

일주일이 넘도록 비슷한 재료들만 돌려먹고 있었거든요..

계란, 버섯, 양파, 카레, 미역국...


내일은

제 식탁에 제가 좋아하는 봄나물을 곁들여

제 식탁에 활기를, 제 하루에 생기를 살짝 더해보려고 합니다.


냉장고 파먹기를 하더라도, 봄나물 하나쯤은 괜찮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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