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전하지는 않지만, 우리 세 명이서.
2박 3일의 가족여행을 기획했다.
엄마의 제안이었다.
"날씨 좋을 때, 차타고 여행하면서 맛있는 거나 실컷 먹자"고.
사실 올해 1월,
나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 가기'를 추진해보려 했다.
소소하지만,
지난 9월부터 여행자금 통장도 만들었다.
전액을 다 충족하지는 못하더라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테니까.
중간에 동생도 여행자금 통장에 동참해주었다.
여러 여행지를 생각해보았지만,
멀리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일본을 가볼까 했다.
두 시간 정도의 비행에 온천여행을 포함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혹시 1월 말에 일본 여행 어때?
어머니랑 아버지랑 나랑 셋이서."
그 때 엄마의 대답을 듣던 그 찰나를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큰 딸, 미안하지만...
우리랑 해외여행가겠다는 건... 네 욕심이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물이 주룩 흘렀다.
엄마가 '1월 말 해외여행이 어렵다'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겨울이라 멀리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는 것.
두 번째는 아빠에게 있어 해외여행은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것.
벌써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아빠의 병을, 불편한 몸을,
나는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열린 공간에서,
아빠의 병명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것을 먼저 세상에 말하는 게
아빠에게 혹시나 상처가 될까 봐.
(물론, 내 브런치 작가명을
지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아서
내 글을 읽게 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어쨌든,
아빠는 점점 더 힘이 떨어지고,
걸을 수 있는 거리도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해외여행은
이제 우리 가족에게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갑자기 어느 날, 엄청난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엄마의 "네 욕심이야" 라는 말은,
마치 조용한 선고 같았다.
그 꿈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걸 더는 미루지 않고 인정하게 만든 선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굳이굳이 추진해보려 했던 건,
그냥 죄책감과 아쉬움 같은 거였을 지도.
그래도,
'멀리 움직이기 어렵다'던 겨울이 지났다.
봄이 왔다.
이번에는 엄마가 제안했다.
"차타고 여행하면서 맛있는 거나 실컷 먹자"
그래서 우리는, 떠났다.
2박 3일 간의 짧은 국내여행.
비록 동생은 함께할 수 없어 '불완전'하지만
세 명이서 함께하는 가족여행.
사실 엄청 특별한 일정도
추천할 만큼 재밌는 일정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은
이 여행이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무한해 보이는 가능성이
사실은 0에 가까울 때도 있다는 것을.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종종 마지막 만남이기도 하다는 것을.
10년 전,
페이스북에서 당첨된
'가족사진 무료 촬영 이벤트' 으로 찍었던 가족사진이
우리의 가장 최근 가족사진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진관 사기 수법)
그때는,
그 다음 가족사진이 10년 후에도 없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무료라더니 40만원 가까이 지출하게 만들었던 그 사진관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가족사진을 찍어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동생이 언제 귀국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엄마, 아빠와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기왕이면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넷이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근 3년 안에 도래하길 바라며.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그리고,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을.
우리 가족의 여행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