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교류하는 아들 친구 엄마 두 분이 있다.
재미있는 분들인데, 특이하게도 사주를 아주 좋아하신다.
매주 토요일에 사주 강의를 들으러 다니시기도 했다.
어느 날 이분들이 "관상을 잘 보는 스님이 있다"고 했다.
당시에 마침 한가했던 나는 "언제 한 번 함께 가보자"고 했고,
실행력 강한 한 분이 바로 날짜를 잡고 예약을 해서 스님께 관상을 보러 갔다. 지난 6월 말 어느 금요일의 일이다.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관상을 보러 간다고 했더니,
남편이 어이 없어 하면서도 "일"에 대해서 한 번 물어보라고 했다. 나 역시 '연초부터 몇개월간 기존 일을 쉬면서 천천히 생각했는데도 달리 하고 싶은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조금 답답하여 관상 보는 스님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기로 정했다.
1.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2.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기존에 하던 그 일이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걸 관상 보는 사람에게 물어본다는 것도 어이가 없고,대답을 듣고 짜증이 나서 이틀 동안 앓아누웠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이 때는 나름 심사숙고한 질문이었고, 그 외에 달리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평일 오전에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방문한 나에게,
내가 질문을 미처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그 스님은 "집에만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들썩이겠다"고 했다.
황당하여 "나는 집에 있는 게 좋고 편하다"고 했지만,
그 스님은 "내가 우리 집안의 기둥이기 때문에, 가정의 평화와 나의 건강을 위해서는 내가 일을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힘주어 말했다.
하도 여러 번 그러길래, "그러면 기존에 하던 일 말고 시골에 내려가서 숙박업을 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는데, 둘 다 완전히 나랑 안 맞는다며, "기존에 하던 일이 딱 맞으니, 일을 좀 줄여서 하더라도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것이 좋다"며 강경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얘기한다.
관상쟁이로부터 들은 얘기를 남편에게 해주었더니 너무 용하다며 좋아하고, 친동생에게 해주었더니 자기도 가야겠다며 상호를 묻는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고,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그래서 주말 이틀을 무기력하고 짜증난 상태로 거의 누워 있었다. 남편도, 애들도 다 귀찮고 싫었다.
애들은 그냥 하루종일 TV를 보게 내버려두었고,
남편은 그냥 하루종일 낮잠을 자게 내버려두고,
나는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적절히 가사와 육아를 하고, 해야 할 업무를 챙기며 다시 이전과 비슷하게 지냈다.
여름방학에는 계획했던 대로 시골집 2주살기도 다녀왔다.
그런데 뭔가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고, 그게 뭔지 잘 정리되지 않아 한동안 긴 글을 쓸 수 없었다.
이제는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좌절스러웠는지 안다.
나는 내가 하는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정말로 싫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업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만두는 것이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준비해서 증인신문을 했는데, 현장에서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일상에 집중할 수 없는 것도 싫고,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결론에 의뢰인과 함께 내 마음도 무너지는 것이 싫다.
나는 아주 작고 소소한 일, 소소하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타인의 일생일대의 고통과 고난을 함께 하는 일은 내게 버겁다. 나 개인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일들을 옆에서 함께 헤쳐가는 것이 버겁다.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태도라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일은 좀 더 그릇이 크고 더 능력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맞고,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고객이 불만족한다 해도 큰 일이 일어나진 않는 작고 소소한 일'을 하고 싶고, 그게 내 그릇에 어울린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다.
어제 슈퍼블루문을 보기 위해 산책을 하다가 남편이 내게 말했다. "생각해봤는데, 여보처럼 매사 순응적인 사람이 그렇게 여러 번 싫다고 하는데, 뭘 하자고 하면 항상 좋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그렇게 안 한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로 싫은 거구나 싶어. 안 해도 돼"
지난 몇달간 계속해서 회유, 설득, 압박, 타박을 수차례 반복하던 남편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이력을 갖췄고, 회사도 다 세팅되어 있으니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그걸 마다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였다.
그 때마다 "나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아. 돈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생각하는 여보가 더 버는 방법을 찾아. 내가 도와줄 수는 있어."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내 결정을 받아들이기까지도 이렇게 오래 걸렸다.
내 마음이 뚜렷하지 않고 희미했기 때문이겠거니 헤아린다.
독서모임의 다음 책이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고명환)'라서 책을 읽는데, "자기 자신에게 던질 결정적인 질문을 찾아보라"라는 대목이 나왔다. 내가 품은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이다. 그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나중 문제고, 일단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제대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십이 되도록 어떻게 살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이제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당위, 의무, 기대)'를 따라 왔다. 앞으로는 내 바람을 기준으로 두고 살아가고 싶다. 아직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더 가볍고, 더 자유롭고, 더 마음이 편안한 길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