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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Aug 10. 2024

강릉보름살기를 마치며

여행에 대한 단상

올초 김해 부산에 놀러가서 지인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인이 자기 친구 중에

골프에 미친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골프 라운딩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다음 골프를 예약한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이상한가요?

저도 여행이 끝날 때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데요?"

그러자 지인은 웃으면서

"그럼 너는 여행에 미친 거고~"라고 했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책 '심리계좌'에 돈, 소비, 욕망에 대한 내용이 있다.

나와 가족의 욕망을 인정하되,

마케팅 등에 의해 주입된 가짜 욕망이 아닌  

내 진짜 욕망을 찾고, 거기에 돈을 쓸 것.

'어떻게 돈을 덜 쓸까?'가 아니라

'어디에 돈을 쓰면 가장 행복할까?'를 고민할 것.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내가 떠올린

내게 가장 행복한 소비는 여행이었다.

이제까지 크고 작은 여러 여행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괜히 왔다'거나 '오지 말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기차를 타고 어디를 다녀올 때 기차안에 비치된 ktx 잡지만 봐도 설렜고, 한겨울 김해 부산 여행 중에 이미 여름방학 강릉 보름살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강릉은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싶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다.

강릉에서 보낸 보름의 기간동안 좋은 것이 너무 많았다.

거실 창문 가득 바다가 보이는 숙소,

해질녘 바닷물이 찰랑이는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걷기,

강릉 어린이도서관에서 만화 삼국지를 몰입해서 읽기,

평창올림픽이 열렸던 빙상장에서 스케이트 타기,

경포해변에서 파도를 타다가 튜브가 뒤집어진 일,

맛있는 음식과 멋진 카페,

강릉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포호수,

해변솔밭길 산책 등등.


이렇게 강릉을 다채롭게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겨울방학과 내년 여름방학에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또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여행을 좋아할까? 생각을 해봤다.


여행을 좋아하는 건 일상에 대한 불만이 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내 경우 일상이 불만스러울 때와

비교적 만족스러울 때 모두 여행은 꾸준히 좋았다.


어릴 때 너무 못다녀봐서 어른되어 그 한을 푸는 걸까?

우리 부모님은 어디를 찾아서 놀러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고,

휴가를 며칠씩 쓰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무살이 되도록 고향 근처 뱀사골 계곡 외에는 놀러가본 곳이 없었다.

바다에서 논 것도 스무살 때 강릉 경포가 처음이었다.

(강릉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하나 더 있었네)

그렇지만 여행에 익숙하지 않아 여행이 싫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여행을 안다녀봐서 여행이 좋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가 생각한 이유는,

여행은 '능동적인 선택으로 시간을 보내서' 좋다는 것이다.

여행은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끝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제한된 시간과 돈,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

매번 의식적으로 능동적인 선택을 한다.

휴식을 위한 여행을 와서 숙소에서 가만히 쉬더라도,

능동적으로 선택한 휴식과 늘어짐인 것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되뇌면서 늘어져있는 것과

능동적인 휴식은 만족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강릉에서 보내자!

기간은 보름으로 길게 잡자!

첫번째 숙소는 바다가 잘 보이는 넓은 집으로 하고,

두번째 숙소는 아담한 작은 집으로 하자!

등등 평소 일상에서는 생각해볼 기회가 없던

나의 취향과 선호를 고려해서 능동적으로 결정한

요소들로 시간을 채우니 여행이 즐거운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내 결정에 그저 따르는 가족들의

여행 만족도가 나보다 못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 중간에는 가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그들이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불만족하는 순간이 와도

분노가 치미는 것을 자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 중 능동적으로 선택한 여러 요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 후 일상을 더 좋게 만들 힌트를 제공한다.


나는 높은 건물이 없는 탁 트인 곳에서

나무와 물을 보며 오래 걷는 것을 좋아한다.

경포호수와 해변솔밭길을 좋아하는 이유다.

집에서 멀지 않은 안양천에서도 그런 걷기가 가능하다.

집에 가면 안양천에 자주 가야지!


아이들과 부대끼지 않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던

어린이 도서관, 스케이트장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남은 방학 동안 도서관과 스케이트장에도 하루씩 가봐야지!


해질녘 환상적인 하늘을 보며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으며

파도소리와 바람을 느끼며 걸었던 해변산책.

집에서 한시간이면 바다에 닿을 수 있다.

날이 좋은 주말에 해질 무렵에 맞춰서 바다를 찾아가야지!


그 외에도 단정하고도 효율적이었던 숙소의 가구 배치,

스케이트장에서 자신의 스피드 스케이트를 신고

낮은 자세와 빠른 속도로 스케이트를 연습하던 아주머니

등등 좋은 영감을 많이 얻었다.


여행과 관련된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 삶 자체가 여행과 같다는 것을 의식하며

삶을 여행으로 여기며 여행하듯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수명), 돈, 에너지를 의식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좋게 보낼지

나와 가족의 선호와 취향을 고려하여

능동적인 선택들로 일상을 채우는 것.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그저 수용하고 수긍하대신

여행하는 것처럼 삶의 순간 순간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그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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