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했던 삼촌 VS 좀 놀았던 삼촌
애들 학원 더 보내야 하나 고민될 때 지침으로 삼으려고 쓰는 글
내게는 외삼촌 A와 삼촌 B가 있다.
A외삼촌은 엄마의 막내동생이다.
B삼촌은 아빠의 막내 사촌동생이다.
그래서 B삼촌은 엄밀히 따지면 내게 5촌 당숙이지만, 우리는 그런 호칭과 예절을 엄격히 따지는 선비 집안이 아니라서 그냥 B삼촌이라고 불러왔다.
우리 엄마와 아빠, 엄마의 동생인 A외삼촌과 아빠의 사촌동생인 B삼촌은 모두 한 동네 사람이다. (나도 그 동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A외삼촌과 B삼촌은 동갑이다.
그러니까 두 삼촌은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동갑 친구다.
두 삼촌은 가진 것 별로 없는 시골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각자가 가진 재주로 일가를 이루었다.
얼마 전에 B삼촌의 큰 딸 결혼식이 있어서 참석했다가, 하객으로 온 A외삼촌을 만났다. 두 삼촌은 너무 캐릭터가 달라서, 같은 동네 출신이어도 서로 친한 사이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A외삼촌이 결혼식에 온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A외삼촌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알아주는 공부 수재였다. 삼촌은 전주에서 제일가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에 합격했다.
B삼촌은 내 기억에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집에 잘 붙어 있지 않았다. 특별히 삼촌이 어릴 때 큰 말썽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약간 껄렁한 말투에 조금 건들거리는 태도와 작은 할머니께 자주 대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삼촌이 어린 나이에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삼촌을 '노는 부류'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삼촌은 어린 나이에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아직 50대 초반인데도 큰 딸이 벌써 20대 후반이고, 그 딸이 결혼을 해서 젊은 장인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삼촌은 또래 친구들이 다 도시로 향할 때 고향에 자리를 잡았고, 젊은 감각으로 농사를 사업으로 운영하여 잘 팔리는 농작물을 선정하여 좋은 시설을 갖추고 길러냈고, 그게 성공해서 지금은 피고용인을 여러 명 고용하여 농사로 매년 제법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삼촌의 아들(내 육촌동생)도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와 삼촌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삼촌의 농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학생 때도 맨날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 다녀서 작은 할머니댁에 놀러 가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삼촌을 막연히 불성실하다고 생각했고, 혼전 임신으로 불성실한 이미지가 더 굳어졌지만 삼촌은 전혀 불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우리 마을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던 A외삼촌은 대학 전공대로 선생님이 되었고, 그 후로도 공부를 많이 해서 학위를 따고,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 더 높은 직위를 갖게 되었다. 다만 A외삼촌은 공부하느라 결혼이 늦어져서 큰 딸이 고등학생, 작은 아들이 중학생이다. 애들을 다 키워서 결혼까지 시키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외삼촌도 서울에 자기 집이 있고, 공부를 많이 해서 안정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공부가 외삼촌에게 무용했던 것은 아니다.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A외삼촌과 B삼촌을 결혼식에서 만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공부를 잘했던 A외삼촌도 잘 살고 있고, 공부를 멀리 했던 B삼촌도 잘 살고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꼭 불성실한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해도, 공부를 못해도, 여러 가지 길로 잘 살 수 있다. 그러니 공부와 잘 사는 것은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잘 산다'는 차원을 넘어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두 삼촌들이 공부를 잘했는지에 상관없이 둘 다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둘 다 행복한지 아닌지는 조카인 나로서는 모른다. 삼촌들의 형제인 우리 엄마 아빠조차도 삼촌들의 행복 여부와 정도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는 햇빛과 그늘이 있고, 어떤 이유로 그늘이 드리워지는지, 그늘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그 그늘이 행복감을 얼마나 저해하는지 타인은 알기 어렵다. 아마 나의 삼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끔 행복하고, 가끔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 때 공부를 잘하는지와 나중에 어른이 된 후의 행복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드라마는 대단한 성찰이 담긴 제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한번,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에게 최대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학습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게 되었다. 애들이 요즘 너무 놀기만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B삼촌 딸의 결혼식 덕분에 아이들의 하교 후 놀이가 계속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