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언젠가 한 번쯤, 디즈니랜드1

'놀이동산이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한다면

by 김삐끗

디즈니랜드에서 이틀이나?


남편이 디즈니랜드에서 이틀을 보낸다고 했을 때, 글쎄... 참 의아했다.

아무리 넓다고 하지만 짧은 여행기간에 이틀이라는 시간을 놀이공원에 쓰는 게 맞나 싶었다.

딱히 디즈니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에 보았던 디즈니 만화는 가물가물할 정도인데...


어쨌든 남편의 계획을 믿고 디즈니랜드는 내가 맡아서 계획을 세웠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개장 시간에 맞춰서 디즈니랜드에 입장했다.

우리는, 특히 디즈니랜드 여행 계획을 담당했던 나는 놀이동산이 아닌 전투에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디즈니랜드 입구로 전진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인만큼 정해진 시간을 알차게 쓰려면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디즈니랜드에 오기 전 어플을 통해 어떤 놀이기구를 어떤 타이밍에 타야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일정을 짰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리라!


월요일에 사람이 가장 적을 것 같아 월요일로 예매했는데, 전 세계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는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늘 안에 입장할 수 있을까.

입구 대기줄에 선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감과 더불어 묘하게 긴장감이 흘렀다. 놀이기구 대기 시간을 줄이려는 사람들은 마치 출발선에 선 경주마처럼 옆 사람을 곁눈질로 견제하며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렇게 비장하게 타게 된 첫 번째 놀이기구, '카'

매우 부지런히 발을 놀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는 1시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거 뭐 이렇게 대단한 놀이기구인가? 자동차 경주라고? 나는 경쟁 같은 거 싫어하는데 굳이 타야 하나?

내 계획의 첫 번째가 이렇게 비효율적인 대기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줄의 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다른 걸 타러 갈까'라는 수도 없는 내적 갈등을 이겨내며 드디어 '카'에 탑승했다.


서울의 어느 놀이동산에서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놀이기구를 타 본 적이 있다. 나는 신밧드의 모험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역사가 오래된 놀이기구여서 내 유치원 소풍부터 성인이 된 후 한 데이트까지 신밧드의 모험이 빠지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인형들이 어렸을 때는 너무나도 무서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옆 친구의 팔짱을 꼬옥 잡고 탔다.

어른이 되어서는 추억을 입장료 삼아 타고는 했다.


미국 LA '카'와 대한민국 서울 '신밧드의 모험'은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의 인형들은 내가 지금 보는 게 인형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현실성 있게 구현해 놓았고, 무려 자동차라는 금속성의 사물인데도 움직임이 마치 살아서 진짜 나에게 말을 거는 줄 알았다. '신밧드의 모험'은 유치원생도 쉽게 인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인공적인 매력이 있었다.


신밧드의 모험처럼 삐그덕거리는 인형만 보면서 자란 나에게 '카'는 디즈니랜드 첫 놀이기구로서의 충격이 꽤 컸다. '카'를 기다리는 동안 그냥 다른 놀이기구 타러 갈까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결국 타길 잘했다 싶었다.


이어서 다양한 놀이기구를 탔지만 무엇 하나 재미없는 놀이기구는 없었다.


'재미'는 꼭 스릴이 있어야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도 어른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정말 그 애니메이션 세계에 폭 담기는 체험을 하기 때문이었다.

가디언즈오브갤럭시는 기구를 타러 가는 곳부터 우주선으로 꾸며 놓은 내부가 아주 실감 났고, 직원들의 태도도 남달랐다. 탑승객이 어딘가로 납치되는 설정이었는데 직원들이 주의사항을 안내할 때나 줄을 세울 때 납치한 적의 엄한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게다가 디즈니랜드는 스토리텔링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카'역시도 그랬다. 카 랜드에 온 걸 환영해, 정비소에서 자동차를 점검하고 이제 레이스를 할 거야. 하나, 둘, 셋 출발! 엎치락뒤치락 완주! 이 스토리텔링이 놀이기구에 스릴을 부여했다. 정말 어리디어린 아이들도 재미있게 탈 수 있는 놀이기구이면서 그 아이들에게 카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기승전결을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놀이기구였다. 이게 디즈니인 것인가..!


난 국어국문을 전공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의 힘을 안다. 스토리텔링은 가짜를 진짜 같게 하고, 내 밖의 사건이지만 내 안의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놀이기구에는 스토리텔링이 부여되어 있었고, 심지어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곳이나 선물가게, 음식점에도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컵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디즈니랜드의 재미와 인기는 바로 이 스토리텔링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친정 엄마가 아기를 봐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함으로 맘껏 놀기 위해 롯데월드에 갔다.

꼭 타고 싶었던 혜성특급은 긴 대기줄에 지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몇 개 타지 않았던 놀이기구들도 지그재그로 된 긴 대기줄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차례가 되어 탄 라이더도 짧은 운행시간에 허무했다. 다시는 우리의 의지로 오지 말자고 이야기를 하며 입장한 지 4~5시간 만에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디즈니랜드는 오랫동안 기다려도 기다리는 공간조차 볼거리가 가득했고, 캐릭터들이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연기를 하며 디즈니 세계관을 흠뻑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너무 비싼 입장료, 너무 많은 사람들에 기가 쏙 빨릴지라도 디즈니랜드는 다시 또 가고 싶은 놀이동산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아무렇지 않은 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