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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Dec 29. 2021

만년필을 써 보니

   만년필을 쓰시네요~ 라며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 조금 특이하게 보이나 보다. 만년필은 나의 아끼는 취미이며 장기(?)다. 서예를 좋아하고 문자 도안과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있으며 손글씨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 잘 맞는다. 볼펜과 같은 필기구에 비해 맛이 다르다. 가끔 탐나는 것이 보여서 들썩이다가 아내의 타박을 맞게 하기도 하는 나의 이 취미에는 어릴 적 그림이 들어있다.     


   6살 위인 형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중학생이 되었다. 형은 중학생이 되자 펜에 잉크를 찍으며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멋있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교복 저고리에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금박 만년필을 꽂고서 집을 나섰다. 나는 손도 대지 못하는 그 만년필은 우리 집 이인자의 상징인 듯 반짝였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무엇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으나 제법 넓은 종이의 상장과 함께 금박 한자가 새겨진 만년필 상품을 받았다. 형의 신물에 견줄 만큼 당당하고 폼 났다. 그 순간 필통 속 볼펜과 연필을 다 몰아내고 나의 대표 필기구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만년필을 쓰면 좋은 점이 많다. 분위기가 품위 있고 고급스럽다. 글씨를 쓸 때 정성스러워져서 필체가 차분하고 예뻐진다. ‘만년필을 쓰면 속도에 맞춰 글을 쓸 수 있으나 볼펜으로 쓰면 속도가 생각을 앞서가므로 거짓된 글을 쓰게 된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은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또 새 만년필은 한 달가량 쓰면 길이 들면서 내 마음에 맞게 움직이는 나만의 필기도구로 만들어진다. 깊은 밤 글씨를 쓸 때면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가 경건하게 느껴진다는 애호가도 있다.

   그런데 가끔 아내의 핀잔과 구박을 받는다. 숫자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책상 위에만 얼추 여덟 개가량 보이고, 이곳저곳을 뒤지면 아마 스무 개도 훨씬 넘게 나올 것이다. 아내는 차라리 가게를 차리라며 타박을 하지만 개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성과 용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굵고 가늘고, 부드럽고 거칠고, 무던하고 예민하고, 종이와 속도, 압력에 따라 필기의 느낌과 그려지는 결과가 다르다. 낙서하듯 개념을 그릴 때와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할 때, 폭풍처럼 일필휘지 써 내려갈 때, 한순간 눈에 확 띄게 짧은 글과 이미지를 그려낼 때 다 다른 펜을 골라서 쓴다. 품위 있고 고급스러운 만년필 글씨는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그리는 것이라는 말이 좀 더 정확할 듯하다.      


   그래도 이십여 개 넘는 만년필 중에는 가장 아끼는 것이 하나 있다. 이십 년쯤 전 아내가 선물해준 것이다. 가장 고급스럽고 성능도 최고다. 하지만 이 녀석도 언제나 만족스럽지는 않다. 세상에 둘도 없이 마음에 들다가도 어찌 이 모양인가 싶게 마음에 안 들고 불만스러워진다. 그러면 구석구석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자꾸 드러나고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은 갈수록 편리를 추구하고, 편리함을 기준으로 기술과 사회의 발전도 평가되어 가는 것 같다. 편한 세상이 ‘더 나은 세상,’ ‘삶의 질이 높은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 밑에는 ‘나를 더 편하게 하는 세상이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깔린 듯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차 사람에도 적용되어서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위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런 아내인데도 가끔은 엉뚱한 선을 그려대는 만년필처럼 까탈스럽고 불편한 사람이 된다. 어떻게든 바꾸고 바로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내 마음에 맞게 움직이지는 않고, 도리어 점점 더 실망스럽게 하기 일쑤다. 그러면 나는 그 불편함과 불만족스러움에 더 집착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그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 그 기대는 요구가 된다. 막역하니 거리낌도 적다. 그런데 사람을 향한 기대와 요구는 바닷물 같은 것일까.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른다. 더 요구하고 원망하고 다투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자신과 너무도 다른 아내와 다투다 지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제발 아내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촌철살인이었다. “이놈아, 그렇게 잘하는 네가 좀 해라. 그러라고 잘하는 너를 붙여놨잖느냐.”      


   사실 만년필은 불편한 필기도구다. 비싸고 까다로우며 쉽게 고장이 난다. 그래도 나는 그 불편함 때문에 만년필을 쓴다. 불편함보다 더 큰 것을 얻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의 편함이란 것은 나의 욕구와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떠넘겨 부담시켜서 얻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편하고 싶은 마음, 그것을 조금 비워내고 그 빈 곳에 소박함과 겸손함, 약간의 기다림을 채우면 더 큰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되는 삶의 이치, 만년필을 쥐고 쓸 때마다 재차 깨닫는 삶의 지혜다.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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