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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Dec 30. 2021

아내의 가방

   아내가 가방을 싸고 있다. 오늘은 1박 2일 여행을 가는 날. 벌써 출발하기로 한 시간이 지났다. 어제 필요한 것은 내가 다 챙겨놔서 그냥 나서기만 하면 되는데 아내는 전혀 나설 기색이 아니다. 아직 덜 꾸렸다 겨우 이틀 여행에 가방 여러꾸리며 부산을 떤다. 지켜보는 나는 영 못마땅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는데 슬슬 부아가 난다. 참다 못해 뭐라고 하자 아내는 싸 놓은 짐이나 차에 실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돌아다니며 콘센트를 내리고 스위치를 끈다. 이미 내가 다 해 놓은 문단속까지 확인한 다음 차에 오르며 그까짓 몇 분 늦은 게 대수냐는 말로 염장을 건드린다. 즐거운 기분은 이미 구겨져 버렸다.          


  몇 해 전 해외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흘간 여행을 하자는 말에 아내는 상당히 좋아했다. 여행은 준비하는 행복이 반이라더니, 들뜬 아내는 한 달 전부터 이리저리 알아보며 정보를 수집했다. 보름 전부터는 집중적으로 쇼핑을 하더니 일주일 앞두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방이 하루당 한 개씩, 거의 열 개가 되어가려 했다. 억지로 이리 합치고 뭉쳐서 트렁크 세 개를 끌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하는 동안 아내는 오전과 오후, 저녁, 그리고 장소마다 차림새를 바꾸곤 했다. 때와 장소, 분위기에 따라 모자에서 구두까지 세트로. 그러면서 아내는 결혼 전의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한 모습이 되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곳곳의 도깨비시장에서 기념품도 사 모아서 돌아올 무렵 짐은 두 배 넘게 늘어나 있었다.

  외출할 때 나는 최대한 가볍게 다니려고 한다. 그런데 아내는 가방 세 개 정도를 챙긴다. 핸드백 한두 개에 가방 또는 쇼핑백 한두 개. 육아용품과 아이들 주전부리를 챙기지 않은 지 오래고, 애들도 다 분가하여 단둘이 사는데도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1박 2일이든 일주일이든 여정과 가방 수는 큰 관계가 없는 것도 신기하다.

  도대체 아내에게 가방은 무엇일까. ‘여자의 가방’이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사회학자가 있었다. ‘여자의 방보다 더 은밀한 그곳’이라는 부제의 그 책은 70명 넘는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조사한 것이라고 한다. 여자들에게 가방은 소품 이상의 본질적인 필수품이다, 여자는 가벼워지기를 원하면서 모든 걸 다 갖고 다니길 원한다, 삶의 궤적을 따라 가방도 변하며, 가족이 생기면 가방은 더욱 커지고 무거워진다, 가방은 여자의 내밀함의 마지막 경계선이고 자아의 내밀한 부분이며 정체성의 산물이자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등등….

  다분히 수다스럽고 장황했으나 새로이 느끼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주로 ‘핸드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핸드백 말고도 가방과 에코백, 쇼핑백도 챙긴다. 그것들이 몇 배 더 크고 무거울 것이다. 저자는 아내의 한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아내의 짐 꾸리기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내용과 목적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핸드폰, 귀중품, 필수품 등은 핸드백에 넣고, 속옷이나 기타 필요한 것을 보조 핸드백에 챙긴다(핸드백은 아내의 품위 또는 자존심과 관계가 깊다). 그런 다음 어디를 가서 누굴 만나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물건들을 나누어서 가방이나 에코백, 쇼핑백에 넣는다.

  짐을 싸느라 분주한 아내를 보노라문득 대학 시절이 생각난다. 방학이 되어 고향에 갔다가 올라오려 할 때면 어머니는 언제나 보따리를 여러 개 내놓으셨다. 책만 몇 권 들고 가볍게 다니고 싶은데 촌스럽게 보따리라니. 실랑이해서 몇 개는 빼었으나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로 뭉쳐 메고 상경했다. 그렇다면, 저 가방과 쇼핑백은 오래전에 바리바리 싸 주시던 어머니의 보따리인 셈인가. 그것을 물려받은 아내가 지금 나와 가족을 보살피고 챙기는 것이고.      

  동네 입구에 명품 가게가 생겼다. 번쩍거리게 장식하고 요란한 광고를 돌리면서 눈길을 끈다. 어떤 명품이길래 저리 화려할까.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섰다. 들었던 이름의 다양한 패션용품들이 여러 층 나뉘어 전시되어 있었다.

  둘러보던 아내는 핸드백이 진열된 곳에 이르러 몇 개를 유심히 살피고 만져보더니 가격표로 눈길을 옮겼다. 웬만한 봉급을 웃도는 숫자다. 나는 아내의 뒤에서 주머니 속 신용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한도 금액을 짚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천천히 내려놓고는 돌아서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들릴락 말락 하게

  “저거 들면 오래 사나? 난 필요 없어.”

  라고 했다. 살짝 떠는 아쉬움이 눈가를 지나갔다.

  연애 시절 아내의 모습이 생각났다. 가슴에 꼭 품은 아내의 핸드백은 젊은 여자의 비밀이요 자존심처럼 예뻤다. 삶이 이어지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것은 점점 크고 무거워지더니 가족이 필요한 모든 것을 꺼내 주는 요술 가방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된 지금은 부모와 형제, 자식, 손자들에게 사랑을 가져다주는 보따리로 넓어져 있다. 아내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서 숨을 죽이고 있는 연애 시절 아름다웠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보이는 듯하여 아련했다.


  가방은 무엇을 넣기 위한 것이다. 물건을 넣기도 하고 주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넣는다. 살다 보니 점차 커지고 무거워졌다. 여행자들은 지고 있는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라고 한다는데 지금 아내가 꾸리는 저 가방의 무게는 삶의 무게일까, 사랑의 무게일까. 가슴 한쪽이 꾸욱 하고 눌려왔다.

  소녀이고 아내이며 어머니, 할머니인 사람이 혼자 들기에 어려울 듯한 커다란 짐을 꾸리고 있다.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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