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tive Lore Wild Apr 04. 2023

책 읽기 좋은 그늘 - 링컨센터

뉴욕 공공공간 산책 이야기 

링컨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Address:  Lincoln Center Plaza, New York, NY 10023, USA


대학원에 다니던 중, 학교에서 뉴욕으로 공공공간 답사를 간 적이 있다. 뉴욕 답사 첫날은 맨하탄 남쪽 끝에서 출발하여 센트럴 파크 중간쯤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걷는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뉴욕의 모든 공공공간을 다 가보겠다는 듯이 일정을 짠 열정적인 교수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맨하탄 구석구석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녔다.  

센트럴 파크에서 나와 그 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링컨센터에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 되어있었다.  링컨센터는 우리나라의 예술의 전당과 비슷한 공연장으로 센트럴 파크 서쪽, 브로드웨이를 끼고 있다. 도심 속, 어퍼웨스트(Upper West, 센트럴 파크 기준으로 서쪽 지역) 중앙에 있는 링컨센터는 사람들이 별일 없이 그곳을 통과하는 것도, 뜰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것도 누구에게나 허락하는 친절한 공간이다.  


화려한 미드 타운의 고층건물과 세련된 맨하탄 공원을 헤메이다 지친 상태로 링컨센터에 도착했는데도 품격 있는 건물과 뜰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직면이 빛나는 계단을 올라, 메인 광장에 들어서니 둥근 분수대가 새하얀 빛을 내며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공연 포스터가 병풍처럼 걸린 건물 앞에는 설레는 표정의 공연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더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았다. 메인 광장의 왁자지껄함이 사라지자, 안뜰인 허스트 플라자(Hearst Plaza)가 나왔다. 줄리어드 음대를 마주보는 휘어진 잔디 지붕의 파빌리온 건물이 보였다. 무한히 흐를 것만 같은 새카만 물의 표면은 고요한 밤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플라자를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돌아 나오자 오페라 하우스 앞, 나무가 일렬로 서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링컨 센터 나무 그늘 아래에서 보이는 뒤뜰 



나무아래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머리 위를 바라보니 잠시 이 곳이 어디인지 잊혀졌다. 한밤 중 숲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오페라하우스의 창에서 얇게 새어 나오는 빛 줄기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마치 달빛인 듯 했다. 

그 곳은 바클레이스 캐피탈 그로브(Barclays Capital Grove)라고 불리는 링컨센터 안의 작은 숲이다. 네모반듯한 공간에는 나무가 세 줄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고 바닥의 자갈 사이에는 조명이 반짝였다. 낮은 앉은뱅이 담 아래의 간접등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밤 공기를 만들었다. 동화 속 숲에 들어온 것 같은 조명 연출로 나무아래의 밤 휴식은 달콤하기만 했다.


날이 좋은날 나무그늘 아래 그림자


그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있던 어느 날, 기숙사 룸메이트를 뉴욕에서 만났다. 어퍼웨스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라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 곳은 가을 밤, 지친 다리를 쉬었던 링컨센터의 작은 숲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그 곳에 가게 되었다. 친구는 시간 날 때면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책을 읽다 오곤 한다고 말해 주었다. 

낮에 본 작은 숲은 처음 갔던 날 밤과는 많이 달랐다. 밤에는 연주회에 온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면 낮에는 캐쥬얼한 복장의 주민들과 관광객이 많았다. 그들은 나무 아래서 익숙한 듯이 의자를 옮겨 다니며 각자 편한 방식으로 휴식을 취했고, 몇몇은 정말 책을 읽고 있었다.  

자글자글한 자갈바닥 위에는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한 겹의 무늬가 덧씌워져 있었다. 그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도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인 하루였다. 


그날 이후, 링컨센터의 작은 숲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경 프로젝트를 할 때 마다 비슷한 공간을 끼워 넣으려고 여러 번 시도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나무아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땅을 밟아도 흙이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나무뿌리가 뻗어 나갈 수 있는 공간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나무뿌리를 지지해주는 특수한 모듈로 된 포장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링컨센터의 작은 숲은 여전히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든다. 


링컨 센터의 작은 숲


#도심숲 #링컨센터 #책읽기좋은정원 #뉴욕여행


 https://goo.gl/maps/7uZtLVC8AkWcMTiH8


https://goo.gl/maps/UUTqxZnbs86HpuQb6


작가의 이전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