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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May 07. 2024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나는 어디쯤?

그리고 나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지난주부터 인스타그램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 2~3시간을 연속으로 쉬지 않고, 인스타그램으로 시간을 탕진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지난주에 삭제했다.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모르고 있던 자신의 관심사나 취향을 알아차릴 수 있다’라는 말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에 접속을 안 한 지 약 2주 정도 되었고, 제삼자의 눈으로 저장된 콘텐츠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 둘러보았다. 인스타그램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가장 처음에 있는 코어 운동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시작으로 엄청 많은, 정말 많은, 콘텐츠가 저장되어 있었다. 저장한 콘텐츠의 개수를 알려주지 않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스크롤을 한참 동안 내리면서, 저장한 콘텐츠들을 크게 3개로 그룹화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다이어트. 여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다이어트. 독립 4년 차, 이제는 꾸준한 운동과 올바른 식단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홈트를 선호하기 때문에 헬스장을 가지 않고도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소도구 운동 영상들이 저장되어 있다. 덤벨, 밴드, 폼롤러 등 이용한 부위별 운동이 있다. 과연 난 여기서 몇 개의 운동을 시도해 보았을까?


그리고 식단. 다이어트한답시고 매일 닭가슴살, 고구마, 야채만 먹을 수 없다. 원푸드 다이어트는 정말 못 하겠더라. 그래서인지 저장된 요리 콘텐츠를 보면, 다이어트 로제 떡볶이, 다이어트 초콜릿케이크, 다이어트 짜장면 만드는 법 같이 속세의 음식을 다이어트용으로 만든 영상들이 주로 저장되어 있다. 문제는 이걸 다 해 먹으려면 정말 많은 식재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직 크리에이터들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요리해 본 적이 없다.


두 번째는 성장. 다양한 성장 콘텐츠가 저장되어 있다. 요즘 회사에서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 영향 탓인지 커리어 발전 팁, 자기 계발, 동기부여, 멘털관리, 인간관계 같은 콘텐츠가 많다. 특히, 직무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지,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성향이 다른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적성 찾기, 좋아하는 일 찾는 법 같은 콘텐츠를 많이 읽었고,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을 찾아보았다. 게다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으로 더욱 많은 성장 콘텐츠를 접하게 되었다. 끝도 없는 성장 콘텐츠는 나타날 때마다, 나의 손가락은 저장 버튼으로 향했다.


마지막은 책. 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고민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서점으로 가서 관련 책을 찾아 해결 방법을 알아보고는 했다. 지금은 대형 서점을 쉽게 갈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주로 검색을 통해 책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신간 소개 및 누군가의 책 추천 콘텐츠면 일단 저장한다. 나중에 서점에 가서 둘러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서점에 갔을 때는 인스타그램을 열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저장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나중에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저장한 콘텐츠를 다시 사진으로 캡처한다. 이 무슨 비효율적인 행동인가.






이렇게 나의 인스타그램을 다시 한번 둘러보니,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게으른 야망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많은데 정작 실행은 안 한다. 그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나오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멍청하게 행복 회로를 돌린다. 2, 3시간은 아주 우습게 지나간다. 인스타그램은 나를 게으른 야망가로 알고리즘에 집어넣었고, 나는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 지옥에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나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사실 원하는 모습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 멘털 관리를 위해서는 명상 또는 글쓰기, 업무를 회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을 통한 커리어 성장 그리고 상황에 맞는 책을 읽으면서 사유를 하는 것. 마지막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실행하는 것만이 남았다. 이제 남의 콘텐츠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더 이상 게으른 야망가가 아닌, 야망을 이룬 ‘만족스러운 나’가 되어 보도록 하자. (일단은 희망차게 끝맺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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