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피스 Feb 14. 2020

돌직구 신입과 꼰대 상사가 만난다면

출근길이 한결 편해지는 관계의 기술(2)


스물여덟. A는 눈물겹도록 처절했던 2년 동안의 취준생 신분을 끝내고 원하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자존심이 센 성격 탓에, 친구들이 하나 둘 먼저 직장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취업준비기간은 A에게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지난 시절의 열등감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듯 A는 신입사원 연수부터 동기 대표를 맡아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팀 미션에서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우승까지 이끌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부서 배치 전부터 사내에는 아주 괜찮은 신입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동기들을 진두지휘하던  A가, 부서의 막내로 들어가며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우리가 만난 것일까


신입A의 사수로는 꼼꼼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B가 지정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기에 B와 같은 성격이 적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OJT 기간이 끝날 때 즈음 그 둘 사이에는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신입A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사B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배우는 입장이라지만 출근 때부터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조언과 잔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지적을 하니, 제대로 된 꼰대 상사를 만났구나 싶었다.

 

그뿐 인가. 회의 때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하면 ‘그게 과연 먹힐까?’라며 안 되는 이유를 10개쯤 들며 반대했다. 충분히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들이 지금 방치되어있으니 한 번 개선해보자고 건의하면 사수B는 오히려 일을 키우는 거라며 막아섰다.


상사B의 모든 행동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꼴 보기 싫었던 건, 윗사람들의 눈치만 살피며 묻어가려는 태도였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A로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상사B에게 논리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둘의 사이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신입A는 B같은 사수를 만나 직장생활에 질리기 시작했고, 상사B는 신입 주제에 A가 자꾸만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루에도 몇 번씩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 신입A와 상사B의 욕구 유형


윌리엄 글래서의 5가지 욕구 이론에 기반하여 보면 신입A는 ‘힘의 욕구’가 높은 유형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상황을 자기 생각대로 통제하려 하고, 승부욕이 강해 갈등이 생기면 이기고 싶어 한다. 또 인정 욕구도 높아서 자신의 노력이나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면 불만이 쌓이고, 비판에 예민해서 타인이 자기 의견에 반박하면 목소리부터 커진다. 누군가 자기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을 곧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사이다, 다르게 말하면 돌직구 어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 특징이다.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해야 하고, 잘못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며, 이해가 안 될 때는 왜 그러냐고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대로 상사B의 경우에는 ‘생존의 욕구’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지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때문에 새로운 시도, 환경의 변화, 불확실한 상황을 싫어한다. 평온한 호수에 갑자기 파도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B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를 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먼저 그린다.


또한 이들은 정해진 규칙이나 상식을 지키려고 한다. 자신도 최대한 선을 넘지 않으려 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룰을 벗어나 행동하는 것도 잘 참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꼰대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충고와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자주 하는 것이다.




| ‘생존 욕구’ 유형을 상사로 만났다면


욕구를 통해서 상대의 행동을 먼저 이해하려는 이유는 바로 그 욕구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 욕구’ 유형인 상사B가 신입A의 의견에 자꾸만 반대하는 이유는 공격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바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변화가 두려운 상사B의 입장에서, 자꾸만 뭔가를 바꾸고 개선하자고 주장하는 신입A는 괜한 걱정거리를 만들어내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또 ‘생존 욕구’ 유형들의 경우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을 하는 편이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미리 고려하고 대비해야 비로소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존 욕구 유형과 갈등이 일어난다면 먼저 나의 행동이 그의 불안을 활성화시키고 있지 않은 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의 불안을 수용하고, 그에게 안정감을 줌으로써 생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게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변화를 추진해야 할 때는 그들에게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빨리 결정하도록 재촉하거나 예고 없이 불쑥 무언가를 제안할 경우 그들의 불안은 크게 높아진다. 따라서 깜짝 발표식으로 얘기를 던지기보다 공식 회의 전에 메일 등으로 생각이나 안건을 미리 공유해주는 것이 좋다. 예방주사를 미리 놔주는 것이다.

거기에 예상되는 문제점과 대안까지 함께 제시해주면 훨씬 도움이 된다. 나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힘의 욕구’가 높은 이를 부하직원으로 만났다면


‘힘의 욕구’ 유형인 신입A가 가장 원하는 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타인의 인정이다. 이것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을수록 불만과 화가 쌓이게 되니 상사 입장에서는 버릇없고 기어오른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신입A를 잘 다루려면 이 통제와 인정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반대를 하기 이전에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위해 했던 그의 노력과 창의성을 먼저 충분히 칭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좋다. 또 너무 세세한 것까지 지적하기보다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권한이나 책임을 확실하게 위임해주고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힘의 욕구’가 높은 유형들은 상대가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기거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판단하면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더 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서로 상극인 것 같은 힘의 욕구와 생존 욕구 유형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빈 말이나 입에 발린 말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식적이고 포장된 말과 태도보다는 오히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꺼내면 생각보다 오해나 갈등은 쉽게 풀릴 수도 있다.


A나 B와 같은 사람 때문에 직장생활에 고초를 겪고 있다면, 그들의 행동 밑에 깔린 욕구를 먼저 읽고 충족시켜줄 방법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상대만 좋은 일 해주는 것 같아 억울할지는 몰라도 한 번 해보면 안다. 그게 곧 내가 편안해지는 길이라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 일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