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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피스 Apr 29. 2021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편안한 사람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고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들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사람과의 관계나 직업, 또는 사는 곳을 일정 기간 동안 유지하다보면 익숙함과 함께 뭔지 모를 불편감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그 불편감은 때로 권태로움이기도 하고, 영원히 여기에 정체되어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기도 하다. 또는 깊어지는 관계에서 오는 책임의 무게감이기도 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건 이들에게 공포에 가깝다.

'익숙함=편안함'이 곧 불변한 진리에 가깝다 여기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넌지시 하면,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는 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는 제안을 주인공 펀이 거부했을 때, 그녀의 언니가 지었던 표정처럼 말이다.


내가 맺는 관계, 내가 속한 환경에 익숙해질 수록 나를 규정하는 것들 또한 많아진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점점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특정한 행동을 해내기를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가령 뭔가 안하던 행동을 해볼라치면 '너 갑자기 왜 그래?'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거나,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응당 이것은 해야하지 않느냐'며 암묵적인 압박을 해온다.


영화에서도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는 펀 언니의 가족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 값이 그동안 얼마나 올랐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2008년 금융위기 때 부동산을 더 샀어야 해'라는 말을 던진다. 그 대화에서 펀이 화가 난 것도 고착된 사회가 던지는 그러한 메시지에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익숙함=편안함'이라는 공식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낯설고 불안정한 삶에서 자신이 보다 나 다워짐을 느끼고,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에서 수용되는 경험을 하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외국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에서 내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내를 받아 깨끗하게 정돈된 호텔방에 들어설 때 내가 이 낯선 국가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노매드랜드>는 '불안정함이 주는 안정감'이 무엇인지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떠남과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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