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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ebee Oct 06. 2020

CPR 하며 랜딩 하던 그 날, 쓰린 크리스마스 1

승객을 잃은 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16년 12월 24일

휴스턴 비행.


로스터(비행 스케줄)를 확인하고 기분이 좋았다. 오퍼레이팅 크루 목록 속 내 이름 옆에 나란히 토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토니는 내 입사 동기다. 미국에서 승무원을 하다가 이직한 경력 승무원이었는데, 트레이닝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어버버 거리는 나를 아빠처럼 데리고 다니며 챙겨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얼마나 고마운 친구냐면, 첫 비행 전에 실시되는 최종 평가 당시, 갤리에서 서비스 트레이(쟁반)를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내게 슥- 다가와서는 “하니, 얼른 *코셔밀(Kosher meal) 들고나가서 트레이너한테 열어도 되냐고 물어본 다음에 다시 가지고 들어와.”라고 코칭해준다거나, 기내 화재 제압 테스트를 할 때면 소화기를 들고뛰며 “I need a back up!(나 도와줄 사람 필요해!)”이라고 소리치는 내게 “I am your back up!(내가 널 도울게!)”하며 뒤쫓아와 주는 헌신을 보여줬었다. 아마도 내 미국 아빠는 내가 시험에서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갈까 봐 어지간히도 걱정이었나 보다. 아무튼 그 덕분에 벌써 비행 1년을 꽉 채울 수 있었단 걸 부인할 순 없다.


(*Kosher meal; 유대인 율법에 따른 기내 특별식. 코셔 인증을 받은 스티커가 부착된 박스 채로 기내에 실리며, 승객이 직접 씰을 뜯고 내용물을 확인한 후에만 서비스가 가능하다.)


그런 그와 트레이닝 이후 유니폼을 입고 처음 만나는 날.

16시간가량의 긴 비행임에도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브리핑룸으로 들어갔다.

“하니, 잘 지냈어? 살이 좀 찐 거 같다 너?” 만나자마자 팩트 폭력을 아끼지 않는 그를 째려보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변하지 않은 내 행동에 푸스스 웃은 그는 “크리스마스인데 휴스턴 가서 뭐할 거야?”라고 물었다. 사실 레이오버를 가는 이유가 오직 중동에서 구하기 어려운 돼지고기와 신선한 과일을 사기 위함인 나는 할 일은 없지만 아마도 장을 볼 거라고 대답했다.

“식재료 쇼핑? 아마 크리스마스 당일이라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텐데? 우리 집에 같이 갈래?”

“너네 집? 너 휴스턴 출신이었어?”

“응 몰랐어?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거야 하니?”

“그럼 넌 나 어디 사는지 알아? 오 제발 서울이라고 대답하지 마. 서울이 한국의 전부는 아니야...”

아는 사람과 비행을 하는 게 처음이라 괜히 들떠있었는지, 평소답지 않게 실없는 농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애처럼 낄낄거리며 브리핑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하니 이리 와서 밥 먹어. 너 뭐 먹을래? 생선? 아님 소고기?”

마지막 정리를 끝내고 갤리로 들어선 내게 점심 트레이를 건네며 토니가 물었다.

“나 아무거나 너 고르고 남는 걸로 줘”

비행시간이 15시간을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이미 혼을 뺏긴 상태였던 나는 메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른 랜딩 해서 호텔 침대 위에 눕고 싶을 뿐. 그런 나를 보고 입을 삐죽이며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본 그는 연어구이를 내 트레이 위에 툭 하고 올려놓고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잠은 좀 잤어? 아까 엄청 흔들리던데”

“응 오히려 비행기가 흔들려서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처럼 잘 잤어. 그래서 더 잠이 안 깨나 봐 얼른 호텔방에 들어가서 자고 싶어..”

긴 비행이다 보니 CRC(crew rest compartment; 기내에 숨어있는 승무원들의 휴식공간. 서비스와 다음 서비스 시간 사이에 승무원들이 팀을 나누어 들어가 2-3시간씩 쉬고 나온다.) 휴식시간이 있었는데, 전날 못 잤던 터라 터뷸런스로 기내가 엄청 흔들렸는데도 머리를 붙이자마자 잠들었던 것이다.


“진짜로 우리 집 안 갈래? 너 할 거 없을 텐데..”

“가족들끼리 크리스마스 파티하는 거 아니야? 다들 너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기대하고 계실 텐데.. 내가 방해하는 거 같아서 싫어”

“아니야 가족들끼리 함께하는 거니까 더더욱 같이 가야지!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잖아!”

“나 낯가려서.. 진짜 괜찮아 가족들하고 좋은 시간 보내”

“그래도 랜딩 할 때까지 생각해보고 생각이 바뀌면 꼭 말해.”

끈질기게 물어보는 토니한테 연신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했다. 홀로 호텔방에 박혀있을 나를 걱정해준다는 게 너무 고마웠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소비할 에너지가 더 이상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 물론 그게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이미 15시간의 비행은 나로 하여금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히 바라게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작년 크리스마스도 토니와 함께 보냈었다. 물론 토니뿐만 아니라 입사동기들과 함께 각자 요리를 해서 토니네 집으로 모였다. 밤새 웃고 떠들며 세계 곳곳에서 두바이 사막으로 떨어져 모인 서로를 위로했었지. 그 당시엔 내가 언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신기하고 행복했었는데.. 그게 벌써 1년 전이라니.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서는 의미 없이 트레이 위의 연어를 포크로 쿡쿡 찌르던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무릎에 올려져 있던 트레이를 바닥에 던지고 일어섰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

뒷 갤리와 바로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던 할머니 한 분이 그대로 쓰러지시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모든 상황이 슬로모션으로 느껴지며 자동반사처럼 할머니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의 어깨를 흔드는데 눈을 뜨시는 듯하더니 그대로 힘없이 툭 고개를 떨구시는 게 아닌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덜덜덜 떨리는 손을 인지하는 그 순간, 토니가 산소통을 가지고 옆에 앉았다.

“내가 연결할 테니 너는 사무장한테 전화해”

“... 응!”


나는 얼른 옆에 있던 전화기를 들고 사무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자마자 사무장은 곧바로 심폐소생술 장비를 손에 들고 달려왔고, 그와 동시에 의료진을 찾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었다. 승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조를 이루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매 년 까다롭게 받아온 기내 안전교육이었지만, 내가 실제상황에서 쓸 일이 있을 거라곤 사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몸이 기억하는 대로 모든 크루가 연신 움직이기 시작했고 캡틴은 빠르게 랜딩을 준비했다. 기내의 응급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가장 우선순위로 랜딩 할 것이라는 캡틴의 연락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하는 최소한의 크루만 남기고 나머지는 도어를 지키고 랜딩 준비를 빠르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도록 하고 또 했던 트레이닝인데..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갤리에 너저분하게 흐트러져있는 물건들을 정말이지 집어던지다시피 하며 컨테이너에 처박고는 기내로 나갔다. 비행기 맨 앞 머리를 시작으로 꼬리까지 뛰어다니며 “안전벨트 부탁드립니다.” “곧 랜딩 합니다. 좌석에 있는 물건들을 집어넣고 앉아주세요”라고 수없이 소리쳤고, 그렇게 정신없이 복도를 달리다가 화장실 문과 마주칠 때면 문이 부서지도록 두드리며 얼른 나와 랜딩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원래 내 담당 좌석은 R5. 기체의 오른쪽 가장 뒷 문이었지만, 인디안 할머니와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인디안 남자 크루와 자리를 바꿔 L4도어(기체의 왼쪽 중간 문으로 승객과 마주 보고 앉는 자리) 앞에 앉았고, 랜딩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속으로 수없이 ‘제발’이라고 되뇌었다.

쿵- 하고 랜딩 하는 순간, 내 마음도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그 날따라 랜딩이 어찌나 거칠게 느껴지던지... 승객들은 소리를 내질렀고 평소 같았으면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승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과 기내를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저 멀리 L5(기체 왼쪽 가장 뒷 문)에 앉아있던 부사무장이 내게 인공호흡 시 사용하는 포켓마스크를 흔들어 보였다. 부족한 포켓마스크를 가져 다 달라는 신호에 나는 여전히 거칠게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에서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섰다. 휘청거리며 마스크를 꺼내려 뒤를 돌아 정면을 바라본 그 순간, 저 멀리 비행기 머리에서부터 곡예를 하듯 달려오는 사무장이 보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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