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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신 Jan 25. 2019

[이전글]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하는 '416 공방'

[현장] "죽음 옆에 두고 살지만, 여기서는 웃을 수 있어요"

<오마이뉴스>, 2016년 1월 10일 게재.



엄마들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곳, 공방

"우리는 여기서밖에 못 웃어요. 다른 데서 웃음을 보이면 자식 잃은 어미가 뭘 저렇게 좋아하냐 그러거든요. 울면 맨날 울기만 한다고 그러고……" (고 정원석군 엄마 박지민씨)

엄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산 합동분향소 유가족 대기실 한 쪽에 마련된 작은 공방. 원석이 엄마가 말한 '여기'는 바로 이 공방을 뜻한다. 세월호 엄마들이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장소, '416 공방'이다.  

세월호 참사 632일째를 맞은 지난 7일, 공방은 두런두런 앉아있는 엄마들 30여 명으로 가득 찼다. 엄마들은 버려진 양말목을 나무틀에 걸어 지갑 만들 천을 짜고, 미싱으로 박음질을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예를 놓거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곳곳에 가방, 인형, 배지 등 이미 만들어놓은 공예품이 전시돼있었고, 재료도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야말로 작은 수공업 공장이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  416 공방 곳곳에는 엄마들이 만든 공예품들이 전시돼있다. 공예 작업할 때 쓰이는 도구와 재료들도 한 쪽에 수북이 쌓여있다.              ⓒ 곽영신


공방은 세월호 엄마들의 일터이자 쉼터다. 매일 30~60명의 엄마들이 이곳을 찾는다. 공방 단체 카톡방에는 120여 명의 엄마들이 가입돼있다. 단원고 희생자(246명) 유가족의 약 절반에 달하는 수다. 반별로 섞어 7명씩 당번 조를 짜서 매일 아침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며 공방을 쓸고 닦기도 한다. 보통 정성이 아니다. 


"여기서 스스로 힐링하고 활력 얻어"


공방이 처음 생긴 건 지난 2014년 겨울이다. 솜씨 좋은 몇몇 엄마들이 '엄마들의 이야기 공방'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소소하게 공예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4~5개월이 지나 운영진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 모임을 되살린 건 416가족협의회 추모분과에서 일하던 고 박성빈양 엄마 김미현씨다.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끝에 '엄마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 '416 공방' 문을 열었다. 지난해 5월의 일이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공방팀장까지 맡고 있는 성빈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을 시작하면 크게 벌이는 스타일"이라며 웃음 지었다.  

"우리 유가족을 대상으로 상담과 치료를 제공해주는 여러 기관이 있어요. 하지만 가족들 중 3분의 2 정도는 그 기관을 잘 찾지 않아요. 그런 분들이 전혀 부담 없이 찾아와 스스로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장기적으로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는 동안 활력을 얻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어와서 섞일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요."  

창조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엄마들의 의지에 여러 곳에서 도움이 잇따랐다. 안산온마음센터, 안산복지관네트워크 '우리함께' 그밖에 많은 개인 후원자들이 공예 제작 프로그램과 강사, 재료를 지원해 주었다. 이때부터 엄마들은 노란 리본을 비롯해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물품을 아이 영정 앞에 놓아두거나 분향소에 전시했다. 엄마들에게 '공예가'라는 새 직업이 생긴 것이다.


▲  엄마들어 정성껏 만들어 소지하고 다니는 공예품들. 모두 아이 이름표 또는 얼굴이 담긴 배지 등이 달려있다.


세월호 엄마들에게 작은 공예품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이걸 만드는 동안은 잠깐이라도 슬픔을 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아이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여기서 엄마들과 일하며 얘기를 나누면 답답한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 듭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저 역시 세월호 참사로 알게 된 부조리에 저항하고 싶지만, 밖에 나가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는 성향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서 공예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그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엄마들에게 공예 활동은 곧 위로이자 연대, 그리고 저항과 참여가 되는 셈이다.


'엄마랑 함께하장',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도약

공방은 지난해 10월 31일~11월 1일 안산화랑유원지에서 '엄마랑 함께하장' 프리마켓을 성황리에 개최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 행사는 세월호 유가족과 지역주민이 어떤 거리낌도 없이 이웃 대 이웃으로 만난 최초의 기회나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프리마켓을 준비하기 위해 엄마들은 3개월 전부터 잠을 줄여가며 분주히 뛰어다녔다. 평소보다 공예품의 생산량을 대폭 늘려 트럭 2개 분량을 만들어냈다. 양말목공예, 원예품, 캘리그래피, 천연화장품, 액세서리, 목공예 등 물품도 다양하게 마련했다. 공예 프로그램을 지원하던 안산온마음센터를 비롯해 아름다운가게, 방물단, 비밀기지 등 여러 단체와 지역 예술가, 자원봉사자들의 돕는 손길도 더해졌다.  


▲  416 공방은 안산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엄마랑 함께하장' 프리마켓을 열었다. 공예품 종류별로 6개 부스를 운영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 안산온마음센터


행사가 열린 이틀 동안 시민 2700명이 엄마들을 찾았다. 대성공이었다. 양말목으로 만든 지갑 100개를 준비했는데 첫날 모두 동이 나서 밤새 급히 50개를 더 만들었다. 부스를 지키는 엄마들이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찾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평소 왠지 유가족들을 대하기 어려워했던 시민들이 이 날만큼은 스스럼없이 엄마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나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기억하도록 만들고 싶었는데 100% 성공했어요. 주민들이 '여기 볼 게 많고 먹을 것도 많다'며 주변 사람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하거나, '물건이 싸고 좋다'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정말 기분 좋았지요. 자식 잃고 힘든 엄마들이 지역사회 공동체 회복을 위해 이렇게 나섰다는 것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았어요. 어떤 편견이나 오해 없이 같은 엄마 아빠로서 시민들을 만난 것 같아요." 

공방팀장 성빈이 엄마의 회상이다. 이날 행사 수익금과 물품들은 지역아동센터 겨울 난방비와 독거노인, 지역교회 등에 각각 전해졌다. 


"우리뿐 아니라 모두가 힘든 사회, 다 같이 살아내야" 
 

프리마켓 이후 공방 엄마들에겐 더 자신감이 붙었다. 무언가에 몰두해 성취를 이뤄내는 기쁨을 맛보았고,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보람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올 5월 두 번째 프리마켓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공예품 종류도 늘리고 부스도 더 추가할 계획이다. 최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과 청문회 등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짬짬이 공방을 찾아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엄마들의 의지가 크다.

이런 엄마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지원하는 사람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안산온마음센터 신정식 가족심리지원팀장은 "유가족들이 그동안 뭐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는데 공방에서 소중한 성공의 경험을 했다"며 "이제까지 유가족과 시민들은 대부분 이슈 투쟁을 통해 만남을 가졌지만 공방 같은 자리를 통해 서로 더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지기 바란다"고 전했다.


▲  416 공방을 되살리고 이끌어 온 성빈이 엄마 김미현씨. 공방을 통해 새로운 소통과 연대, 그리고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 곽영신


성빈 엄마의 마지막 말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자식이 죽었으니까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오늘날 자살률 1위인 우리 사회를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살기 힘든 세상이라 그래요. 헬조선이라 하잖아요. 우리도 아프지만, 우리 말고도 이 땅엔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이럴 때 우리 다 같이 잘 살아내야 해요. 세월호를 기억하며 우리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야 돼요. 저는 공방에서 리본을 만들며 그 일에 참여하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마음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성빈 엄마에게 공예작품은 곧 세상을 향해 외치는 '스피커'다.
  
일반 시민들이 바라보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은 늘 울부짖고 한숨짓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뿐이다. 카메라는 이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할 때만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습이 이들의 전부는 아니다. 416 공방의 엄마들은 그 누구보다 단단하게 일상을 이어가며 차근차근 소통과 성취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면서, 그 일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이웃'이란 두 글자로 부른다. 416 공방에는 우리들의 이웃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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