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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샐리 Jun 27. 2022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요가 이야기

   2019 여름 어느 뮤지컬 공연장, 폐막이 열흘 정도 남았다. 컴퍼니매니저라는 직책을 맡은 나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   명이었다. 관계자 출입구에 출입증을 대고 백스테이지로 들어가서 주연배우들의 대기실을 지나 제작팀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한산한 시간이었다.  그렇듯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후에  일을 파악했다. 정리해야  영수증이 산더미였지만 어차피 밀린 일이니 조금  미루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우들과 다른 스탭들이 출근하는 시간까지 여유를 조금 부려도   같아 극장 건물에 있는 서점으로 갔다. 평일 오후의 장점은 공연장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서점 한편에 넓게 자리 잡은 카페 테라스로 오후의 햇빛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마음은 고민 한가지로 어수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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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과 전혀 관련 없이 뮤지컬 보는 게 좋았던 나는 대학 생활 내내 학점은 제쳐두고 뮤지컬만 보러 다녔다. 티켓꽂이가 100칸 정도 있는 티켓북이 2권을 가득 채웠다. 졸업과 취직이라는 과제만 남았을 때 런던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뮤지컬 극장에서 일하며 지냈고, 돌아온 후부터 뮤지컬 제작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객석에서 보던 화려함을 무대 뒤에서는 볼 수 없었다. 처음 겪는 일 투성이였고, 한없이 서툴렀기 때문에 힘든 게 당연했다.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이 일이 아니면 해보지 못했을 경험도 많이 해보고,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일하는 시간도 많았다. 공연에 대한 내 열정과 호기심을 연료로 나 자신을 활활 태우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료가 동나고 있다는  느꼈다. 웃는 시간이 적어졌고, 즐겁다고 느끼는 순간을 찾기 어려워졌다. 쉬는 날이 별로 없어서 체력은 떨어져 가고, 어쩌다 생기는 휴가 중에도 업무 연락이 종종 오곤  마음 편히  수가 없었다. 업무 관련 연락을 놓치면  된다는 강박이 생겨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관도 자주 가지 못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리면 무슨 연락인지  확인해야 하니 집중을   없었기 때문이다. 경력은 3 , 나이는  서른인데  일을 하면 할수록  길이 아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같은 직무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보면 나만큼 스트레스받지 않는  같아 보였다.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모두 다를  있다는  이때부터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다른 일도 뚜렷하게 없어 막막했다. 직업으로 삼을 만큼 무언갈 좋아해  적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그만큼 좋아했던 일이었는데, 이게 싫으면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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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 여유가 생겨도 그 여유를 온전히 갖지 못했다. 서점에서도 책 한 권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며 표지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독립서점에서 본 적 있는 <아무튼, ㅇㅇ>이라는 도서 시리즈였는데 이 책은 요가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아무튼, 요가>. 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시리즈 도서를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사실 복잡한 생각에서 잠시라도 도망치게 해줄 그 어떤 책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집어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아무튼, 요가>의 저자 박상아 선생님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요가 지도를 하는 분인데, 처음 미국에 건너갔을 때는 요가 선생님이 될 계획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패션업에 종사하던 선생님은 뉴욕 패션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가 취업 준비를 하던 도중 우연한 계기로 요가에 매료되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친구를 따라 동네 요가원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요가 이야기가 아주 새롭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비크람 요가, 빈야사 요가 등등 알 수 없는 이름의 요가 종류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요가 동작이 실제로 몸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요가를 하게 된 후 신체적 변화와 채식을 시작하며 느낀 변화를 아주 자세히 얘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체적인 운동을 넘어서는 정신적 태도가 흥미로웠는데, 깊은 명상 수련 이후 삶이 크게 바뀌었다는 부분을 읽으며 굉장한 호기심을 느꼈다. ‘흐름에 몸을 맡기며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책의 부제목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글로는 읽었지만,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저자는 요가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 요가가 처음으로 매력적이라고 느꼈을 때의 감정, 그리고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속상했을 때의 감정과 그걸 극복해 내는 과정을 꾸밈없이 풀어냈다. 책에서 저자는 요가 동작의 이름이나 요가와 관련된 다소 낯선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몰입했다.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끝까지 읽은 후에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이 꿀렁거리는 흔들림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감동, 즐거움, 호기심, 선망, 질투. 이 모든 감정이 조금씩 모여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나를 행동하게 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결심했다. ‘요가를 해봐야겠다!’


   그 흔들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원인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때 난 저자의 이야기에서 내가 좋아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봤던 것이다. 공연의 매력에 빠져 어쩔 줄 모르고 무작정 달려들던 나. 모두가 직업의 미래, 비전, 커리어, 연봉, 이런 것들을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안의 열정만을 따랐다. 가던 길과 너무 다름에도, 그 길을 걸으면서 너는 이 길에 왜 들어왔냐는 핀잔을 들어도 나는 꿋꿋하게 걸었다. 그러다가 현실적인 과정을 통해 열정은 사라지고 걷던 길을 잃었던 것 아닐까. 그때 이 책을 만난 것이다. 나는 내 열정을 통해 어떤 곳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여기 책 속에는 그렇게 달려든 결과 멋진 장소에 도착한 저자가 있었다. 요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조건 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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