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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Mar 09. 2024

나랑 사는 게 다 좋으면 좋겠다

남편의 생일




- 생일인데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 너랑 결혼하고 매일매일이 생일이야. 거짓말이 아니라 그래서 생일 선물이 진짜 필요 없어. 결혼 전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성경에 이런 말 있지 않나? '주의 성전에서 보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습니다.'  결혼 전의 천 날보다 너랑 사는 하루가 나는 더 좋다. 

- ........


 노란 조명에 촛불을 켜고 작정하고 날리는 멘트가 아니다. 저녁 드라이브를 하면서 남편에게 내가 물었고 운전하면서 남편이 평범하게 말하며 건네는 진심이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이고 연애 11년, 결혼 6년 차인데 아직도 남편이 새롭고, 가끔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남편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운전하는 남편 옆모습만 바라보았다. 남편은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며 나 대신 말을 이었다. 

-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나랑 사는 거 어때? 다 좋지?

 즐거운 생일을 보내고 남편은 한껏 기분이 좋아서 당연히 다 좋을 거란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왔다. 남편 생일에 맞물려 시댁가족과 친정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별거 아닌 일에 예민해져서 조금 다투기도 했다. 그 잠깐의 고비들이 나도 모르게 깊이 박혀서 힘들었나 보다. 

-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지.

- .......


 다 좋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고 말하니 남편도 잠깐 기분이 가라앉은 듯 보였다. 당시는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아서 별 생각이 없었다가  저녁을 먹고 조용한 시간에 남편이 왜 아무 말이 없었을까 생각이 들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 아까 내가 너랑 살아서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고 말했을 때 기분이 좀 안 좋았어? 

- 아니, 그냥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 

  나는 너랑 사는 게 다 좋은데 너도 나랑 사는 게 다 좋으면 좋겠다. 

  앞으로 다 좋을 수 있게 해야지, 생각했어.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남편의 진심에 왈칵 눈물이 났다. 어느 부분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 세 문장이 감동이었고 미안했고 고마웠다.  눈물은 났지만 '나도 너랑 살아서 다 좋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로 꺼내놓은 마음은 잘 전달되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가벼워지기도 한다.  다 말하지 않는다. 그냥 웃거나 울거나 서로 바라보거나 꼭 안는다. 

 선물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마음을 나누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낸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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