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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Jul 24. 2023

고작 그거 하나 말해주려고

  까만 한복을 입고 꾸벅, 인사를 했어 친구가 내 손을 잡고 우는데, 모든 게 꿈인 것만 같더라

     

  못된 할미가 상을 뒤엎고 울 엄마 영정 사진에다 욕을 퍼부었어 자기 집 귀한 아들 홀아비 만들었다나, 마누라 멱살이나 잡던 애비 새끼도 할미한텐 귀한 자식이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어 욕이나 실컷 퍼부어 줬어야 하는 건데

      

  안타깝게도, 스무 살 애송이는 한 마디도 못했어 목구멍에다 돌을 쑤셔 놨는지 목소리도 안 나오고 기가 막혀서 눈물도 한 방울 안 나오더라 울지 못하는 병에 걸렸었나 봐      


  한바탕 지랄이 풍년이었고, 난 한없이 구겨져 있던 밤이었어 볼 꼴 못 볼꼴 다 본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난 허기도 잊은 채, 구석방에서 깜빡 잠이 들었지     


  평생 잊지 못할 짧은 꿈을 꿨어 탁, 탁, 탁, 탁,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오더라 끼익, 탁, 하고 방문이 벌컥 열리는 거야 헉, 헉, 하면서 숨을 몰아쉬는데, 우리 엄마인 거야 참 야속했어 벌떡 일어나 안기지도 못하고 꿈에서 깨버렸거든 겨우 한 마디만 들려주고 가버릴 줄이야         


- 밥은 챙겨 먹어야지     


  눈물 같은 게, 그제야 터지더라 엉엉 울고 난 다음에 밥 한 공기 싹싹 비웠지 아무리 슬퍼도 배는 고픈 거더라고     

 

  딸내미 둘 낳고 보니 헤아려지더라 고작 그거 하나 말해주려고 먼 길 가다 돌아온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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