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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씨앗이 잠자코 흙 속에 있었을 때부터

싹을 틔우고 키가 자라고

겨우, 여린 가지 하나 뻗어내

가지 끝에서 꽃망울 터뜨리고

하루 또 하루 영글어 가는 동안

나무의 뿌리는 땅을 가로질러

온몸으로 나무를 떠받쳤고

땅 깊은 곳까지 나아가 진액을 뽑아 올렸다

나무의 영은 곧 뿌리의 혼

뿌리의 혼은 곧 처음의 씨앗

햇살과 바람과 비, 흙과 곤충들이 도와

더없이 씨앗다운 열매가 맺힌다

열매 속에 나무의 영이 차오르고

뿌리를 닮은 빛깔도 서서히 스며든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것도

나의 영혼 한 조각 떼어, 씨앗을 심는 일

나와 꼭 닮은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그 누구도 훔쳐가지 못하게

열매 속에는 주인의 영혼만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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