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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우린 모두 지구 안에 있어

6월의 시요일

by 양윤미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세상 만사 내 마음대로 내 원대로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노여워진다. 삶이 가진 속성이 애당초 그러한 것임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삶은 더 느긋하고 편안해진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간 것 그리움이 되리라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삶을 바라보는 초연한 어조 때문일 것이다. 삶을 괴롭게하고, 시야를 좁히는 어떠한 문제로부터 한 발짝 떨어질 때 비로소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낀다. 살아가다보면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노여울 일도 있고 분한 일도 있지만, 다 지나갈 것이며 언젠가는 그리운 순간이 될 것이라 노래하는 이 시에서 독자들은 지금 이순간을 넉넉히 견딜 힘을 얻는다.


전교 등수가 내 삶의 전부였던 십대와, 대학 간판으로 인생이 결정될 줄 알았던 이십대 초반, 어떤 직장을 선택하느냐로 나의 등급이 판정난다고 생각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아본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재능이고 좋은 학벌, 멋진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나 역시 나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한들, 인생이 망하는 것도,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서툴더라도 괜찮아, 나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해. 가끔 이해안 되는 너도 사랑해, 우린 충분히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절대로 망할 일이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지고 있는 카드가 많으면 많을 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보다 더 우위에서, 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내가 가진 카드가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먼저 좋은 것들을 골라 가버렸다 해도 "그래서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할 수 있는 내공을 가졌다면, 우리의 삶은 절대로 망할 일이 없다.


달팽이의 생각

ㅡ김원각


다 같이 출발했는데

우리 둘 밖에 안 보여

뒤에 가던 달팽이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걱정 마 그것들 모두 지구 안에 있을 거야



6월의 시요일 첫 번째 시로 김원각 시인의 "달팽이의 생각"을 읽었다. 태평스러운 달팽이의 말이 나에게 자유를 준다, 해방감을 준다, 심지어 앞서 가던 달팽이도 아니고 뒤에서 따라오던 달팽이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다 등의 소감을 나눴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우린 모두 지구 안에 있다는 말에서 재미와 감동과 위로를 동시에 느꼈다.


신나게 출발을 했는데 발목을 접지른 달팽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 달팽이가 나일 수도 있다. 한참을 쉬어가야 할 수도 있다. 같이 접질러서 요양하던 옆 자리 달팽이가 나보다 빨리 나아서 퇴원해버릴 수도 있다. 나도 무사히 퇴원했지만 예전같이 속도가 안 나서 서러울 수도 있다. 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천히 천천히 기어서 달팽이의 여정을 가야 하는 이 시 속의 달팽이처럼, 우리도 우리 삶의 여정을 살아가야 한다. 이왕 걸어가야 하는 거, 이왕 살아가야 하는 거,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순간 순간을 맞이해 보자고 말했다.


"걱정 마, 우린 모두 지구 안에 있어."


두 번째 시로 전윤호 시인의 "사랑의 환율"을 읽었는데, 다 내맘같지 않았던 모든 일들에 대해 서로 서로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어떤 회원분이 전윤호 시인님은 T일 거라고 했을 때, 모두 배꼽 빠져라 웃었다. 나 역시 조심스레, 블랙홀이란 시어는 좀 너무하지 않았나 한다며 농담을 보태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구 안에서 함께 공존하며, 공명하며, 이번에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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