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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May 08. 2023

[설레는 시 필사] 24. 국경의 밤, 유진목

국경의 밤


오랫동안 달리고 있었어

능선부터 밝아 오는 가느다란 길을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곧고 구부러진 길을


멀리서 다가오는 두 개의 헤드라이트

저 멀리 점멸하는 붉은 후미등 


내가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너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산을 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눈발과

잠깐씩 드러나는 길


너를 떠나기로 해서 미안해


후회하지 않은 적은 한순간도 없었어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가야 한다고


몇 날 며칠을 달리는 동안에

아름다운 광경을 봤어


너에게 모두 말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까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알고 싶었어


내가 국경을 넘었을 때


휴게소에 잠시 멈췄을 때


이른 아침 처음 내린 커피를 마셨을 때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를 찾을 때


지도를 펼치고 내가 있는 곳을 찾을 때


밤새 달려도 불 꺼진 모텔 간판만 나타날 때


주차장에서 웅크리고 잠들었을 때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깨어났을 때


그게 너였으면 하고 바랐을 때





* 사랑은 마치 언어가 서로 다른 외국인 두 명이 만나는 것 같다. 헤어짐은 마치 국경을 넘는 것과 같다. 그 국경을 언제 넘어서서 사랑이 시작되고 언제 넘어가서 멀어지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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