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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Jul 30. 2020

Dreamer


그 영화를 처음 본 건

홍대 앞에 있던 U의 집이었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있던 나는  혼자 사는 U의 집에 자주 가서 머물렀다. 그때 U는 영화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하고 있었고, 그래서 U의 집에는 프로그램의 자료화면용이었던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많았다. 잠 못 자고 뒤척이는 나에게 U는 그 영화를 보라고 비디오 테크에 꽂아주었다.


U가 말했다. “네가 좋아할 만한 영화야.”


그렇게 나는 왕가위를 만났다. 지금껏 내 인생을 위로해준 작가는 여러 명 있었지만 내 삶을 위로해준 영화감독은 왕가위뿐이었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백수가 되었을 때 U는 방송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U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걱정하지 않았다. 재능이 넘치는 U가 무엇을 하든 중간은 하리라고 믿었고, 가능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싶었고, 아무 일 하지 않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젊었고 언젠가는 무엇이든 되어있지 않겠는가.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뿐이었다. 그래서 불안했지만 그 불안에는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그 무엇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엇이든 꿈을 꾸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그 시절 U는 영화를 권하듯 나에게 많은 일을 권했다. U가 나에게 권했던 수많은 일들은 대부분 내 전공과도 무관했고 내 재능이나 능력과도 관계없었다. 그리고 내가 U를 향해 꿈꾸었던 것들도 U에게는 비슷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호나 취향만 선명했지 세상사에 관한 건 모든 게 불분명한 몽상가들이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던 그 시절, 무엇이 될지 몰랐던 그 시절, 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행복했다.


그 시절 U가 나에게 권했던 일 중에 하나로 나는 지금 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나는 생각한다. 그때 U가 권했던 그 일 가운데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세상은 변했고 나도 달라졌다. 왕가위가 그때만큼 나를 위로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지만 그때의 상상과 그 추억은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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