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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Jun 08. 2020

(8) 호주 여행부터 다녀올까?



[일단 맛보기로 여행 먼저 다녀올게요]


벌써 10월이 왔다. 여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 집이 답답하고 괜스레 나가고 싶단 생각에 혼자 국내 여행도 다녀왔다. 난 내가 되게 나약한 줄 알았는데 혼자서 여행도 다니다니. 대견했다. 대신, 철은 들지 않았다.


준비 기간이 길어져서 그런가 호주로 떠나고자 하는 마음들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그 목표들이 점점 희미해져서 내가 비자를 받아놓은 상태인지도 가물가물해졌다. 호주 가서 잘 지낼 수 있는지 기대보단 겁이 더 많이 생겼고, 호주로 가기로 본격적으로 다짐한 게 올 초인데 준비 기간이 길어지니 점점 내가 정말 가기는 할까? 의문이 들었다. 나에겐 확신이 필요했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하다 정말 단순 무식하게 결정했다.


10월 21일 시드니 '여행'가기로 결심했다. 


미쳤나 보다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1월에 호주 간다며!! 왜 그랬어!! 하면서 과거의 나를 혼내고 있다. 아이고 비자 아까워라.)


그래서 부모님껜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여행 다녀오고 나서 그때 그 기분이 계속 생각나면 다시 떠나는 거고, 생각도 안 나고 그냥 그저 그러면 한국에서 일하고 살려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3주 뒤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여행사에 예매를 하고 바로 출발 준비를 했다. 

호주 여행 준비는 정말 순식간에 진행됐다. 그 어떤 고민도 안 했다. 원하는 호텔에 예약을 하고, 현지 여행사에 연락해서 패키지 예약도 했다. 짐도 그렇게 많이 안 챙겼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손해보지 않기 위해 고민을 하고 또 고민을 하던 나였는데 이번엔 정말 시원시원하게 불도저처럼 모든 걸 밀어붙여서 진행했다. 그냥 나를 믿기로 했다. 여기서 손해를 보면 나중에 다시 같은 실수 안 하면 되는 거고, 여기서 이득을 보면 좋은 추억 가지고 살게 되는 거니까.


나의 준비 과정을 본 지인 중 하나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게 맞는 거야."라고 말했다. 


진짜. 그게 맞는 것 같다. 괜히 질질 끌어봤자 득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비행기 타러 가기 하루 전 날]


여행 가기 하루 전 날,

 지방에 사는 나는 인천까지 가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시간을 어떻게 계산해야지 여유롭게 오는지 생각이 안 났다. 오전 비행기를 통해 인천으로 가기엔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왜 인천까지 바로 가주는 비행기는 없는 것일까! 아마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었을까?(확인해보니 부산-인천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편은 있다고 한다. 국제선 결제한 사람에 해당) 해외여행 경험이 너무 없어서 내가 나만의 노하우를 가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되니 불안한 마음에 광명역에서 내려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새벽 KTX를 타야지 광명역에 여유롭게 도착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운 나는, 전날 KTX근처에서 모텔을 잡아 잠을 잤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 또 감정이 요동쳤다. 사실 잠도 자 못 자겠더라. 이불을 덮고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를 보고 있던 찰나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지금 있는 모텔 밑에 예비 형부랑 같이 왔다는 것이다.


사실 그날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왔다. 뭐 여행이니 그렇게 오버하면서 마중 나와주는 건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해외여행 가는 건데 가족 배웅까지 필요할까? 난 어른이라서 그런 거에 별 감흥 없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언니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터져서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제발 그만 좀 울어라며 잘 다녀와라고 언니한테 용돈도 받았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광명역으로 가기 위해 모텔을 나왔다. 모텔을 나오는데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도로가 조용했다. 덜컹거리는 캐리어 굴러가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졌고, 입에선 입김이 작게 나왔다. 

동트기 전, 낯선 곳에서 걷는 건 너무 무서웠다. 혹시나 나쁜 일들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작은 소리에도 지레 겁을 먹으며 최대한 빨은 걸음으로 걸었다.

3분 정도 열심히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가니 KTX 역이 나왔다. KTX 역을 보니 '와.. 나 그래도 잘 도착했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겁을 너무 먹고 있었다. 


목이 말라 자판기에 가서 음료수를 뽑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하늘 보리' 였는데, 자판기가 뭐가 고장 났는지 다른 음료수들도 왕창 떨어져 '하늘 보리', '미에로 파이버', '게토레이' 도 함께 먹게 되었다. 


잠이 덜 깬 나는 생각했다


와우! 나 호주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 안]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는 장거리 비행. 태국에 1번 경유하고 나서 호주에 도착했다. 

태국에서 경유하고 난 뒤 트랜스퍼한 비행기 좌석엔, 내 옆에 남자가 앉았었는데 어찌나 예민한지, 내 앞에 인도 사람이 의자를 뒤로 지나치게 젖혔다며 화를 냈다.

그리곤 좌석 뒤에 붙어있는 스크린 터치를 뒷좌석에 앉은 백인 할머니가 터치를 너무 세게 한다며 컴플레인을 걸었다. 앉은 나는 너무너무 무서워서 혼자 죽은 듯이 있었다. 내 행동이 거슬린다며 나에게 불똥을 튈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화를 내진 않았다. 다만 내가 컵홀더를 제대로 열지 못하자 옆에서 큰 한숨을 쉬며 열어주는 선행(?)을 보여주었다. 차라리 못 본 척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내 행동이 그 사람의 시선 반경이 들어가 있다는 것 또한 눈치가 보였다. 그 백인은 잠도 자지 않고, 밤 새 알 수 없는 게임을 열심히 했다. 아무튼, 그렇게 초 긴장상태의 비행을 마치고 호주에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 흘러보니 나름 이것 또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된 것 같다. 나도 내가 예민하다 생각했는데, 그 사람에 비하면 나는 뭐 애기 예민러 수준이었으니까.


살짝 덜컹거리긴 해도 모두가 친절하고 밥도 맛있었던 타이항공!



[우여곡절 국제공항에서 나오기]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들떠서 받은 티켓 2장 중 하나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사실 안전 요원이 뭐라 했는데 "아~ 오케이!"를 외치며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다. 왜 그랬지? 아직도 의문이다.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그 덕분에 입국심사대에서 나 혼자서 다른 곳에 끌려가(?) 짐 검사를 한번 더 했다. 아직도 그 티켓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버린 걸까? 


10월의 선선한 날씨의 호주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 앞에서 긴장하는 바람에 땀이 폭발해버렸다.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어보는 공항 직원의 말에 


"N.... o........... o..."울먹이며 말해버렸다. 


울기 직전이었던 나를 보던 직원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No worries!"라고 대답해주었다.

다행히도 큰 문제없이 잘 지나갔다. 배고플 때 먹으려고 한국에서 가져왔던 프로틴 바 몇 개는 압수당했다. 


블로그에 보니까 공항에 도착해서 지하로 가면 오팔 카드를 만들 수 있다고 들었다. 오팔 카드를 만들러 스테이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유튜브에 보니 스테이션 직원이 조금 까탈스러워 보였다. 또다시 걱정이 생겼다. 나한테 화내거나 짜증내면 어떡하지 나 진짜 상처 잘 받는데 무서워 흑흑 


내 앞에 사람이 오팔 카드 관련해서 질문이 많았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고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직원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저 짜증이 많은 직원 앞에서 카드를 사야 하는데, 나 동양이라고 차별하면 어떡하지? 무서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최대한 웃으며 "Good morning! I want to buy a OPAL card $40.(smile, smile, smile)" 얼마나 웃었는지 순간 광대가 아팠다. 내가 최근 들어서 이렇게 광대를 추켜올린 적이 있었던가. 


다행히 직원 또한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오팔 카드를 건네주었다. 내 머리 위엔 작게 글자가 떴다. 


'퀘스트 1. 오팔 카드 구입 완료'  


그다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인도 직원 덕분에 유심칩은 별 큰 탈없이 구입했다. 

나에게 계속 "어렵지 않아~, 어렵지 않아~" 라며 구매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오팔 카드와 유심칩을 해결했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기특해서 미칠 것 같았다.





[미리 예약해둔 스냅 촬영!]


그러고 나서 여행사에서 예약해준 픽업 차를 타고 호텔로 도착했다. 입맛이 없고, 장이 예민해 화장실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어 음식도 제대로 안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후 2시에 호주 여행 스냅 촬영을 예약해놓은 상태라 몸이 부어선 안됐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대충 풀고, 침대에서 한 시간 정도 쪽잠을 잤다. 다시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약속 장소로 갔다. 


스냅 촬영을 예약한 이유는 혼자 여행 간 것도 있고, 20대 행복한 내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이 호주 여행이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호주일 수도 있으니까. 


걸어서 30분 거리, 버스로는 10분 거리인 하이드 공원에서 사진작가님을 만나기로 했다. 


구글 맵에서 가는 법을 검색하고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정보를 입수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정말 다행이다. 핸드폰 하나로 검색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모든 정보들이 편리하게 업데이트되는 것도 너무 좋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려고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이리저리 몸을 기웃기웃거렸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버스 기사님한테 텔레파시를 보내면 버스가 멈추곤 했는데, 여기는 계속 쌩쌩 앞으로만 나아갈 뿐 나에게 버스를 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 이게 바로 듣기만 했던 호주 인종차별인가


호주 도착한 지 약 3시간 만에 상처 받았다 



[그럼 시드니네! 시드니로 오세요!]


와 정말 난 내가 그 흔한 버스를 제대로 탈 수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버스를 놓쳤다. 

주눅 들었고, 다시는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스냅 촬영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엄청 빠른 걸음으로 시드니 한복판을 걷기 시작했다. 


밝은 대낮이었는데, 사람들은 너무 많고 순간 무서웠다. 게다가 내 앞에 어떤 할아버지가 웃통을 다 벗고 신문지를 머리에 얹으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아직도 그 할아버지의 정체를 모르겠다. 그 뒤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너무 무서웠다. 앞에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뒤를 졸졸 따라갔다. 왠지 그 사람이랑 나랑 같은 곳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혼자서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를 따라가는 게 더 안심이 되었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불안증 진단을 받은 터라 그 불안함이 더욱더 커졌다. 제발 어디서 한국말이라도 들렸으면 했다.


필리핀에 있었던 것보다 시드니에 있는 게 왜 이렇게 더 겁이날까. 초 긴장상태로 횡당보도도 건너고, 보행자를 우선시해주는 차들의 양보를 받으며 겨우 겨우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보이는 광경은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앉아 구름을 구경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먹던 빵 조각을 비둘기에게 던져주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스냅 촬영 작가님과 약속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다.


드디어 아무 일도 없었지만 심리적으로 우여곡절 끝에 사진작가님을 만났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나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아저씨가! 저를! 인종차별! 해서! 안태워주더라고요?!! 저 그래서 삼십 분 거리 걸어왔어요!!" 라면서 

작가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직접 손을 흔들어야지 버스가 멈춘다고. 

인종차별은 당연히 아니었고,  한국사람들이 호주에 와서 제일 혼란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나처럼 버스를 타를 거라고 말해줬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사라졌다. 


작가님은 사진 촬영을 하기 전, 나에게 당부의 말씀을 해주셨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거북목 하지 말고 살짝 과할 정도로 고개를 내뺄 것. 여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와 한번 만나고 말 사이니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포즈를 취할 것!"


그리고 작가님과의 촬영은 시작되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어릴 적 하던 연예인 놀이를 하게 되었다. 사진 촬영이 어색하지 않게 작가님은 나에게 "아이 예쁘다!! 잘한다! 아이 예뻐라!!" 하며 무한대의 칭찬을 해주셨다. 살면서 약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예쁘다는 칭찬을 들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200퍼센트의 자존감들이 쑥쑥 자라나던 행복한 촬영이었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호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프리랜서들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에 대해서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작가님은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친한 언니처럼 잘 말해주었다.


촬영 장소를 이동하던 중, 나에게 작가님은 질문을 했다


"여행 갔다 오고 나서 호주 다시 오실 거예요?"

"네네! 아직 지역은 못 정했지만.."

"오 그렇구나 잘됐다! 자연 좋아해요?"

"네? 네네! 잔디? 이런 거 막 자연친화적인 거 되게 좋아해요!"

"그럼 시드니네! 시드니에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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