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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Dec 03. 2023

사람을 노동력으로 여기는 사회

아들이랑 읽고 싶어서 쓰는 한국사 (7) - 고조선 그 이후의 나라들 1

비록 고조선은 멸망했지만,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 건 아니었어. 대표적으로 지금의 만주 송화강 부근에 자리 잡은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기 이전에 이미 세워졌던, 유래가 무척 오래된 나라야. 나중에 건국되는 고구려와 백제도 부여의 후손임을 자처하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하도록 하자. 부여 외에도 고구려, 옥저, 동예, 그리고 마한, 진한, 변한으로 이루어진 삼한이 한반도와 만주에 걸쳐 건국된 나라들이야. 이 나라들은 고조선처럼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고 국가 형태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그럼 이들 나라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부여는 5개 부족의 연맹*으로 이루어진 연맹왕국이었어. 중앙을 왕이 다스리고,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 불리는 군장들이 사출도, 즉 동서남북의 4개 구역을 다스렸다고 해. 마가, 우가, 저가, 구가는 각각 말, 소, 돼지, 개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이라는데, 신분 높은 군장의 명칭에 가축 이름을 붙인 걸 보면 그 당시 부여는 목축업이 중요해서 그랬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부여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여서 왕국이라 불렸지만, 왕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나 봐. 왕은 군장들의 합의로 추대되었고, 흉년 같은 재해가 생기면 왕의 책임이라 해서 쫓아내기도 했대. 힘은 없는데 책임만 지는 왕이라니, 아빠는 하라고 해도 별로 하고 싶지가 않네. 


부여에는 좀 잔인한 풍습이 있었는데, 왕처럼 높은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을 함께 묻었다는 거야. 사후세계에서도 왕을 잘 모시라는 뜻일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을 함께 묻는다니. 이 잔인한 풍습은 간간이 이어지다가 훗날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금지하고, 마지막까지 순장 풍습을 유지하던 가야가 멸망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돼. 또 부여는 형벌이 매우 엄격했던 나라로 알려져 있어. 살인을 하면 사형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노비로 삼았다고 하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까지 벌주는 걸 연좌제라고 하는데, 무척 가혹한 법이지. 노비의 존재를 걸 보면 신분제도가 엄격했음도 알 수 있어. 그리고 도둑질을 하면 훔친 물건의 12배를 갚게 했다는데, 이걸 1책12법이라고 한단다. 도둑질을 엄격히 금지했다는 건 사유재산을 철저히 보호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렇게 엄금해야 할 만큼 도둑질이 많았다는 뜻 같기도 하구나. 도둑질이 많은 건 빈부격차가 심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될 테고. 또 부여에서는 남녀가 음탕한 짓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를 하면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다는데, 이렇게 강력한 법으로 통제하는 국가는 과연 살기 좋은 나라일까, 그렇지 않은 나라일까? 부여에는 또 형사취수제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형이 죽으면 동생이 그 형의 부인과 결혼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이 제도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선 가장이 죽더라도 남은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돕는 성격이 있을 것이고, 형이 남긴 재산과 가족이라는 이름의 '노동력'이 그 친족 안에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을 거야. 또 가장이 죽으면 그 가장의 역할을 동생이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만큼 가장의 역할이 막중한 가부장제*였다는 점도 알 수 있지.


부여는 드넓은 만주벌판 평야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농경과 목축업이 함께 발달했고, 말과 모피를 중국에 수출하기도 했대. 어쨌든 부여는 고조선 이후 한민족이 세운 최강의 나라였고, 나중에 삼국시대 주역이 되는 고구려와 백제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어.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여출신이고, 백제는 부여 후손임을 자처해서 왕족의 성도 '부여씨'였단다. 백제는 한때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칭한 적도 있었고 말야. 비록 고구려나 백제만큼 유명하지 않고 여러모로 베일에 싸여 있는 나라지만 부여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정말 큰 의미가 있는 나라였다고 할 수 있지.


고구려는 부여 출신 주몽이 압록강 중류 지역인 졸본을 근거지로 토착민과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어. 졸본 지역은 수비하기에는 좋지만 좁은 데다 산악지대여서 농경과 목축업 같은 생산 활동에는 좀 부적합했던 곳이야. 그러다 보니 고구려는 좀 특이하게 약탈경제가 발전하는데, 쉽게 말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식량을 삥 뜯는 거야. 자랑스러운 고구려가 한때 일진 같은 행동이나 하는 나라였다니! 그래도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만큼 척박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옆나라를 괴롭히는 행동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고구려에는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를 지어서 그렇게 빼앗아온 식량을 저장했다고 하는구나.


 고구려는 여러모로 부여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였어. 부여가 5부족 연맹왕국이었던 것처럼, 고구려도 5개 부족이 연합한 연맹왕국이었지.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이 5부족의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이걸 제가회의라고 해. 왕 아래에는 상가, 고추가, 상가, 패자 등의 칭호로 불린 대가들이 있었고, 대가들은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들을 거느렸대. '왕-왕족/귀족-관료'로 이어지는 통치구조로 보면 될 것 같아. 고구려는 활발한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점차 왕권이 강력한 국가로 차츰 성장하지만, 초기의 고구려는 상대적으로 왕권이 했단다. 물론 부여처럼 왕이 잘못했다고 막 쫓아내고 그런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말야.


고구려가 부여와 비슷한 점이 또 있는데, 고구려도 부여처럼 1책12법과 형사취수제를 시행하는 나라였어. 또 고구려에는 서옥제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을 하면 신부집 뒤에 '서옥', 즉 사위집이라는 작은 집을 지었대. 신랑은 이 집에 머물면서 일정기간 신부집을 위해 일을 해주고 자식이 자라면 부인과 함께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였다고 하는구나. 신랑이 신부와 결혼하기 위해 신부집에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노동력'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워. 오늘날에도 결혼할 때 혼수나 지참금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고구려 서옥제는 신랑이 혼수를 '몸빵'으로 때운 거라 할 수 있지. 왜 그랬을까? 지금이야 뭐든 필요하면 돈으로 때우려는 풍조가 있지만, 아직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가장 중요한 건 노동력 그 자체였을 거야. 농사든 가내수공업이든 생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노동력이 곧 재산으로 여겨진 거지. 딸이 결혼을 하면서 사위 집으로 가게 되어 그만큼 노동력을 잃게 되는 만큼, 사위가 그것을 일정기간 노동력으로 보전해 주는 제도였다고 보면 될 것 같아. 이걸 보면 사람이 곧 노동력이고, 생산력이고, 경제력이었음을 알 수 있지.


서옥제와 비슷한 제도인 옥저의 민며느리제에 대해서도 다음 편에서 얘기할 텐데, 이처럼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는 시각은 고대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고 지금도 이 관점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요즘 우리나라는 출산을 꺼리는 풍조로 출산율이 크게 줄어들었대. 2022년 기준으로 출산율이 0.78까지 감소했다고 하니, 결혼을 해도 네 가정 중에 세 가정이 아이를 딱 1명만 낳고 있는 셈인 거야. 그래서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 이런 초저출생 기조는 이미 200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래서 2005년 10월에 있었던 한 여성단체 대회에서 이런 구호를 내걸었다는구나.


"인력이 국력이다. 출산이 애국이다."*


글쎄, 이것도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출산이 애국이라는 인식은 우리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는 것 같아. 사실 누군가 아이를 셋 이상 낳았다는 말을 들으면 아빠도, "와, 그분은 나라에서 훈장을 줘야겠어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곤 했거든. 그런데 왜 출산이 애국이고, 인력이 국력이라는 걸까? 물론 많은 인구 자체가 국가 경제력의 중요한 축인 건 사실이야. 10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를 가진 중국이 초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처럼 말야. 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이렇게 국가경쟁력의 일부로만 취급하는 관점은 과연 옳은 것일까? 어쩌면 사람을 노동력, 생산력, 경제력으로 취급하던 2000년 전 고구려 시절에 비해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은 아닐까? 


인구 감소는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은 대책대로 세워야겠지만, 지금의 출산율 저하 현상은 여전히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한 원인은 아닐지 제대로 된 반성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인력이 국력이고, 출산이 애국이라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 사회가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맞는지 말야. 한국은행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출산율 저하의 주요 원인은 높은 경쟁압력과 불안감으로 나타났다고 해.*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고, 경쟁에 대한 압력과 불안감에서 해방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거라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된다면 출산율도 자연스럽게 다시 증가하지 않을까? 너희들에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줘야 할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고 아빠는 생각해. 




* 연맹(聯盟) : 공동의 목적을 가진 단체나 국가가 서로 돕고 행동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함. 또는 그런 조직체.

* 약탈(掠奪) :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음.

* 출처 :『“출산이 애국” 여협의 본말전도』, 한겨레신문, 2005년 10월 27일자

* 출처 :『경쟁과 불안이 낮추는 출산율, 해법은?』, KBS뉴스, 2023년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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