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랑 읽고 싶어서 쓰는 한국사 (8) - 고조선 그 이후의 나라들 2
고조선 이후에 등장한 또 다른 나라들이 또 있어. 옥저는 지금의 함경도 동해안에 있던 나라인데, 왕은 없고 삼로, 읍군이라 불리던 군장이 통치했지. 옥저는 토지가 비옥해서 농사가 발달했고, 해안가에 위치해서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했대. 척박한 산악지대에 위치했던 고구려에 비하면 정말 좋은 환경에 있던 나라였지. 옥저는 민며느리제와 골장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어. 민며느리제는 여자의 나이가 10살이 되기 전에 남자와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신랑집에 들어가 살았던 제도야.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와 키운 뒤 며느리로 삼았던 거지. 그리고 여자아이를 신부집에서 데려올 때 돈을 지불했다는구나. 돈을 주고받으며 결혼하는 걸 매매혼이라고 하는데, 이 민며느리제에도 그 매매혼의 흔적이 보여. 또 골장제는 가족이 죽으면 가매장*했다가 살이 썩으면 유골, 즉 그 남은 뼈만 커다란 목곽에 함께 넣어 묻는 풍습이었어. 가족공동무덤이라 할 수 있는 거지. 이걸 보면 옥저가 가족중심의 공동체를 정말 중요시했다는 생각이 들어.
옥저와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의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는 동예라는 나라가 있었어. 동예도 옥저처럼 왕이 없었고 삼로, 읍군이라 불리던 군장이 통치했던 나라야. 동예에서는 좋은 특산물들이 많이 났는데, 반어피(바다표범 가죽), 과하마(키가 작은 조랑말), 단궁(박달나무로 만든 활)이 유명했다고 해. 특히 단궁은 멀리 중국에까지 입소문이 날만큼 명성이 있었다는구나. 동예에는 책화와 족외혼이라는 풍습이 있었어. 책화는 부족 간의 경계선을 서로 넘지 않도록 약속하고,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 소, 말 따위로 갚아야 했던 제도야. 또 족외혼은 같은 씨족끼리는 결혼하지 않는 건데, 가까운 친족끼리는 결혼하지 않는 오늘날 풍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자, 이제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가 보자. 여기에는 삼한이라 불리는 나라가 있었는데, 삼한은 3개의 한(韓), 즉 마한, 진한, 변한을 통틀어 일컫는단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위만에게 쫓겨났던 고조선의 준왕이 삼한으로 내려와서 왕이 되었다고 말도 있어. 이 삼한은 수많은 소국들의 연합체라고 볼 수 있는데 마한은 54개국,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해. 그 소국들 중에서도 가장 힘이 강했던 마한의 목지국 왕이 삼한 전체의 왕으로 군림했단다. 마한은 나중에 백제,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로 각각 통합되어 발전하면서 새로운 국가 체제를 이루게 되지. 예전에 아빠가 군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가진 지도자였다고 했던 말 기억하니? 이렇게 정치와 종교가 합해진 걸 제정일치라고 하는데, 삼한은 이와 달리 제정분리 사회였어. 즉 정치 영역은 군장이 맡았지만 종교적 권위는 또 다른 제사장이 가졌던 거지. 이 제사장을 천군이라 불렀는데, 그는 소도라는 신성지역에서 제사를 주관했단다. 소도에는 군장이 함부로 간섭할 수 없었고, 심지어 범죄자가 소도로 도망쳐도 마음대로 잡아갈 수 없었대. 유럽에 있는 이탈리아 영토 내에 바티칸시국이라는 가톨릭 교황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가 있는데,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 삼한은 땅이 기름져서 벼농사가 발달했고, 변한 지역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가까운 나라에 수출도 했다는구나.
부여부터 삼한에 이르기까지 고조선 이후의 나라들에 대해 쭉 알아봤는데, 대부분 나라들에는 공통적인 풍습이 있었어. 바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행사야. 이건 단순히 제사만 지내는 게 아니라, 전 백성들이 다 함께 놀고 마시며 감옥의 죄인을 풀어주기도 했던 전국가적인 축제였어. 농사나 사냥이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모든 백성들이 이 날만큼은 함께 즐기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는 뜻도 있었지.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국가적인 이벤트가 있으면 온 국민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 이 제천행사는 나라마다 행사의 시기나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어. 부여에서는 이 행사를 '영고'라고 불렀는데 12월에 열렸어. 보통 농사를 짓는 나라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행사를 갖는데, 사냥을 많이 했던 한겨울에 행사를 열었다는 건 부여가 수렵 사회의 전통을 가진 나라였음을 보여줘. 고구려는 10월에 국동대혈이라는 곳에 모여서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고, 동예도 역시 10월에 '무천'이라는 행사를 가졌지. 옥저는 제천행사에 대한 특별한 기록이 없고, 삼한은 씨 뿌리기를 마친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각각 축제를 가졌어. 두 번이나 행사를 한걸 보면 삼한에서는 농사가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는 것 같아. 우리 민족을 예로부터 음주가무, 그러니까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불렀는데, 부여부터 삼한에 이르기까지 전국가적인 제천행사를 지내면서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른 것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아. 요즘 우리나라 가수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외국인들이 K-POP을 즐기는 현상이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의 DNA가 확실히 각인되어 있나 보다는 생각도 드네.
제천행사가 열렸던 시기는 주로 농사짓는 기간이 끝난 무렵이었어. 비를 내려주고 좋은 날씨를 주어서 1년간 무사히 농사를 짓게 해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내년에도 농사를 잘 짓게 해 달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겠지.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참여해 함께 축제를 벌이면서, 그동안 농사짓느라 고생한 이들을 서로 격려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을 거야. 음주가무를 즐긴다는 의미는 1년 내내 놀고먹으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기만 했다는 뜻이 아니라,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나면 제대로 놀면서 쉴 줄 알았다는 뜻인 거지. 제천행사는 쉬지 않고 달려왔던 지난 1년을 마무리하고, 다시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커다란 쉼표(,)라고 할 수 있었어.
지환아, 아빠가 전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인생(人生)이란 뭔가 대단하고 심오한 것 같지만 사실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한자 그대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거든. 네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먹고... 그리고 언젠가 일을 해야 할 나이가 되면 열심히 일하고. 그 모든 과정이 너의 인생 그 자체란다. 그렇다면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열심히 일해야 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뛰어놀아야 할 때는 열심히 뛰어놀고, 아빠는 그게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해. 공부해야 할 때 놀기만 하는 사람은 성장을 이루기 힘들 테고, 놀면서 쉬어야 할 때 계속 일하는 사람은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겠지. 지금 해야 할 일은 지금 실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란다.
느낌표나 물음표로 끝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문장은 마침표로 끝나.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이처럼 마침표를 찍게 되겠지. 다만 마침표를 찍기까지 열심히 문장을 써내려 가다가 적절한 시점에 쉼표를 찍는 것이 중요하듯이, 우리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적절한 순간에 쉼표를 잘 찍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쉼표도 없이 한없이 길어지는 문장은 읽기 힘든 것처럼, 쉼표도 없이 한없이 달리기만 하는 인생도 너무 답답하고 힘들 테니까. 그러니 아들아, 네 인생이라는 문장을 열심히 써내려 가는 동안에도 때때로 너 자신을 위해 쉼표를 찍어주도록 하자.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는 제대로 공부하고, 쉴 때는 제대로 쉴 줄 아는 멋진 사람이 되자. 아빠랑도 같이 신나게 놀면서 말야.
* 가매장(假埋葬) : 시체를 임시로 묻음.
#아들이랑읽고싶어서쓰는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