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욱 Dec 25. 2023

허세 부리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들이랑 읽고 싶어서 쓰는 한국사 (10) - 삼국시대를 연 건국 신화2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다른 삼국시대 주역 국가들의 건국 신화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진 백제부터 이야기해 볼게.


백제의 건국 시조 온조왕은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의 아들인데, 두 가지 설이 전해져. 하나는 주몽의 친아들이었다는 설, 그리고 또 하나는 온조의 아버지는 원래 우태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죽은 뒤 어머니 소서노가 주몽과 재혼하게 되어 주몽이 새아버지가 되었다는 설이지. 어쨌든 온조가 고구려 왕실에서 나온 인물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것 같아. 그런데 어느 날 유리라는 청년이 불쑥 찾아와. 주몽이 부여에 살았을 때 예씨부인이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부여에서 급히 도망쳐 올 때 부인과 어린 아들을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해. 다만 자신의 아들이라는 증표로 부러진 검을 남기고 떠났는데, 유리가 그 증표를 들고 주몽을 찾아온 거지. 주몽은 크게 기뻐하면서 유리를 태자로 삼아. 이 순간 가장 황당했던 사람은 온조와 그의 친형 비류, 그리고 그 둘을 낳은 어머니 소서노였겠지. 아무리 유리가 첫째 아들이라고 해도 그가 고구려 건국에 10원 한 푼 보탠 것도 없었는데, 고구려 건국에 많은 역할을 했던 자신들을 팽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야. 화가 나서 반란을 일으킬 법도 한데, 그들의 선택은 그보다 좀 더 호기롭고 건설적이었어. 남쪽으로 내려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로 한 거야.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 터전으로 삼을 곳을 물색해. 이때 비류와 온조의 의견이 갈렸대. 온조는 한강 이남의 땅이 비옥하고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라 여기서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비류는 바닷가를 선호했지. 결국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비류는 지금의 인천 근방인 미추홀에 따로 나라를 세워. 하지만 비류가 세운 나라는 오래가지 못해. 땅이 매우 습하고 물이 짜서 수도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거지. 하지만 온조의 위례성은 활기가 넘치고 번영했지. 결국 비류 세력은 온조 세력에 흡수되었고, 이때부터 나라 이름도 백제라고 부르게 돼.


자, 이번에는 백제와 늘 아웅다웅하던 나라 신라의 건국 신화를 살펴보자. 삼국유사라는 책에 따르면, 경주 지역 6명의 촌장들이 모여서 지도자를 추대*해야겠다는 논의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번개빛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워져 있고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형상이 보였다는 거야. 그곳에는 보랏빛 알 하나가 놓여있었고, 흰 말은 하늘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는구나. 그 알에서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혁거세야. 그는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도 박씨가 되었지. 이것이 바로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인데, 그는 13살의 나이로 신라의 첫 번째 왕이 되었어.


박혁거세와 관련된 신비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알영이라는 이름의 우물가에서 머리는 닭을, 몸은 용을 닮은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고 사라졌대. 입술이 닭부리 모양 같았는데 씻겨주었더니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는구나. 우물 명칭에서 따 알영이라 이름 지은 이 아이는 박혁거세의 왕비가 되지. 박혁거세는 탄생과 결혼뿐만 아니라, 그 죽음까지도 신화로 얽혀있어. 박혁거세가 죽자 몸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그 유해가 흩어져서 이레(7일)만에 떨어졌는데, 이때 왕비도 죽었다고 해. 사람들이 슬퍼하며 함께 합장*하려고 하니 큰 뱀이 나타나 방해했다는구나. 어쩔 수 없이 무덤을 5개로 만들어 유해를 각각 묻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무덤을 오릉이라고 불러. 아까 봤던 백제 건국 신화에 비하면 신라 건국 신화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이야기들 투성인 것 같구나.


비록 삼국 중에 끼지는 못했지만, 가야의 건국 신화도 흥미로우니 간단히 이야기해 보고 넘어가자. 가야 구지봉이라는 곳에서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아니하면 구워서 먹으리.'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거라 하지. 그 동네 우두머리였던 구간(九干)들이 그 말에 따랐더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내려왔고 그 아래에는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있었대. 그 상자를 열어보니 해 같이 둥근 황금알 6개가 놓여있었고. 12일이 지나자 그 알이 용모가 거룩한 동자들로 바뀌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온 아이의 이름을 수로라고 했다는구나. 그가 바로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야. 김수로왕의 아내는 저 멀리 아유타국이라는 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허황옥이라고 전해져. 그녀의 출신지인 아유타국은 인도, 태국, 중국 사천성 등 여러 설이 전해지는데, 여하튼 김수로왕의 결혼 과정도 무척 범상치 않아 보이지?


자, 지금까지 백제,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를 살펴봤어. 신라와 가야의 건국 신화는 사람이 알에서 태어났다느니, 무척 신비로운 결혼을 했다느니, 죽어서 몸이 하늘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다느니 하는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뻥치는 이야기가 무척 많이 보여. 앞에서 봤던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고구려 건국 신화도 마찬가지고 말야. 이중에서도 그 뻥이 제일 쎄 보이는 나라는 신라인 것 같아. 그런데 백제 건국 신화에는 그런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아. 어느 날 뜬금없이 이복형제*라는 사람이 나타나 고구려 왕위를 잇는 상황이 되었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남쪽에 내려와 백제를 건국했다, 그것이 전부야. 주몽처럼 대단한 영웅 서사시도 딱히 보이지 않고,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용이 출현했다거나 그런 뻥 같은 이야기도 없어. 신라, 가야의 건국 이야기와 백제의 건국 이야기가 이처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들은 온조가 만주 지역의 발달된 철기문화와 신무기를 가지고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왔을 거라 생각해. 위례성에 나라 터전을 삼는 과정에서 토착 세력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북쪽에서 이주해 온 온조 세력은 큰 마찰 없이 그 땅에 먼저 살던 토착세력을 복속*시켰던 거야. 온조가 나라 이름에 숫자 100이 들어가는 백제(百濟)라고 지은 것을 보면, 100 여개에 이르는 토착 세력이 온조의 지배조직으로 흡수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고. 여하튼 백제의 첫출발은 순조로웠고, 온조왕은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했지. 그런데 이미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던 온조가 굳이 여러 신비로운 신화를 들먹이면서까지 자신의 권위를 드높여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와 달리 신라의 박혁거세는 토착 세력에 의해 추대된 지도자였어. 신라는 지리적으로도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발전이 느렸지. 박혁거세에게는 온조처럼 자신의 힘을 뒷받침할 강력한 철기문화도, 신무기도 아직 없었단다. 그래서 자신의 지배권을 정당화해 주는 여러 근거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어. 흰 말에 무릎 꿇고 있던 곳에 알이 있었다는 둥,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둥, 자신의 아내는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둥, 죽어서 몸이 하늘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다는 둥. 이런 뻥을 치면서 '나는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니까 나한테 복종해야만 해!' 이렇게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던 거지. 결국 건국 시조 이야기에 과대망상 같은 '허세'가 양념처럼 듬뿍 들어가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의 지배력이 무척 약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백제와 신라의 건국 신화가 무척 달리 보이는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단다.


남 앞에서 나를 과시하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허세라고 불러.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허세 부리는 풍조는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야. 명품 가방이나 자동차 같은 비싼 물건을 SNS에 올리면서 자기를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짝퉁 명품을 걸치거나 외제차를 빌려서 사진을 찍고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 또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인맥을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일은 꼭 SNS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야.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더 부풀리고, 심지어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 경력을 꾸며서라도 허세 부리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말이나 몇몇 사진을 갖고 부자나 어떤 분야의 권위자처럼 꾸밀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미지로 만들어진 허세는 금세 들통나기 십상이란다. 허세는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야.


지배력이 약했던 박혁거세는 그 부족한 공백을 화려한 신화 이야기로 메꾸려 했고, 반대로 지배력이 강했던 온조는 그런 이야기를 꾸며낼 필요도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보면 이런 교훈이 떠올라. 허세 부리는 사람은 그만큼 본인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고, 진정 실력 있는 사람은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들은 허세 부릴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게 행동하지. 허세로 만들어진 '자존심'은 언제든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지만, 실력으로 만들어진 '자존감'은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쉽사리 무너져 내리지 않아. 허세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란다. 비어있는 내면을 숨기려면, 화려한 겉모습으로 가려야 할 테니까. 하지만 내면이 꽉 차고 아름다운 사람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굳이 그런 허세 따위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빛나는 사람이니까. 


지환아,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 자신감이 필요할 때가 있어. 하지만 그것이 허세로 가득한 자신감은 아니었으면 해. 너의 진짜 실력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우리 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의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너만의 것들을 하나씩 내면에 채워나가다 보면 꼭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 추대(推戴) : 윗사람으로 떠받듦.

* 합장(合葬) : 여러 사람의 시체를 한 무덤에 묻음. 흔히 남편과 아내를 한 무덤에 묻는 경우를 이름.

* 이복형제 :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는 다른 형제. 배다른 형제.

* 복속(服屬) : 복종하여 붙좇음.


#아들이랑읽고싶어서쓰는한국사

매거진의 이전글 너만의 롤모델을 찾거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