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마음>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은 행동일 수 있지만, 아내가 날 많이 생각해주는구나 싶은 순간이 종종 있다. 아내가 주기적으로 내 칫솔을 새것으로 바꿔놓은 것을 볼 때도 그렇다. 내가 좀 둔하고 무신경한 스타일인지라 칫솔모가 해어져도 6개월이고 1년이고 그냥 쓰는 타입인데, 아내는 그런 나를 게으르다고 나무라기보다 본인의 칫솔을 바꿀 때 내 것도 함께 바꿔준다. 아내의 그런 배려를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가끔 아내가 집 앞에 있는 커피맛집 가게에서 아이스라테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냉큼 커피를 사러 다녀온다. 그리고 바로 맛있는 라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빨대로 커피와 우유를 잘 섞은 다음 건넨다. 소소하지만 내 나름대로 아내를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에 하는 행동이다.
아내가 나를 위해 주기적으로 칫솔을 바꿔주고, 내가 아내를 위해 아이스라테 커피를 기꺼이 사 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나름의 방법이다. 그 안에는 상대를 아끼는 마음과 더불어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는 마음도 함께 배어있다.
상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데면데면하게 대할 때 '소홀히 여긴다'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소홀(疏忽)'이라는 단어가 '소통(疏通)'이란 단어와도 무척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홀과 소통 앞머리에는 '疏'(트일 소)라는 한자가 공통으로 들어간다. '疏'는 '疋'(발 소)와 '㐬'(깃발 류)가 결합한 한자인데, 㐬는 아이가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라고 한다. 아이가 떠내려가면 누구라도 발 벗고 나서서 아이를 구하려 할 것이다. 막힘없고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소통한다는 뜻을 가졌다. 이러한 疏에 통하다는 뜻을 가진 '通'(통할 통)까지 더해지면 '서로 막힘없이 통한다'는 뜻을 가진 소통이란 단어가 된다. 그런데 疏 뒤에 通이 아니라 '忽'(갑자기 홀)이라는 한자가 오면 완전히 다른 뜻을 가진 단어가 되어버린다. 忽은 '勿'(말 물) 아래에 '心'(마음 심)이 놓인 한자인데, 勿은 칼로 뭔가 쪼개어 파편이 튀는 모습을 형상화하면서 '~을 하지 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忽은 '~을 하지 않는 마음', 즉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소홀이란 단어를 해석해 보면, '소통하지 않는 마음', '서로 막혀서 통하지 않는 마음'이라 볼 수 있다.
疏라는 같은 한자 뒤에 通이 오느냐, 忽이 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의 단어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람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보다 소통에 달렸다. 누군가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疏를 통(通)해서 보여주느냐, 소홀(忽)히 여기느냐에 따라 그 관계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비싼 선물이나 대단한 정성이 들어간 그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 번씩 칫솔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무더운 날 기꺼이 아이스커피 한잔을 사 오는 것만으로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소홀히 여기지 않는지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