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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Apr 07. 2019

연구활동가의 질적연구법

듣는연구 세미나 후기 (2)

이 글은 듣는연구소가 연구활동가로서의 연구 방법으로서 '듣는연구'를 발전시키려는 세미나 두번째 기록이다. 스터디에 함께 하지 못한 분들과도 내용을 공유하기 위한 기록이므로 길다.(스압 주의) 하지만 관심있는 연구활동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글을 읽고 다음에 또 함께 스터디나 연구를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댓글이나 facebook 메시지로 반갑게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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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연구 세미나 후기(1) 연구활동가의 연구법


활동연구자에게 질적연구는

지난 글은 연구활동가의 연구가 학문연구와 어떻게 다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연구활동가로서 연구인 '듣는연구'는 말 그대로 인터뷰나 현장을 관찰하는 질적연구 방법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결과물이나 목적 자체가 학문 연구로서 질적연구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연구활동가의 방법론에 적용하기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듣는연구소는 ‘현장, 특히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사회를 이롭게 하는 대안을 찾는 연구와 실천을 하는 팀’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나 관찰, 실행 후 평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 질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해왔다. 연구활동가들은 현장에서 문제의식을 찾고, 구체적인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하기 때문에 질적연구방법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 세미나에 참여한 퍼실리테이터 케이도 정책연구자나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면서 질적 연구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케이: 듣는다는 것이 질적연구, 액티비스트 리서쳐의 활동과 연결성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예전 회사에서 정책연구를 할 때엔 이미 만들어진 포맷에 맞춰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때론 사회 맥락과 사회 의식 변화에 따라서 현장에 들어가서 귀납적으로 증명하는  연구가 필요하더라고요. 현장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듣고, 관찰하고,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맥락에서 지금 언급한 방법론들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질적연구방법론 강의록에서 밑줄치기

듣는연구소 우군은 지난 겨울 KOSSDA에서 실시한 동계 사회과학방법론 강의 중 질적연구 방법론인 구술사(윤택림 소장)와 근거이론 강의(도승이 교수)를 수강했다. 강의를 수강하면서 그간 듣는연구소가 했던 연구를 떠올리며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달랐는지, 다를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왜 그런지, 적용하고 발전시킬 부분은 무엇일까 등을 강의 노트에 기록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그 자료와 함께 작년 듣는연구소가 했던 연구물 중 하나인 다년차마을활동가 역량도출 및 지원방안 연구보고서(다운로드)를 발제문 삼아서 읽고, 각자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이야기했다.


질적연구 강의노트에서 우군이 인상깊었던 내용의 일부를 적어보았다. 

질적연구의 목적은 대상에 대한 완숙한 이해를 창출하는 것이므로 일반화나 보편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질적연구는 완전한 객관화나 연구자의 가치중립이 불가능함을 전제로한다. 그러므로 연구자가 연구하는 맥락이나 관점을 밝히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는 자기 주관을 반영하기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연구자 관점보다 당사자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편적인 현상 뿐 아니라 현상이 발생한 맥락, 상황의 복잡성 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연구 결과물은 분석자료를 단편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묘사적 서술이 필요하고, 그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인터뷰는 구조화된 동시에 유연해야 한다. 약탈적 인터뷰는 지양해야 한다. 묻기 위주의 인터뷰보다 듣기 위주의 인터뷰 태도로.(특히 구술사에서)  

기본적으로 인터뷰어는 말을 적게 하고 구술자가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구술자가 스스로 침묵을 채우게 하라. 구술자의 의견에 논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라는 순진한 태도로 임하는 것이 좋다.  

질적연구의 분석과 결과물은 아주 새로운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대상과 자료의 특성을 잘 보여주면 충분한 것이다.  

    - 출처: KOSSDA 2019 동계방법론 구술사(윤택림), 근거이론(도승이) 강의를 기록한 우군의 노트  


듣는연구 세미나 ©백희원


질적연구방법 중에서 다양한 접근법이 있고, 위 강의록은 그 중에서 구술사와 근거이론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모든 질적연구방법론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구술사는 한 사람의 생애사 내러티브 기록 자체가 강조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구술 채록은 적어도 3번 이상 수행하며 탐색적이고 유연한 인터뷰가 이뤄진다. 근거이론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현상에 대해 겪은 과정에서 미시적인 이론을 추출하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더 구조화된 질문을 바탕으로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1회가량 인터뷰하며, 분석할 때도 어느 정도 보편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른 방법론이지만, 두 접근법을 비교하면서 질적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이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현장 관찰이나 인터뷰 자세와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은 공통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연구활동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판단중지와 괄호치기

쑤는 '판단을 정지'하라는 연구자의 태도에 대한 조언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판단중지'와 '괄호치기'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인터뷰를 하거나 분석할 때 연구자의 주관을 개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쑤: “연구 참여자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해라. 멈출 때 멈춰라. 중지할 시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싶을 때 제가 해석에 제 주관을 너무 많이 넣을 때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내가 봤을 때 이런 거 같은데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야?란 생각에서 부풀려 쓰기도 했고요. 그리고 인터뷰 할 때에도 말을 적게 해야 하는데 저는 말 많이 하거든요(모두 웃음). 그래서 이 부분에 별표를 쳐놨어요.

물론 질적연구는 연구에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질적연구 내 여러가지 접근법에 따라 자료수집시나 분석에서 연구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있는데, 판단 정지는 현상학(어떤 현상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려는 접근법)에서 강조한다.

 ‘판단 정지(epoche)’가 중요함: 연구자의 판단을 그대로 진실이라고 하지 않고 일단 보류한다. “연구 참여자들이 본인이 그렇다고 하면 일단 그렇게 판단하라, 연구자가 판단하지 말고.”  
- 도승이 (근거이론 강의노트)
구술사 인터뷰는 일상적 대화와 다르다. 토론식, 논쟁식, 공격식 인터뷰(언론)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어는 말을 최대한 적게 하고, 구술자가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구술자가 침묵을 채우게 하라. (침묵을 못 견디고 막 질문하지 말란 얘기)  
- 윤택림(구술사 강의노트)

질적연구, 그 중에서 근거이론은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동시에 분석이 이뤄지고, 그 분석을 토대로 다시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따라서 연구 과정에서 데이터에 대한 연구자의 느낌과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메모하는데 이때 ‘괄호치기’를 통해 기록에서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연구자의 느낌이나 생각이 섞이지 않도록 구분한다. 물론 연구자가 주관적인 의견을 메모할 수도 있지만, 현장 당사자들의 기록인지 아니면 연구자의 선입견이 포함된 내용인지를 구분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질적연구(근거이론)에서 현장노트를 작성하는 과정  

미가공 현장노트 작성: 현장에서 관찰한 내용을 불완전하더라도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노력해서 적는 작은 노트. 이때 주의를 기울일 사항에 대하여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기록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상황에 휘둘려서 관찰할 주제를 까먹는다. 이 상황에서 (연구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여자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

연구 관찰기록안 작성: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가급적 빨리 미가공 현장노트 내용을 연구관찰 기록안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가능한 기술적(descriptive)으로 작성한다. 부연설명 할 때 언어 확인 원칙(누가 누구에게 말했는가), 말 그대로의 원칙(요약이나 의역과 다르게 정확히 기록), 구체성의 원칙(일반화보다 구체적 언어를 사용하여 사건의 세부사항 기록)

괄호치기: 관찰하거나 인터뷰 한 객관적 기록 옆에 내 생각은 [괄호]를 치고 구분해서 기술하라. 거의 확실한 것 같아도, Fact와 해석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좋다. 연구자의 가정, 느낌, 선입견을 인식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임.

연구일지 기록하기: 연구수행 중 발생하는 경험, 아이디어, 공포, 실수, 혼란, 진전, 문제 등 기록. 연구일지는 연구과정에서 연구자의 개인적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방법 제공함. 괄호치기를 확장한 것이다.   

    - 도승이(근거이론 강의노트)

봄: 판단을 멈추고 듣고, 팩트를 적고, 괄호해서 내 생각을 구분해서 적고, 남는 질문을 적어보고. 강의노트처럼 이런 순서대로 핵심적인 것들에 대해서 노트를 남기면 의미있는 걸 남길 수 있겠다 싶네요. 저는 가끔 참여자들이 쓴 거 외에 의미있는 얘기들을 덧붙여 적는데, 가끔은 내가 사고한 건지, 그 사람이 쓴 건지 헷갈릴 때가 있거든요.

이렇게 현장기록과 연구일지 등 기록을 잘 해 두는 건 연구의 질을 높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학계에서는 연구과정의 기록을 꼼꼼히 적은 연구노트가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여럿이 함께 연구할 때

질적연구에서 공동연구의 장점은 많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연구자들마다 가진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꺼내놓기 때문에 분석 내용이 풍부해지고, 분석에서 무엇이 의미있는지를 가려내기도 쉽다. 그래서 혼자 작업보다 공동연구할 때 연구 질도 높고 결과에 대해 확신도 갖게 된다. 무엇보다 혼자 연구하는 것보다 여럿이 연구하는 것이 재밌다!


하지만 공동연구를 한다고 해서 모든 인터뷰나 현장관찰을 함께 하긴 어렵다. 현장에 함께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조사 내용을 공유할까? 듣는연구소에선 현장 관찰이나 인터뷰 후 문서로 녹취록과 기록문을 적어 연구자들끼리 텍스트를 공유해왔다. 그런데 구술사 강의에서는 ‘공동연구자 중에 면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녹취록보다는 녹음파일을 공유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했는데, 녹취록보다는 녹음파일이 현장에서의 상황이나 목소리 등을 더 생생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한국은 구술채록이 기관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녹취록 작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는데, 미국에선 녹취록보다는 녹음파일 자체만으로도 구술기록으로 가치를 인정해준다고 한다.


공동 연구자가 분석(코딩)을 할 때 어떻게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근거이론 연구는 녹취록을 보면서 거의 모든 문장 단위로 내용을 ‘구’ 단위로 축약하고, 그 축약된 내용을 상위 개념으로 추상화 시켜서 범주(category)로 만든다. 범주들의 관계를 살피면서 연구 질문에 대한 도식이나 이론으로 만든다. 듣는연구소에서 했던 분석방법도 녹취록을 읽고 (매 문장 단위는 아니지만) 상위 개념으로 범주화 하거나, 발견한 인사이트끼리 이리저리 묶으며 문제나 대안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근거이론 코딩 과정과 비슷했다.

여럿이 함께 분석할 때는 공동 연구자들이 녹취록이나 관찰기록을 쭉 보면서 포스트잇에 주요 내용을 기록하고, 발견한 인사이트를 적었다. 그리고 점차 상위 범주와 언어로 추상화를 했다. 포스트잇에 적은 내용을 이리저리 묶어가며 인사이트를 발견했다.


우군은 이런 방식의 공동연구자 간 분석 방식이 주어진 시간과 인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학문연구에서도 이런 방식이 타당한지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공동 연구자가 다같이 녹취록 전수를 보고 코딩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몇 개씩 나눠서 하는 게 좋을지가 궁금했다. 근거이론 강의에서는 텍스트를 오래 들여다봐야 분석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녹취록을 몇 개씩 나눠서 세세하고 깊이있게 분석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런데 연구활동가의 연구는 학술적 엄밀성보다는 빠르게 현장에서 얻은 시사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모든 연구자들이 녹취록 전수를 읽고 함께 코딩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여럿이 함께 자료 분석 ©듣는연구소

또한 동료 검토(peer-debriefing)가 중요하다는 것도 질적연구 강의에서 확인했다. 연구 과정에서 수시로 조사하고 나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서로 공유하고, 분석할 때 어려운 것이 있으면 확인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질적연구의 검증

질적연구에서는 신뢰도보다 타당도가 더 중요하다. (make sence 되느냐. 그들의 합리성을 연구자가 이해하고 있느냐.) 질적자료가 연구자의 해석을 얼마나 뒷받침하는가를 봐야 한다. 소비자학, 사회학, 간호학 등 전통적으로 양적방법론이 강했던 분야에서 질적연구시 삼각검증법을 많이 사용한다.  
- 윤택림 (구술사 강의노트)

참여자들은 연구에 대한 검증에도 관심이 많았다. 열심히 연구했지만 '이게 맞나'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활동가의 연구 방법이나 결과물이 학술연구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에 맞게 검토해 주는 사람이라든지 연구활동가의 연구물을 검증할 가이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질적연구방법에 대한 교재나 강의에서도 질적연구물에 대하여 양적연구와 같은 잣대로 타당도나 신뢰도를 검증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장치 - 전문가 검토, 동료검토, 삼각검증, 과정의 꼼꼼한 기록과 연구노트 등 - 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질적연구에서 많이 사용하는 삼각검증(triangulation)은 주제에 대해 한 가지 자료원이 아닌 그 이상의 자료원을 사용해 연구 전반의 타당도를 검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론이나 문헌자료, 선행연구를 활용할 수 있고 양적연구 데이터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동료나 전문가의 의견도 이용된다. 그런데 이것은 타당도를 검증하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주제에 대해 더 다각도로 심도있는 이해를 돕는 데 사용된다.

봄은 연구활동가의 연구에서도 이론이 적절하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활동가가 연구물을 작성할 때 어느 정도로 이론을 활용할 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론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지식을 쌓는 학술연구 보고서의 틀을 따르다보면 연구활동가의 연구로서 특징을 잃기 쉽다.

봄: 듣는연구소가 한 마을 연구가 균형감 있어보이는 건 이론과 현장의 소리가 잘 연결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 연구에선 두 가지 키워드인 마을활동가와 역량을 같이 다루어야 해서 수 많은 선행연구 중에서 의미있는 논문을 찾아내고 근거를 찾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역량도 그냥 역량이 아니라, 이 연구에서 의미하는 역량이란 걸 선정하는 과정도 궁금하고요.
우군: 저도 그 부분이 제일 어려웠는데, 기존 학술지에서 ‘역량 도출’을 검색하면 대부분 경영학의 직무에 따른 필요역량 도출이나, 교육학에서 말하는 시민 역량 같은 것이 나오니까요. 저희가 봐야 하는 대상은 단일한 조직에 속해서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마을활동가의 역량을 살펴봐야 하는데 거기에 맞는 역량은 어떻게 파악해야하는지를 선행연구나 이론에서 찾는 게 힘들었어요. 아마 학술연구자였다면 큰 고민 없이 제 전공에 따른 선행연구와 이론 위에서 연구 질문을 만들었겠죠.  ‘이렇게까지 이론을 파야 하나?’ 고민도 되었지만, 그래도 이론을 검토했던 것이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연구활동가의 연구에서 이론은 어떤 역할을 할까? 연구활동가에게 이론은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고 설명할 때 도움이 잘 될 때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스터디 참여자들은 연구활동가의 연구에서 양적방법론과 질적방법론이 적절히 혼용될 때 효과적이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적데이터를 무조건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사회 발주기관의 요구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도 한다.. 필요에 의할 때만 사용하면 좋을 것을.

케이: 저희 회사에서는 양적방법론과 질적방법론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주로 양적 데이터는 고객들이 원해서 넣는 경우가 많긴 한데요, 이런 활동으로 변화된 걸 수치로 표현해달라는 거죠. 양적연구에서 나온 결과물을 가지고 질적 연구의 질문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우군: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 둘 다 잘 사용하는 혼합연구가 현장에서는 유용한 것 같아요.
희원: 연구활동가들이 하고자 하는 연구는 결국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해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은 거죠. 저는 요즘 어느 시에서 청년 실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실태도 알고 싶고 정책 제안도 해달라고 하던데, 제가 생각할 때에는 이 연구에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발주처에서 통계 숫자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런데 숫자만으로는 스토리가 안 만들어지더라고요. 숫자는 비교하기 위한 것이니까 단독으로는 얘기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례연구가 연구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숫자와 사례와 이론을 편안하게 섞어 쓰는 연구들이 외국 서적에는 많은 것 같고, 그게 스토리에 잘 녹아드는데 그런 연구를 하고 싶어요.
봄: 그런 연구가 되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이게 질적 방법론이야 양적이야가 아니라, 필요해서 필요한 곳에 썼다는 느낌.
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그런 것을 느꼈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담고 숫자를 쓰면 얼마나 좋을까.


연구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

앞서 희원의 말처럼 스터디 참여자들은 연구활동가의 좋은 연구물이란 스토리가 살아있는 연구, 그래서 대상자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돕는 연구물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쑤: 마을연구 보고서를 읽으면 연구과정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었어요. 왜냐면 연구 대상인 당사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해하기가 쉬웠어요. 보고서에 퍼소나도 있고 대상자에 대한 개별 스토리들도 있었는데, 퍼소나만 있으면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심층면담 내용에 대한 내용이라든지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보고서가 재밌었어요, 내 얘기 같고.
다년차 마을활동가 역량연구 - 퍼소나 ©듣는연구소 (persona image by flatcon)

질적연구는 대상에 대한 깊이있는 자체가 목적이므로 연구결과물을 작성할 때 독자가 주제의 배경, 맥락, 상황 등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한다.

연구활동가의 연구에서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이유는 연구 결과물 그 자체가 현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하는데, 연구 대상에 대해 독자들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질적연구는 독자들에게 제공될 텍스트를 만든다. 다양한 형식이 될 수 있다. 질적연구는 분석자료를 턱턱턱 제시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서 대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있게끔하는 상세한 기술이 중요하다.
-도승이(근거이론 강의노트)
봄: 액티비스트 리서쳐는 연구와 활동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문제 해결일 수도 있고, 이슈일 수도 있고 그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요. 결론이 무엇이 될 지 모르지만 해결해나가는 과정인 연구 자체가 하나의 활동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쓸모를 고려한 연구설계

듣는연구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용될 연구인가’가 뚜렷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 초반부터 발주처와 연구 설계에 대해서 깊이있게 협의하고 필요에 따라서 수정하는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

쑤: 마을연구에서 또 인상깊었던 것은, 연구 과정에 대한 기술 중에서 중간에 ‘자문을 받아서 대상자를 뭘로 바꿨다’는 내용들이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한 번 정해진 걸 수정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이 연구는 중간중간 피드백 받아서 반영했다는 걸 여러 군데에서 알 수 있었어요.
우군: 발주처에서 꼼꼼하게 연구 검증이나 자문 장치를 많이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그런데 요식행위로 와서 자문하시는 분들이 아니라, 정말 현장에 이 연구결과가 어떻게 적용될 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걱정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그 분들 얘길 듣고 대상도 바뀌고 피드백을 많이 반영했죠.
이상하게 나는 그게 다른 발주처랑 갑을 관계에서 했으면 짜증 났을 텐데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발주처가 연구를 함께 했다는 느낌이었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발주처랑 이 연구 결과가 어떻게 쓰일지, 그러려면 어떤 식으로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지, 실무적으로 필요한 게 뭔지를 계속 협의했던 것 같아요.

연구 결과물을 어떻게 쓸 것인지 전망이 있어야 연구설계가 가능하다. 즉,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지, 결론은 누구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결과물이 어떻게 실천으로 반영될 수 있는지가 보이지 않으면 연구활동가는 연구물이 소수만 읽는 종이책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연구에 참여하는 문제 당사자들에게 ‘당신의 참여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질 높은 자료가 수집된다. 이처럼 발주 주체가 연구 결과물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실행하겠다는 전망을 보여주어야, 실행을 전제로 한 제대로 된 듣는연구 설계가 가능하다.

하진: 처음에 발주처에서 연구 의뢰를 할때 연구 결과를 어떻게 사용할 지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추상적으로 ‘이런거 해보려고 하는데, 이런거 저런거 다알고 싶다’고 해요. 결과물의 활용에 대해 이야기가 되어야 처음부터 연구 설계에 뭘 반영해야 할 지 알 수 있거든요. 예를들면 워크숍이 많이 필요하다던지 당사자 이야기 많이 듣겠다던지요. 결과가 나왔을 때 연구 대상자인 당사자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연구 결과를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약간의 청사진이라도 요구할 수 있어야 액티비스트 리서치로서 효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구 설계부터 어떤 식으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발주처와 연구기관이 충분한 협의를 해야할 것 같아요.
우군: 차라리 그럴 땐 저희가 그쪽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연구 설계를 초반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제는 그것도 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그런 건 보수로 포함되지 않으니 힘들죠.
희원: 그렇게 연구 설계를 해 주는 것에도 제대로 비용을 요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실행으로 연결하기 위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연구

연구활동가는 연구를 통해 현장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초점을 둔다. 학술 연구가 ‘새롭게 발견한 지식과 진리가 무엇이냐’를 위해 연구한다면, 연구활동가는 ‘그래서 무엇을 당장 해야 하는가’를 알고자 한다. 질적연구가 섣불리 ‘신박한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려는 것보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해도, 질적연구를 활용한 연구활동가의 연구에서는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군이 듣는연구소에서 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연구 결과물로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때 연구자가 책상에 앉아서 '좋은 말 대잔치'인 제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액션을 취할 당사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상황을 반영하여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어떻게 만드는가라고 토로했다.

우군: 이전에 연구보고서 작업을 할 때 가장 싫었던 게 연구자가 자의적으로 제언이나 시사점을 쓰는 거였어요. 사실은 시사점 얻기위해 그 연구를 하는 건데, 연구자가 이런거 하면 좋겠다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데 당사자의 삶의 맥락과 닿아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냥 연구 결과에 국내외 사례를 적당히 섞어서 추상적인 좋은 말들을 쓰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실효성도 없을 거고요.
그래서 마을 연구 할 때에는 연구 결과 가지고 제안을 도출할 때 이해관계자 워크숍을 했는데 좋았어요. 실제 연구 결과를 가지고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담당자들과 마을활동가 당사자들이 참여했거든요. 그분들이 고민하는 깊이가 나보다 깊고 구체적이며 생산적이었어요. 그래서 시사점을 도출할 때 어떻게 하면 당사자 참여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액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쓸모있는 결과를 어떻게 제안해 줄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하게 돼요.
하진: 저희가 했던 연구들을 돌아보니까 당사자와 이해관계자가 연구에 어느 형태든 참여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연구 과정에 인터뷰하거나 워크숍 몇 번 하는 소극적 참여뿐 아니라 좀 더 주도적으로 당사자가 참여하는 연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돼요.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당사자가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방법의 하나인 커뮤니티 기반 참여 연구(CBPR)를 공부하기로 했다.


by 듣는연구소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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