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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Apr 07. 2019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

듣는연구 세미나 후기 (3)

이 글은 듣는연구소가 연구활동가로서의 연구 방법으로서 '듣는연구'를 발전시키려는 세미나 세번째 기록이다. 세미나 내용은

1) 학문연구와 다른 연구활동가의 연구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2) 연구활동가의 질적연구는 어떻게 하는지

3) 당사자가 좀 더 참여하는 연구설계로서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CBPR)'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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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연구 세미나 후기(1) 연구활동가의 연구법

듣는연구 세미나 후기(2) 연구활동가의 질적연구


이번 세미나에서는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를 소개하는 하진의 발제문(아래)과, 이 연구방법을 적용한 연구사례(Researching Age-Friendly Comminies)를 읽고 이에 대해 궁금한 점과 우리의 연구+활동에 적용할 점을 이야기나눴다.


하진 발제


듣는연구란 무엇일까? 첫 모임에서 듣는연구가 추구하는 연구의 방식으로 ‘질적연구’를 다루었다. 우군도 하진도 양적연구의 경험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단순히 양적연구를 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질적연구에 끌리게 된 것일까? (아주 부정할 수도 없지만…) 잘 듣기위한 방식으로 양적연구가 도움이 된다면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여서라도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할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질적연구가 가지는 어떠한 특성이 우리를 질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접근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듣는연구’의 출발을 간단히 돌아보면 ‘당사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연구’에 대한 바램이 있었던 것 같다. 무수한 말들 속에서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결과의 담보야 누구나 할 수 없겠지만 그 부분은 아예 삭제하거나 외면해 버리고 시작하는) 연구와 실천의 시도들에 조금 지쳐있었을 수도있고, 구체적으로 듣는 방법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 ‘많이’들으려 하거나 혹은 ‘돋보이는 행사’를 통해 들으려는 척만하려는 방식에 회의감이 들었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 회의가 발생한 원인은 우리는 '우리의 연구의 대상으로 만나고 접하는 사람, 공간, 사건의 얼굴을 알기 원했다'는데 있을 것 같다. 듣는연구소의 이름을 정하는 워크숍 때 나는 ‘어떤 사업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할 때 그 사업을 통해얻은 관계가 기준이 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몇 개월 동안 공을 들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단과 얼굴이 매치가 되지 않을 때, 그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 유독 회의감이 높았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단순히 질적인 정보가 양적인 정보와는 다른 종류의 정보를 알려준다는 사실과 다른 맥락의 이야기다.

대상에서 당사자로, 당사자에서 참여자로, 참여자에서 연구와 실천의 주인공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위치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관계에 절대좌표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위치를 바꾸면 상대의 위치가 바뀔 수 있었다. 때문에 의식적이었던 의식적이지 않았던, 먼저 연구자로서의 우리의 위치를 바꾸는 시도를 시작했다.

첫 작업인 ‘조건없는 공적 재정지원을 받은 청년들의 삶 경험 탐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자의 내러티브로 시작된다.

A. 연구자 A의 내러티브
 ‘서른넷에 퇴직을 앞두고 있고 그 이후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마련된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은 ‘네가 미쳤구나.’일 것이다. 거기에 독립해 살고 있는데다 대출도 좀 껴있고 하다면 더더욱 미친것이다.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2016년 7월 현재 나의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던 한 이십대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진로 고민이라는 게, 뭘 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 라는 질문이 그 나이까지 계속되는 거네요.’ ‘새삼스레 몰랐던 것처럼 뭘…….’이라고 넘기긴 했지만 처음 퇴사를 결정했던 그 때보다 걱정과 고민이 한 겹 한 겹 쌓여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계산해 보니 안 먹고 숨만 쉬어도 한 달 동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가는 돈이 66만원이다. 이래저래 조이고 당겨보면 약 50만원. 몇 달을 버틸 수 있을까.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뭘 위해 이러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연구자 A_연구 공모사업 신청서 내용 중)
연구자A는 연구 공모를 앞두고 퇴사를 했다. 직장이 없다는 것은 곧 정기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전에 일하던 직장을 1년 이상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 퇴사였으므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퇴사가 정해진 이후 생각해 놓은 수입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그야말로 막막한 결정이었다. 이정도 정보를 들으면 두 가지가 궁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하나는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퇴사를 결심 했는지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중략…)

B. 연구자 B의 내러티브
연구자 B는 서른넷이 되어서도 여전히 진로를 탐색중이다. 인간의 진로발달은 청소년기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진로발달 이론가 Super조차도, 서른한 살에는 평생 자기가 할 일에 안착하는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했는데(설인자, 2008), 아직도 평생 할 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연구자 B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진로탐색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연구자 B는 자신의 청년기를 ‘에둘러 갔던 혼란기’로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는 아무생각 없이 공부만 했고, 20대 초반에는 세상에 뭐가 있는지 아는 데 목말라서 경험을 쌓는데 매달렸다. 막상 대학 졸업이 닥치니 뭘 하면 될지 몰라서 멍했고, 진짜 하고 싶었는지 확신도 없던 ‘언론고시’를 치르느라 이년을 보냈다. 낙방 끝에 불안한 마음에 쫓겨 기업에 들어갔고, 도망치듯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늘 떠다니는 것 같고 불안했고,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몸이 망가지기도 했다. 다행히 NGO에서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시작했고,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사람들을 보면서 ‘나 다운 삶’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다운 삶을 알자, 어떤 일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연구와 관련한 연구자의 경험 서술을 통해 시작하는 방법이 전에 없는것은 아니다. 내러티브 방식으로 진행하는 연구에서 종종 시도되는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런지도 모르고 이런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은 (실제 저 내러티브는 연구 제안서에 작성했던 내용을 고친 것이다.) 이 연구 사업이 연구자의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이는 처음부터 우리가 ‘기본소득을 받아본 적은 없으나 거의 그것을 열망하는’당사자성의 위치에서기 원했으며 그 위치에서 연구 대상을 바라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그러한 결심은 연구 관계에서 연구자의 위치를 끌어 내려 대상과의 눈높이를 맞추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연구자가 스스로 당사자성을 가지거나 혹은 ‘당사자화’를 시도하는 것은 양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이해, 몰입, 적극적 관계맺기를 통해 일반 연구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지만, 연구에 ‘객관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스스로 당사자화 됨으로 인해 연구의 시야가 더 좁아지지는 않는가, 연구 윤리와 관련된 문제들에 빠질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우리의 고민은 아직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 모든 문제의 답도 없을 뿐더러 충분한 실천도 이뤄지지는 않았다. 질적 연구, 현장 연구 자체가 긴시간과 노동의 집약을 요구한다. 이 분야에 보다 많은 자원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진행했던 연구에서 그런 노력이 포함되었던 부분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거칠게 정리한 위 표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당사자 검증과정 (단순확인 혹은 공동워크숍)’ , ‘질적 인터뷰에 워크숍 방식 혼용’, ‘활용성을 고려한 결과물 형태’등에 대한 내용이 있고 일부 사례에서 ‘의뢰자와 고민의 구체화 과정’을 거치거나 ‘연구 현장과 일상적 관계 맺기’를 시도한 경우도 있다. (갑을관계,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관계 등을 계속 바꿔 나가려는 시도)


이렇게 해 나가다보니 ‘과연 이정도로 충분한가’이걸 더 잘 해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에 여러 자료들을 살피며 연구자 중심이 아닌 연구자와 연구의 대상이 함께 공동작업을 통해 연구의 결과를 생산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천적 활동을 진행하는 사례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지역사회기반참여연구

먼저 소개할 내용인 지역사회기반참여연구(community based participatory research; CBPR)은 북미(특히 캐나다)와 유럽 등에서 연구자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연구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급진적 형태의지역사회 참여 연구의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다. 70년대서 부터 이론적 기반을 다지며 실천적 연구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분야다. CBPR은 ‘연구자와 연구 되는 것 사이를 또는 연구주체와 연구 객체를 의식적으로 흐리게 하는 접근 방법’으로 소개된다. 연구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지역사회 내의 파트너가 참여할 것을 강조하며, 이들은 협력과정에서 연구자들과 함께 생산되는 지식 및 과업을 공유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함께한다.


CBPR에서 지역사회는 물리적 경계를 통해 구분되는 집단으로 지역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CBPR을 소개하는 국내 문헌들은 '지역사회참여연구'라는 번역을 쓰고 있으나 오히려 공동체 혹은 정체성 집단을 잘 드러내는 다른 단어 혹은 커뮤니티 그대로 번역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들은 여기에서의 커뮤니티를 ‘관심사, 문화, 체제 등을 공유하고 소속감, 공동체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정체성 공동체(Community of identity)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Israel et al, 2003) 이들은 반드시 지역적 경계를 공유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상호작용’성이 더 중요하며 이를 통해 공유하는 문화, 관계, 의식이 있는 것이 기준이된다(Tonnies, 1955; Master et al, 1988).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형성된 관계, 소수민족 등 지역적으로 넓게 분포해도 되고 타고난 정체성을 통해 정의될 수도있다. 현대사회에는 인구, 문화, 사회적 다양화와 함께 여러 주제와 특성들에 대한 공동체가 혼재하기 때문에 제약요소를 강조하여 공동체의 상을 규정하기 보다 현장과의 교류를 통해 대상의 범위와 참여의 과정을 함께 설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CBPR의 정의는 다양한데, 미국 보건 연구 및 품질기구(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 2001)는 CBPR을 “연구자와 커뮤니티 대표자가 참여하는 협력(Collaborative) 프로세스로서 커뮤니티 지역사회 구성원을 고용하고 현지의 지식을 활용해 건강의 문제를 이해하고 참여를 디자인하며 커뮤니티 구성원이 연구의 과정과 결과에 투입되도록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CBPR은 액션 리서치(AR: Action Research, 1940년대)나 참여액션연구(PAR: Paticipation Action Research,1980년대)와 발전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CBPR을 통해 지역리더 발굴 및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Southeast Community Research Center’는 CBPR의 뿌리로 세가지 흐름을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파울로 프레이리(Paoulo Freire)가 주장한 대중교육(Population Education)의 사상으로,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이해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깨우치려는 습관을 지닌 사람을 길러내 참여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학자 Fals-Borda의 참여액션연구(Participation action research; PAR)가 불러일으킨 전통적 연구자-피연구자간의 불평등한 관계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세번째는 Kurt Lewin이 노동자의 민주적 참여를 통한 사회변화를 이끌기 위해 참여를 디자인했던 ‘Shop floor democracy’의 접근이다. 세 접근 모두 기존의 전통적인 관점을 변화시켜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더불어 연구자와 연구되어지는 것(혹은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의 관계 특히 그 사이의 권력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CBPR이 연구와 실천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실천적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의 뿌리도 이러한 사상적 기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CBPR을 소개하고 있는 국내의 연구는 이러한 사상적 뿌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온 CBPR의 분화사례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송아영 등(2017)은 CBPR이 역사적으로 액션리서치(Action Research)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액션리서치가 활용되는 과정에서 참여연구(Participatory Research), 참여액션연구(Participatory Action Reserch), CBPR 및 지역사회파트너참여연구 Commnitypartnered participatory Research), 종족참여연구(Tribal Participatory Research)등으로 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분류는 능동적인 참여의 수준에 따라 커뮤니티 관련 연구를 분류한 Gehlert and Coleman(2010)의 연구에 의한 것이다.


이들은 아래 그림처럼 단순히 커뮤니티를 연구의 대상 장소로서 여기는 낮은 수준의 참여도에서부터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더 나아가 커뮤니티의 결속을 전제로 한 연구까지 그 참여의 정도에 따라 커뮤니티 연구를 분류했다. 커뮤니티의 결속을 전제로 한 연구들의 경우 각각의 분류되는 특징들과 사용의 방법들이 있지만 결국 연구과정 중에 커뮤니티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Gehlert and Coleman, 2010


아래는 CBPR 및 개념 적 유사성을 가진 연구 방법론들을 적용하여 만들어 워크프레임이다. (Tremblay,2017)

Marie-Claude Tremblay 외, 2017

이 모델은 사회운동 이론의 발전에 CBPR의 실천 과정을 접목하여 만든 프레임이다. 예상되다 시피 CBPR은 경험적, 실천적인 과정으로 이해되며 일각에서는 구체적 방법론이 아닌 연구를 대하는 이해관계자들의 태도에 국한해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정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의 적용을 위해 실행과 평가의 과정을 구조화 시키는 시도들도 이뤄지고 있다.


유승현(2009)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CBPR의 수행과정의 6단계 과정 모형을 소개하기도 했다. 6단계는 1) 지역사회와의 동화 2) 보건문제 파악 3) 보건문제 우선순위 선정 4) 우선순위 보건문제에 대한 해결전략 수립 5) 전략의 실행 6) 전환이다.


듣는세미나 2회 © 듣는연구소

사례 논의: 맨체스터 시의 고령친화 커뮤니티 연구(Researching Age-Friendly Communities)


발제에 이어서 하진이 가져온 사례를 함께보며 토론을 이어갔다. 사례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진행했던 '고령친화 커뮤니티 연구' 가이드북* 으로 지역사회 구성원 특히 연구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 그룹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연구과정을 진행한 사례였다.

* Buffel, T. (Ed) (2015) Researching Age-Friendly Communities. Stories from Older People as Co-Investigators. Manchester: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Library.


이 연구 가이드북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맨체스터시에서 고령친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2013년 9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수행한 연구다. 이 연구의 특징은 연구 전반에서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령자들이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뤄졌다는 점이다. 참여자들이 직접 '고령 친화(Age-friendly)'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고령 친화 지역사회의 여러가지 요소들에 대한 경험과 조건을 탐색했다.

연구참여자는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 연구 자문위원회: 학자, 정책입안자, 도시계획가, 사회복지사 등 지역사회 핵심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이들로, 전체적인 연구 설계에 대한 조언을 하고 연구결과물이 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했다.
- Age-steering group이라고 불리는 자문단: 연구 대상지에 살고 있는 고령자로서 지역사회 이해관계자 8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6주에 한번씩 만나서 연구 진행에 필요한 전반을 논의했는데, 연구가 지역사회 현장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역할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의 홍보, 연구참여자들 발굴, 연구 시사점에 대한 리뷰, 실천적 대안이나 파트너 연결, 연구 관련 이벤트 조직 등이다.  
- 공동연구자(co-researchers):연구 대상지에 살고있는 지역사회 고령자 18인을 접촉하여 선발했다. 이들은 직접 인터뷰를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했다.
- 연구팀: 전체 연구 운영은 멘체스터 대학 연구진과 유사 프로젝트 경험자 3인이 수행했다.

연구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연구 접근을 설계하기 위해 15명의 전문가 및 핵심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반구조화 인터뷰를 수행했다.
2) 연구 대상자 14그룹 123명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실시했다.
3) 공동연구자를 모집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3회 실시했다.
4) 공동연구자들이 '연구자들이 닿기 힘든' 68명을 찾아 직접 인터뷰했다.
5) 공동연구자 및 자문단과 여러 차례 회고 모임을 통해 핵심 시사점을 분석했다.
6) 커뮤니티 행사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이해관계자 및 정책입안자들과 논의했다.
7) 연구결과의 실행을 모니터링하며, 자문단이 직접 액션을 취하기 위해 펀딩에 지원했고, 공동연구자들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려 한다.
Researching Age-Friendly Communities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는 주민 워크숍을 연구에 반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듣는 세미나 참여자들은 이 사례를 접하고 나서 저마다 자신들이 했던 유사한 작업 사례를 떠올렸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계획을 수립할 때 주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워크숍이나 원탁토론을 하고 그 내용을 연구에 포함시키는 등의 시도는 국내에서 수년 전부터 이뤄지고 있다. 연구에 당사자와 이해관계자가 포함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과 맨체스터의 고령친화 커뮤니티 연구 사례는 비슷한듯 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무엇이 다를까?  

봄: 마을만들기 할 때 그런 거 많이 하잖아요. 1박 2일 동안 워크숍하면서 같이 나가서 마을 지도를 그려본다든지. 그런데 코-리서쳐로서 연구결과를 같이 만들어내는 게 한 끝 차이이긴 한데. 코-리서쳐라고 이름을 붙여드렸으면 훨씬 신나서 하셨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당사자들을 '공동연구자(co-researcher)'라는 지위를 부여하면서 실제 연구진과 동등한 위치에서 연구에 참여하게 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맨체스터 사례에사 공동연구자들은 연구진의 역할인 조사(인터뷰)와 조사결과에 대한 분석에 참여하였으며, 그를 위해 필요한 자질은 교육으로 제공했다.

공동연구자는 전문가 연구집단이 할 수 없는 고유의 장점을 발휘했다. 지역사회를 잘 아는 공동연구자들은 외부 연구진이 닿을 수 없는 조사대상에게 접촉이 가능했다. 그리고 공동연구자와 Age-steering group은 연구 결과가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작동할 수 있는 잠재적 실행주체가 되었다. 하진은 그 핵심에 공동연구자들이 연구에 대한 정보를 동등한 수준으로 얻도록 '지식 권력의 경계를 흐리는 장치'가 연구 설계에 반영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진: 연구자와 비 연구자의 차이를 가르는게 정보와 지식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권력을 얻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니까요. 이 연구 과정에서 보면 연구진이 계속해서 공동연구자 등 연구참여자들과 정보격차의 수준이나 경계를 흐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아는 걸 제공하고, 그 분들의 경험적 지식에 대한 우대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조건에서 공동연구자로 참여할까

이런 연구를 내가 하게 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때 드는 소소한 걱정거리도 있다.

우군: 우리나라에서 한다고 하면... 어떤 분들이 공동연구자로 오실까 생각해 봤을 때 그려지는 그림이 있어요. 연세 많고 발언권이 많으신 분이 오신다거나요. 공동연구자 안에서 나이 같은 것들로 인한 권력관계가 생기지 않을까란 상상도 되고요. 이게 우리나라에서 잘 운영되려면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진: 여기서도 연구원들 모집할 때 소통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케이: 이 연구에서 보면 유독 '프렌들리한 자세'가 강조되는 것 같아요. 수평적이고 친근한 관계에서 소통이 오가도록 한다고요.

공동연구자들에게 어떤 보상과 조건을 갖추어주는 것이 공정한가에 대한 고민도 든다. 이 사례에서는 보고서에 이들의 프로필을 명시하고, 트레이닝 수료증을 발급하며, 감사의 표시로 10파운드의 바우처를 지급했다. 공동연구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어느정도 하는 것이 공정한가? 연구비를 받는 연구팀과 공정하지 못한 조건이 되는 건 아닌가? 자원봉사급 열정페이가 되어도 괜찮은가? 라는 갈등이 생긴다.

하진: 그게 실제로 이 연구에서도 크리티컬한 이슈였다고 해요. 이 자료에서 재원의 ‘공평한’ 분배이되 ‘동등한’ 분배는 아니라고 하는데, 투여된 재원이 참여에 대한 보상은 아니고 성장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금전적 보상을 바라고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자칫하면 연구진이 공동연구자들의 능력과 노력을 연구에 '이용'하는 셈이 될 우려도 있지 않을까?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에서 공동연구자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그에 맞는 세심한 셋팅이 없이, 연구 설계만 복제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그 점에 대해서 맨체스터의 사례에서는 공동연구자들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에 참여한다는 감각으로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연구가 끝난 후에도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연구 결과의 실행을 위해 스스로 행동에 나서는 모습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번의 연구에서 끝나는 연구가 아니라 실행 동력까지 만드는 효과가 있다.

우군: 결국 공동연구자로 참여하는 것이 연구진에게 이용되는 게 아니게 되려면, '누구 좋으라고 이 연구를 하는가'에 대해서 공동연구자들이 '우리 좋으라고 한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참여하는 것 같아요. 연구에 한 번 참여해서 도구화가 되거나 자료제공자가 되어버리고 빠지는 게 아니라 연구나 이후 실천에 지속적으로 주체가 된다는 게 그 증거인데요, 이 연구에서 보면 연구가 끝난 후에 Age-steering group이 펀딩을 요청해서 뭔가를 스스로 해보려고 했던게 인상적이었어요.
봄: 지속가능성을 높히고 전환을 만들게 하는 것이 연구설계에 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 현실에서는 흔히 계약 관계로 일하니까 연구가 끝나고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팔로우업하는 것이 어렵죠.
하진: 연구자들이 긴 호흡으로 이런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돈만 있다고 해서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연구의 질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이 연구를 설계하고 운영했던 연구진 입장에서는 연구 과정이나 내용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듯 하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모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주체로서 '리서처'라기보다는, 연구 참여자들을 안내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며 결과를 만들어가도록 이끌어가는 '코디네이터'역할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희원: 코리서쳐를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자의 자아분열이 심했을 것 같아요.
케이: 연구 역량이 전혀 없는 분을 코리서쳐로 합류를 시켰고, 3번의 교육만 했죠. 만약에 그렇게 해서 제한적인 결과물이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의 목적이 커미티를 세우고, 과정은 그걸 향해 가는 정도라면 어느정도 감내하겠지만, 어쨌든 리서치가 목적이면 퀄리티 컨트롤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 같아요.
봄: 공동연구자 트레이닝을 세번 했는데 교육 내용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세번으로 기대하는 만큼 수준을 맞출 수 있도록 코리서쳐들에게 그런 역량이 충분히 있지 않았을까요? 연구 프로세스를 일단 시작해 놓고 나서도 끊임없이 연구진은 지금 '명확하게 가고 있구나'라고 보면서 공동연구자들을 촉진하고 이끌어줘야 하는데, 연구진이 그런 역량을 갖고 있었기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아요.

하진은 일종의 주민 참여형 연구였던 '마을 건강방 프로젝트'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퀄리티 컨트롤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연구자들이 연구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을 제거해 주는 것, 그리고 그 장벽을 발견하고 없애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된다고 했다.

* 마을 건강방 프로젝트: 서대문구 남가좌2동이라는 지역에 고령자를 위한 지역 건강거점공간을 마련하고 신체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 식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 공간에 모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공동체 활동. 운영 과정과 결과를 통해 지역 건강 거점 공간의 의미를 탐색하고, 고령자를 위한 맞춤형 공간에 대한 조건들을 보다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참고 :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일까?)

하진: 건강방 프로젝트 할 때 핸드폰 앱을 기반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었는데, 고령자가 스마트폰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장벽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었어요. 결론은 고령자에게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해결 못 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거였어요. 공간을 계속 지키는 매니저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전용 앱 사용법을 가르쳐드렸거든요. 이게 시간의 문제이지, 결국 이걸 못 하는 분은 거의 없었어요. 언제든 물어보면 편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편안한 관계 속에서 그걸 장벽으로 여겨서 못 하는 분은 없더라고요. 이렇게 연구 참여자에게 장벽을 없애주면 돼요. 하지만 이런 연구도 처음부터 정해진 타임 테이블대로 급하게 맞춰서 가야한다면 장벽을 없애줄 시간이 없거든요. 심리적, 물리적 장벽을 없애주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 수반되면 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의 퀄리티 컨트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이다. CBPR에 대해 소개하는 다수의 연구문헌들에서도 시간에 대한 강조가 언급된다. 연구참여자에게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혹은 상황을 보면서 필요한 조처를 적절하게 마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시간을 통해 CBPR의 핵심적인 자원인 연구자와 커뮤니티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협력적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연구 기간과 그 안에 해야 할 프로세스들이 정해진 채로 시작하게 되어있는 관급 프로젝트나 공모사업 구조에서 이러한 여유를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진: 이 사례(맨체스터사례)를 보면, 처음부터 연구 프로세스가 고정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모든 과정은 연구 참여자들과 논의하면서 진행했다하고.  예를 들어 FGI를 해 봤더니 거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을 파악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공동 연구자들로 하여금 인터뷰를 진행하게 하자고 했을 수도 있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커뮤니티 디자이너인 야마자키 료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복잡한 프로세스를 다이어그램화 하는 게 가능할까. 애초에 연구나 실행사업 진행할 때 모든 걸 프로세스화해서 정해놓는 게 어렵다, 애당초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고요. 공모사업 할 때는 미리 프로세스랑 예산을 다 짜놓고 시작해야 하는데, 현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요. 이런 연구를 공모 과정을 통해서 하는 게 가능할까 싶네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측을 억지로 해서 착수해야 하잖아요. 몇 번 쯤은 경로를 변경할 수 있는 과정이 허용된 연구면 좋겠어요.


듣는연구 세미나

듣는 연구 세미나, 어땠어요?

우군: 으.. 제대로 된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 해보고 싶어요!

케이: 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고 또 올 것 같아요.

봄: 수요일마다 오고 싶어요.

희원: 저에게는 힐링타임이었어요.


by 듣는연구소 하진,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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