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와 연구진의 첫회의에서 나누면 좋을
바야흐로 기획의 계절입니다. 사회변화를 위한 연구활동을 하는 듣는연구소에겐 이 1월부터 3월이 비수기입니다. 우리는 주로 공적 자금을 이용한 연구사업을 의뢰받기에, 우리의 클라이언트들이 아직 연구기획과 예산배정을 하지 않은 이 시기를 "손가락을 빤다"고 표현합니다. 설립 첫 두해 동안에는 이 기간을 무척 불안하게 보냈습니다. "우리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면서요.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세번째로 맞는 이 비수기에 '아예 제대로 쉬고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보내자고 했습니다. 공교롭게 코로나19가 덮쳐서 사회 전반이 함께 쉬어가는 느낌이지만요.
3월이 지나자 반갑게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몇 건의 일 제안이 들어옵니다. 어떤 의도나 쓸모로 이런저런 연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으면, 우리는 그들과 여러번 미팅을 하고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과정은 너무나도 중요해서, "이 때 논의를 더 잘 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연구 과정에서 무수히 하곤합니다. 연구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울고싶을 만큼 힘도 들고 원하는 퀄리티를 얻지 못해서 괴롭고, 반대로 연구설계가 제대로 되면 만족스러운 퀄리티를 얻을 뿐 아니라 연구 과정도 즐겁거든요.
과정도 결과도, 연구진과 클라이언트 모두에게도 만족스러운 그 접점을 찾기.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가요! 그것을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와의 첫 연구 미팅이 중요합니다. 왜 이 연구를 하고 싶은지, 해서 어디에 쓸 지가 명확해야 연구목적을 뚜렷하게 세우고, 쓸모있는 결과물의 형태와 내용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솔직하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밀당일 수도 있어요. 클라이언트는 주어진 예산을 가지고 하는 연구에서 가급적 많은 걸 알고 싶고, 연구진은 자신의 강점을 발휘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 뿐 아니라 과정도 소진없이 적당한 의욕을 발휘할 수 있는 즐거운 여정이 되길 바라거든요. 그러니 밀당 같기도, 접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연구 설계를 위한 초반 미팅입니다.
뭉뚱그려서 이런 걸 알고싶은데 연구가 가능한가요? 또는 이 연구를 통해 이것도 저것도 다 알고 싶어요.
우리는 연구 의뢰를 위한 첫 미팅에서 종종 '이 연구를 어떻게 쓸 지는 모르겠지만 이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듣기도, 혹은 정 반대로 '이 연구를 통해 이것도 알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다'는 욕구를 접하기도 합니다. 더러는 연구내용과 연구방법까지 이미 너무 많이 정해져서, 연구진이 선택할 여지가 없는 계획서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러 해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서, '의뢰자는 연구 기획을 하고 연구진은 그 기획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연구 설계를 한다'는 어느정도 역할분장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논의를 나누는 게 좋겠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초동 미팅에서 무엇을 가지고 논의하면 연구진이 연구설계를 하기 좋을지에 대해서 연구진이 먼저 제시하는 것도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질문이 미리 제공되면 클라이언트 기관 내에서도 여러 담당자 간 견해가 다르기도 하므로 적절한 질문을 먼저 제공함으로서 내부 논의를 정리해 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연구 의뢰를 위한 미팅을 하기 전에 클라이언트가 생각해보면 좋을 질문들>을 작성하고 활용해보았습니다.
듣는연구소는 좋은 연구를 위해 의뢰자와 연구진 사이의 충분하면서도 분명한 사전 논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의뢰자는 연구 기획을, 연구진은 연구 설계를 하게 되는데요, 연구 의뢰를 위한 사전미팅시 원활한 논의를 위해 미리 생각해 보면 좋을 질문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무엇을 연구하고 싶으신가요?
왜 연구를 하려하나요?
(연구의 쓸모) 연구물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하나요?
(연구 자원)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현황 - 예산, 연구대상자 등
(연구 기간) 연구물은 언제 완성되어야 하나요?
(예상 독자) 이 연구 결과물을 읽기 바라는 가장 중요한 예상 독자는 누구인가요?
(결과물의 상)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원하는 결과물의 형태나 분량은 어떠한가요?
연구에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 예: 이런 내용이나 방법이 꼭 포함되었으면 한다
연구를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실제로 올해 몇 건의 연구 의뢰에서 이 질문지를 활용해보았습니다. 미팅 전에 이 질문지를 전송하고 답변을 메일로 주고받은 후 만나기도 했고, 만남에서 이 질문들을 가지고 의뢰 내용을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어느정도 쓸모가 있는지는 몇 해 경험이 더 쌓여보아야 알겠지만, 혹시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하는 연구자들이 있다면, 또는 연구 의뢰를 할 때 무엇을 말해야 할 지가 고민인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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