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커뮤니티 연구를 마치며 2
듣는연구소는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이하 청년허브) 및 무중력지대 등 서울의 청년지원기관이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지원사업에 참여한 청년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이 청년들이 왜, 커뮤니티 하기를 선택하며 또 어떻게,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는 관련한 이슈들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하나씩 정리 해나가 보려 합니다.
듣는연구소의 연구에는 '헤매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구 프로젝트의 대상을 이해하고, 연구 질문을 구체화하며, 누구를 어떻게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를 구체화해나가는 시간입니다. 질적 연구에서 이러한 모든 내용이 초기부터 완벽하게 세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서 무엇을 전제하기보다는 연구 과정에서 밝혀지는 새로운 정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하고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어떤 사실들이 폐기되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 규모가 아주 커서 기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많이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연한 '흔들림의 시간', 필요한 '탐색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년 커뮤니티 연구에서도 이런 과정 속에서 연구과정 중에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보고서에는 실리지 않은 내용이 있습니다. 요즘 커뮤니티의 구성 맥락과 그에 따른 형태적 특징들을 규정해 본 것인데요. 이런 내용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서술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규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적절히 구조화되지 못하기도 하고, 파편적으로 나열되고 있다는 판단으로 최종 보고서에는 기술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마무리되고 나서는 분류의 위계, 구조 이런 부분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읽힐 수 있고 대중적인 방식의 서술로서 (듣는연구소가 추구하는 '읽히는 연구'의 방향에 맞춰..) 살려볼 것을 그랬나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당시 발견한 특징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인데요. 여러분도 공감 가는 특징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봐 보시죠.
Who?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모여요
청년들은 흔히 사회에 갓 진입한 사람으로, 혹은 이루려는 목표를 향해 가는 여정에 첫 발을 내디딘 사람이기에 경험적으로 경제적으로 적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조직 등의 위계를 경험하면서 모욕을 당하거나 억압당하는 일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은 이러한 상황, 형편을 공유하고 함께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함께 극복할 수도 있지만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모여 더 이상 인정받기 위한 경쟁이나 모욕적 상황이 없는 해방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보였습니다. 아래는 함께 모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나누어 본 공동체의 모습들입니다.
1. 마음이 통하는 동료 찾기 : 우정 커뮤니티
과거에는 같은 직장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동료라 부르기도 했지만 최근에 동료는 '우정'이라는 기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관계를 기반으로 함께 무언가를 이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동료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이 통하는 계기’를 통해 ‘되는 것(되어가는 것)’이라 여깁니다.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끼면 함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동료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렇지 않으면 함께 일은 같이 하더라도 동료는 아닌 사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2. 존중받고 싶은 욕구 : 취향 커뮤니티
취향은 요즘 커뮤니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일 것입니다. 분화된 관심사, 독특함의 추구 등으로 인해 차별화된 개인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취향'이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결국 취향은 '존중'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열려있는 것 같지만 닫힌, 다양성을 말하지만 여전히 획일화된 측면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독특한 취향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안전하게 드러내며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3. Sister-hood를 누리기 : 여성 커뮤니티
한국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다양한 공동체들 안에서 복제, 재생산되고 있어 보입니다. 2차적인 근대는 성역할의 해방을 가져왔다지만 현대 한국사회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해방의 여건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기존 조직이나 공동체 내에서 자신들의 길을 찾기보다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냄으로서 탈가부장적인 사회적 공간을 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4.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 : '공동'속의 개별 존재
함께 모여 각자의 할 일을 하는 모임들이 눈에 띕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모여서 일하고, 혼자서는 지키기 힘든 약속(다이어트, 글쓰기, 책 읽기 등)을 지키는지 체크해 주기도 합니다. 꼭 한 장소에 모일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의 장소에서 하는 활동을 온라인을 통해 공유해도 됩니다. 한 몸이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장 느슨한 연대 안에서 ‘함께’가 주는 장점을 취합니다.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가장 느슨한 연대도 혼자보다는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What? 사이드 프로젝트로 '나를 찾기'
표준화된 삶의 경로 (졸업-취업-결혼)를 따르지 않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에는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사이드프로젝트는 새로운 삶의 경로를 찾고, 경험하기 위한 탐색의 시간을 벌어줍니다. 한 번에 큰 선택을 하기 전에 징검다리처럼 건너며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작고 안전하게 경험하게 해 줍니다. 이러한 시간을 벌 자원이 부족한 청년들은 서로의 자원의 조각을 모아 함께 하며 이를 실현해 갑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결정해 나갑니다.
1. 내 삶의 지속성 높이기 : 라이프스타일 제안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가족, 계급 단위로 정해지던 삶의 방식을 어떤 가치와 방법으로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선택의 가능성은 열렸지만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죠. 청년들은 내가 선택한 라이프스타일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알리고 참여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가치 적인 접근이 많았지 개인적 수준에서 지속가능하기 위한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고 서로 권유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디. 비건, 심플라이프, 귀촌, 플라스틱 제로는 물론 페미니즘적인 삶의 방식을 라이프스타일로 소개하는 활동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2. 사회문제에 대한 공감과 기여 : 사회혁신적 활동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시장이 주도하면서 사회적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스펙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각종 공모전, 사회참여 활동이 이와 같은 맥락으로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단순히 스펙만을 위해 이런 활동에 뛰어들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은 이해관계에 자유롭고, 소외된 존재에 편견 없이 공감하면서 문제 해결의 능력까지도 겸비했을 가능성이 다른 세대보다 높습니다.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혹은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는 진취적 태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참여의 방식에 대한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기여의 대상은 동물이나 생태 등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고, 참여의 방식은 IT나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3. 관심을 모아 기회를 창출하기 : Fan을 만들기
현대 사회에서 관심은 정서적 지지, 인적 네트워크의 확보 등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 지속가능성의 자원이기도 하고 동시에 실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도 합니다. 때문에 어떤 활동은 처음부터 공개를 위해 기획되고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떻게 더 잘 공개(콘텐츠 화) 할 것인가가 활동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미디어와 플랫폼의 발달이 이러한 활동에의 쉬운 참여를 이끌고 있습니다.
HOW?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않아요
함께 모여 이루고 싶은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까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커뮤니티에서의 경험이 모임 밖에서 경험한 사회조직의 위계적 구조, 불합리한 운영 등을 복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커뮤니티 활동이 아니고, 언제든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경험이 반복되는 모임은 금방 도태됩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사회에서 경험한 수직적 위계구조나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성과 중심의 활동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래와 같은 부분에서 구체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1.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속도로 나아가기
자본의 속도에 맞춰 결과를 내는 것, 위계적인 관계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쌓인 청년들이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속도에 맞춘 삶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어 전문적 분야를 탐구하더라도 모임 내에 전문가나 선배 등의 ‘나를 이끌어줄’ 존재를 두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관행적 학습경로나 방식에 포섭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속도에 맞춰 모이기로 결정하고 필요한 전문성은 외부로부터 원포인트 레슨이나 전문성을 지닌 다른 청년 집단 등과 네트워킹을 통해 해결합니다.
2. 새로운 장을 만들기 위해 함께 설계하기
서로 부정적 경험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하지 않기,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거부권 가지기, 대표의 역할을 돌아가며 맡기 등 그라운드 룰을 정하여 지키는 모임이 늘어납니다. 이러한 규칙들이 때로 허물없는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충돌하기도 하지만 보다 '안전'하게 만나는 것을 위해 약속 준수에 커뮤니티의 많은 에너지를 쏟는 모임이 늘고 있습니다.
3. 부담을 주면 안 되지만 놓치지 않을 정도로 노력하기
커뮤니티를 하겠다는 선택은 내 자원(시간, 노력 등)을 그곳에 쓰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여러 선택을 통해 구성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일정과 활동 들이 이 결정과 경합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놓치면 영영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지만 동시에 너무 애쓰다 부담이 되는 것도 커뮤니티를 멀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많은 모임들이 이 둘 사이의 거리감을 재며 지속될 수 있는 모임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공감 가는 내용들이 있으신가요? 각각의 특징은 한 커뮤니티 안에서 몇 가지 특징이 한 번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겹쳐져서 드러나는 특징의 패턴들을 보다 알기 쉽게 서술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러한 특징들이 보고서에 그대로 담기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헤매었던 시간이 결코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수백 개의 커뮤니티들의 활동을 검토하며 대략의 패턴을 분류하는 밑그림이 되어서 이후의 연구 진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서울의 청년커뮤니티 작동에 관한 탐색적 연구'다운로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