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듣는연구소 Nov 07. 2019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하여

청년 커뮤니티 연구를 마치며

듣는연구소는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이하 청년허브) 및 무중력지대 등 서울의 청년지원기관이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지원사업에 참여한 청년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이 청년들이 왜, 커뮤니티 하기를 선택하며 또 어떻게,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는 관련한 이슈들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하나씩 정리 해나가 보려 합니다. 


청년커뮤니티가 뭐예요?


처음 연구를 진행할 때 ‘청년커뮤니티라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비슷한 질문으로 ‘이런 모임은 커뮤니티인가요?’, ‘이건 커뮤니티가 아닌 것 같아요’이런 이야기도 듣고요. 말씀드리자면 저도 답은 잘 모릅니다. 이번 연구의 목적이 ‘커뮤니티 감별사’로서 커뮤니티의 경계를 가르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공동체 이론의 관심은 ‘안정적이고 구조화된 형태로서’ 공동체란 무어냐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화’ 그러니까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로 느끼고, 공동체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연구도 무엇이 청년들의 공동체 되기를 추동하는지, 유지하게 하는지, 언제 공동체가 되었다 느끼는지와 같은 과정과 맥락을 파악하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구상은 대략 이런 그림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청년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는 작용들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도, 커뮤니티도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독립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는 개인의 생존이 우선시 되는 위험사회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제도가 개인의 삶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초위험사회라 불립니다.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특별히 청년만 생존 우선의 삶을 살아간다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현대사회의 커뮤니티는 근대의 개인화된 삶의 맥락을 반영한 ‘탈-전통 공동체’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 공동체의 영향력이 큰 사회이고 우리가 흔히 떠올리고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도 전통 공동체의 모습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더불어 청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 자원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 성인기로의 이행이 지체되는 현상들, 그 과정에서 드는 고민과 불안 또 욕구들이 이해될 때 보다 왜곡되지 않는 방식의 청년커뮤니티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공동체에 관해, 삶은 오른쪽처럼 살면서 생각은 왼쪽이 지배하고 있는..



청년들은 왜 커뮤니티를 형성할까

혼자가 더 편한 시대라고 합니다. 혼밥, 혼술, 혼자 놀기 까지. 때로는 이들을 지원하는 청년지원기관 매니저들도 자신들도 혼자가 편한데 커뮤니티 지원사업에 몰리는 청년들을 보면 ‘왜 커뮤니티를 하시나요?’ 묻고 싶어 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4인의 청년을 만나 개인의 삶의 맥락과 커뮤니티가 만나는 접점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삶 경험

 “생각해 보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더라고요 (중략) 그게 (전공을)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시로 들어갔는데 정시로 들어가면 옆에 입결 점수 뜨잖아요. 그래서 학과를 가리고 제 점수에 맞는 데 들어갔고, 저는 합격을 하고서 제가 합격한 곳을 알게 되었어요.” (청년 A)


선택한 삶, 그러나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

“저는 여기가 2 번째 직장이다. 첫 번째 다니던 곳은 되게 권위적이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했어요. 그러니까 새로운 것을 아예 못하게 했다. 저는 새로 (학교에서) 배우고 와서 해보고 싶은 게 있었고, 한창 신났을 때인데 뭘 그런 걸 하냐 약간 이런 게 있었고. 이거 저거 못 하는 게 있었고.” (청년 B)


선택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우리 정체성이 뭘까 우린 가난해, 진짜 다들 가난하게 채식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빈민으로서 어떻게 채식을 실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다. 저희는 유통기한 임박한 위트 믹스 같은 거 박스째로 사서 그런 식으로 채식을 해서 도시에서 채식 실천하는 것 가난하면 너무 힘들다는 공감을 했고. (중략) 근데 혼자 하는 것은 나를 깎아 먹는 일이고 혼자 하면 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사실 못하는 것보다 같이 있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청년 D) 


지면 관계상.. 모든 내용을 다 실을 수는 없지만 청소년기 혹은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에 ‘선택권 자체가 제한되어 있거나 선택은 가능하지만 스스로 삶을 구성해 낼 힘은 아직 주어지지 않은’ 삶을 마주합니다. 이후 삶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이러한 배경들이 해소되는가 싶지만 사회는 기만적 이게도 한 사회의 구성원인 것처럼 의무는 주지만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인정받고 진짜 한 사람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주어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청년들은 커뮤니티를 선택합니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해내는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내가 선택한 삶의 경로, 라이프스타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가지고 있는 서로의 자원을 나누는 협력의 방식으로 '커뮤니티 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앞서 보았듯 현대의 커뮤니티가 커뮤니티 자체의 목적을 위해 뭉쳐서 그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헌신하는 과거의 커뮤니티와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의 커뮤니티가 개인 삶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서로가 서로의 자원과 능력을 활용하는 ‘개인 중심으로의 커뮤니티로 재편되고 있음’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 그 불가능성에 대해서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의 커뮤니티의 '허약함'에 대해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서로의 필요를 위해, 만났다가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를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문제라고 이름 붙여봅시다. 그런데 과연   ‘커뮤니티가 지속가능’하다는 말은 언제 어떤 상황에 쓸 수 있을까요? 몇 년, 몇십 년 커뮤니티가 이어진다면 지속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몇 년을 이어가더라도 항상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겪고 서로 끌려가듯 이어나가는 커뮤니티와 몇 달을 만나더라도 함께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고 좋은 경험을 나누고 합의한 바에 따라 쿨하게 헤어지는 관계는 어떤가요?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한 연구 참가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같이 있으려고 돈 버는 느낌(이다.) 안 그러면 버티기 힘들어지는 친구들이 돈 벌러 딴 데로 가버려야 하니까”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생존, 더 많은 기회를 위해 항시 이동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공간을 기반으로 한 마을활동이나 지역 활동이 쉽지 않습니다. 고정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위해 생계나 성취, 성장을 위한 다른 많은 가능성을 놓칠 수 있음을 감내해야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마을’이라는 공간이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로를 희생하며 생계와 돌봄의 분업화를 이뤄낸 산업사회의 핵가족이라는 단위가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현재도 많은 마을과 공동체들이 이러한 분업화가 가능한 단위들의 조합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몸을 반으로 갈라내어 공동체 활동을 하는 자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아로 나눠 내지 않는 이상 참여는 어렵습니다. 몇몇이 연합하여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태어나보니 땅도 집도 누군가가 다 가지고 있어서 물려받지 않는 이상은 처음 자원을 획득한 사람들 이상의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최근에 다른 연구의 인터뷰에서 청년이 말한 표현) 사회에서 수 명이 모인다 해도 디딜 수 있는 기반 하나 형성하기 쉽지 않습니다. 


커뮤니티가 지속 가능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정말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에 너무 공감이 되어 버렸나 봅니다.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은 각 청년의 지속 가능한 삶이 어느 정도는 가능한 상황에서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인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이라는 목표가 커뮤니티 하나, 하나의 단위에 부여되는 과업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내가 지속적으로 커뮤니티를 경험하며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커뮤니티를 들어왔다 나갔다, 만들었다가 없어지고 이런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삶. 그런 삶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는 개인의 커뮤니티 활동이 지속 가능한 사회다’라는 개인 삶의 맥락에서의 커뮤니티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개인의 커뮤니티 경험이 지속 가능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라는 상상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커뮤니티 기반 참여연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