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 - 4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정책이 할 일이라는 대화모임(이하 '소개팅') 후기 네번째 글입니다. '소개팅'은 지역 사는 청년들, 그리고 청년의 지역살이를 지원하려는 사람들 양 쪽의 직거래 대화의 장이 필요해 열렸습니다.
4회에 걸친 그날의 이야기 기록 마지막은 지역 청년들은 왜 그리고 어떤 네트워킹을 원하는지, 그리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과 당사자의 네트워킹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번 소개팅 경험을 토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지난 이야기
모두가 교류를 필요로 하지만 어떻게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플랫폼 510)
지역에 사는 청년들은 서로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멀리서 열리는 모임에 참여한 것이겠지요. 지역 청년들의 캠프나 대화모임에 참여해보면, 지역 사는 청년들이 얼마나 동료에 고팠는지를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지역에 사는 청년들 간의 네트워킹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외롭고 동지를 찾고 싶은 당사자들끼리의 모임은 지역 사는 청년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역 사는 청년들이 원하는 네트워크는 누구와, 어떻게 맺는 걸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러 갈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마음 맞는 청년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도 있고, 다른 지역에 사는 청년들과 교류하고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공무원과도 얘길 나누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하나씩 짚어보죠.
서울에서 계속 생활하다 지역에 내려가서 보니 지역에는 기존에 맺어진 공고한 세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4H연합회라든지요. 하지만 나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역에서 농사짓고 살려면 필수로 거길 가입해야 하는 분위기예요. 그런 네트워크보다는, 편하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 나와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요. 그게 지역에서 잘 사는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은데 잘 안 돼요. (귀촌 청년)
시골에서 잘 살려면 도시에서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이 모임에서 관계맺음의 욕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관계맺음이 아니라, 지역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필수 조건 중 하나로 마음 맞는 사람과 의지하며 외롭지 않게 지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한편으론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의무감이 들거나 사생활도 없이 가까이 지낸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의 범위는 도시보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가까운 관계가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느슨한 공동체' 내지는 '느슨한 관계망'을 맺고싶다는 욕구도 있었습니다.
연결되고 싶지만 너무 가까워서 답답한 것은 싫어요. 그래서 느슨함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한편 너무 느슨하다보면 흐지부지해지기 쉽고. 여러분은 느슨함과 답답함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하나요? (귀촌 청년)
한편으론 다른 지역 청년들과도 네트워크를 맺고싶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타 지역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이유는 외롭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청년들이 지역에 산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고립되지 않을까', '정보와 트랜드에서 소외되는 건 아닐까'라고 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지역에 있더라도 온라인으로 외부와 교류할 수 있으니 그런 문제는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깊이있게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과 만남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지역 간 청년들 교류의 필요성은 청년 당사자 뿐 아니라 공공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 청년들은 소외감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지역 청년활동가들 안에서 서로 연결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보려고 해요. 이걸 어떻게 연결해서 누구랑 연결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예요. (지자체 연구원)
서울시에선 중소도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요. 그래서 지방에 어떤 정책들이 있는지 컨택할 수 있는지 플랫폼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청년들이 이야기하는데 이게 그냥 단순하게 온라인 플랫폼만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닌것 같은데, 네트워킹을 어떤 식으로 지원해야 쉽게 할 수 있을까요? (서울시 공무원)
이번 대화를 통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청년들도, 행정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에서 청년들의 대화 모임이 최근 생기고 있지요. 그런 자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개팅 자리를 만들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무언가(방식, 모이는 사람들, 대화내용 등에서) 기존과 다른 네트워킹에 목말랐기 때문일 듯합니다.
그간 이뤄진 청년 간 대화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결속을 다지는 데 좋지만,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없어서 당사자들의 고충토로나 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기반 없이 시작하려는 청년들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려고 해요. 최근 농대를 다니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농업공무원, 부모님 농사 물려받는 사람 등 10명이 모이는 모임을 했는데, 처음에는 정책이나 지원제도를 고민하려고 모였는데, 다들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 성토대회처럼 되더라고요. (팜프라)
한편, 그간 행정과 청년의 대화는 주로 자문회의나 공청회, 정해진 발제자가 있는 포럼을 하는 등 수직적인 대화가 많았습니다. 또, 같은 대상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과 부처 사이에서도 칸막이에 가려서 정책 입안자들이 평소 교류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형식적이거나 행정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였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자유롭고 다채롭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비슷한 형식과 내용이 이곳 저곳에서 열리고, 행정과 연이 닿은 사람들이 늘 참여하게 되니 '동원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렸어요.
이번 '소개팅'은 청년과 공무원,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수평적이고 열린 대화를 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청년도, 공무원도 같은 주제를 놓고 평소 궁금하거나 하고싶었던 얘기를 나눠보려는 거지요.
'소개팅'에 청년들이 온 것은 다른 지역 청년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정책에 대한 욕구를 ‘듣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행정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평소에 행정과의 소통이나 협력에 대해서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의 대화 기록을 보면 조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 개인의 힘, 민간의 역량 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행정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또한 정책과 당사자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이해관계자가 함께 얘기했기 때문에 시각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고, 새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자체에서는 수도권으로 청년을 빼앗기지 않고자 하고, 더 많은 도시 청년을 유입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봤지만, 청년을 어느 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으로 접근하자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각 지자체에서 벌어지는 정책을 봤을 때 서울에 있는 청년, 혹은 도시에 있는 청년을 각 시골로 뺏아가는 느낌이 사실은 한편 있거든요. 각 지자체에서 청년을 두고 서로서로 데려가려는 싸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한편으론 계속 들었어요. 청년이 물건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히려 역발상을 통해서 청년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는 게 최종 목표라면 정착하기까지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게 필요한 게 아닌가, 거점을 만들고 거점을 청년이 취사선택해서 돌아다니면서 보다가 원하는 데서 정착할 수 있게 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금 지역에서 하는 정책들은 전혀 그런 게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다른 지역 청년을 데려올까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지금 그런 시점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서울 소재 기관 직원)
또, 민간 기업과 단체에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청년의 지역살이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공공과의 협력도 요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농사펀드에서 지금 일 하는 사람은 세 명인데, 에디터 수가 적다 보니까 새로 찾아내는 농부 수가 일년에 백명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전국 소농 숫자 대비 0.01%밖에 안 되요. 우리 입장에서는 에디팅을 할 사람이 필요하고, 지역에서는 저희 같은 역할이 필요한 거죠. 이런 활동을 안정적으로 해 낼 수 있고, 생활이 보장이 되면 일자리화 될 수 있죠. 지역 청년의 활동을 장려하는 비영리 모델을 공공영역에서 담당하는 거고, 우리는 이 친구들의 지역의 일자리 복지를 조금 더 챙기는 거죠. 우리랑 같이 하려는 지자체가 있을까 그런 게 궁금합니다. 이렇게 꼭 공적인 영역에서 청년의 지역에서의 정착과 일의 문제를 공공영역에서 풀 뿐 아니라 기업의 방식으로도 풀 수 있지 않을까가 제가 속한 조직이 고민하는 겁니다. (농사펀드)
그럼 정책 당사자와 정책 입안자, 그리고 이해관계자가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까요?
'소개팅'의 경험으로는 수평적인 대화방식과 열린 참여자도 중요하지만, 정책 당사자인 청년들이 정책 입안자들, 이해관계자들이 수시로 의견과 제안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소개팅' 3시간은 너무 짧아서 한 번 만남으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생산되고 발전되기는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저는 오늘 여기 와보고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청년들이 많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되어 놀랐습니다. 귀촌하는 청년들 입장에서 보면 막상 들어와 살 때 집이 이 정도는 되어야 살만 하지 않겠냐 하는 기준이 있으실 거고요. 그 중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찾으려 하면 생각보다 되게 많을 것 같아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공무원분들을 찾아와서 어필을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현상만 보고 있을 뿐이라서 저 같은 연구자라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여기 와서 새로운 걸 많이 배웠습니다. 와서 많이 어필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
행정이 주도해서 뭔가를 먼저 해본 적이 없어요. 어디가 사례가 잘 되었다 하면 그걸 따라는 하는데 모험은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행정이 모험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행정은 의외의 것을 시도하지 않아요. ‘의외’와 행정이 서로 만나는 구조를 만들면 좋겠어요. (귀촌 청년)
이날 짧은 세시간 동안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턱없이 적었고, 결론을 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명함 교류를 독려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의미있는 인적, 자원의 교류가 이뤄졌는지 미지수고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당사자 – 정책 입안자 – 이해관계자가 정기적으로, 격식 없이 만나 다양한 현안을 이야기하다보면 당사자의 필요와 행정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연결되어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최근 십여년동안 행정에서 그렇게 강조했던 민관협치(거버넌스)가 이것 아닌가요?
특히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장의 시간은 연속되어있지만, 정책의 시간은 조각조각 흘러가거든요. 이 분야에 관심있는 기관장이 있느냐, 해당 예산이 책정되었느냐, 의지있는 담당 공무원이 해당 보직에 있느냐, 정책이 셋팅한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냐 등등. 아무리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비하인드를 말하자면, 소개팅에 공무원을 초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지역살이 관련 정책을 만드는 부처와 기관, 지자체 공무원에게 이메일과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중에는 저에게 청년 귀촌이나 지역살이를 위한 정책을 자문하거나 강의를 요청했던 분들도 있었지만 이번 소개팅 초대 연락에는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았어요.
이유를 추측하건대 행사가 열린 시기가 국정감사 등으로 공무원들에게 바쁜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사이 담당자의 업무가 바뀌었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어떤 공무원은 “포스터에 행사 목적과 참여자가 불확실해서" 라거나, "우리 사업과 직접연관이 없기 때문에" 공무상 참여할 명분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점은 공무원들은 자기 관심사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조직에서 자신에게 부여받은 일이라면 모를까, 그에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부처 간, 그리고 정책 당사자나 이해관계자와 공무원 간 칸막이를 넘어선 가볍고 자유로운 모임을 만들고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수평적이고 열려있으며 지속적으로 만나는 민관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떠오릅니다. 귀농귀촌인이 많은 홍성군에는 마을의 다양한 단체와 공무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홍성통’이란 모임이 있습니다.
홍성통 모임은 지역 백여 개 민간단체나 소모임들의 대표와, 농업기술센터나 군 행정 실무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지역의 현안을 논의하고 학습합니다. 각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평소에 자기 단체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홍성통에서 나누는데요, 이 곳에서 공무원들은 정책 사업이 있을 때 필요한 곳을 확인하고 매칭 하기도 하며, 민간에서 필요한 지원을 그때그때 파악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홍성통에는 위원장도 없고, 공식적으로 부여받은 권한이나 예산 등이 없는데도 매달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때로는 많이 오기도, 적게 오기도 하고 참관인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격식이 없는데도 잘 운영되는 이유는 이곳에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필요가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참여자들은 홍성통에 오면 지역 내 다양한 교육과 행사들을 쉽게 홍보할 수 있고, 협력할 방안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삼선재단, 2017, 60-61p).
청년의 지역살이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 청년들과, 이들을 지원하려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연구자와 민간 기관 및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이 만나서 직거래 이야기 장으로서 '소개팅'을 만들어봤습니다. 여기서 자원도 나누고, 수평적으로 서로 고민도 나눌 수 있도록요.
그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봅니다.
서로가 만나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더 많은 공무원들의 참여를 위해서는 공적인(윗선에서 인정해주는) 네트워크 참여 기제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이라서 더 길고 지속적인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로 명함을 나누게 했지만,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 원하는 자원을 얻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양한 입장이 섞여서 그간 대화의 장에서 나오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도 있었다.
by 듣는연구소 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