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 - 1
시골 살이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청년 귀촌'이란 말이 낯설게 들리는 사람에게라면 놀라운 일이겠지만, 최근 여느 세대보다 2030세대의 귀촌이 증가하고 있고 정부와 지자체도 이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만원 지하철에 끼어서 출퇴근하는 삶을 그만두고 싶어."
제 주변에도 사람 많고 물가 비싼 도시에서 벗어나서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로 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저도 같은 마음으로 몇년 전부터 귀촌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고령화로 지방이 소멸될 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에겐 반가운 일이었나봅니다. 젊은 인구를 지방에 유치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인구 늘리기'에 시선이 가 있어서인지, 많은 정책이 당사자의 필요에 잘 맞아떨어지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연고 없이 지역에 가서 살아보려는 청년들에겐 필요한 지원이 많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집도 땅도 가족도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살게 되면, 더구나 집과 일터 중심인 도시의 삶과는 너무 다른 농촌에서 낯선 사람이 자리를 잡고 살기엔 얼마나 필요한 것이 많을까요? 혹자는 이를 두고 "차라리 이민을 가는 것이 쉬울 지도 모른다."고도 합니다.
청년 인구를 늘려보겠다며 만든 정책들이 당사자들의 필요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는 청년들이 많지만 농업 창업 자금이나 농지 대출을 해 주는 경우가 많고요. 최근에는 일자리 정책도 많은데, 이미 도시에서 9 to 6 일자리에 진저리가 나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인턴십이나 단기 계약직 같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면 가당키나 할까요?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여느 정책이 그렇듯이 당사자의 니즈가 수시로 전해져서 정책이 만들어지기보다는, 많은 정책이 공무원과 연구자의 책상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골에 가려는 젊은이들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대차이도 있고요,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도 차이가 있겠죠. 그러니 당사자들이 뭘 원하는지를 잘 알려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가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정책이 할 일’(이하 ‘소개팅’)입니다. 본인이 귀촌하고 싶어서 귀촌에 대한 연구와 활동을 해왔던 듣는연구소 우군과 도시농사를 지으며 언젠가 미니피그를 키우고 싶은 헬로파머 아롬은 그동안 지역 사는 청년들과 청년의 지역살이를 지원하려는 사람들 양쪽을 만나면서 둘 사이의 ‘직거래 대화의 장’이 없어 답답한 꼴을 참지 못하다가 ‘소개팅’을 열었습니다. 마침 서울에서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2018’(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영역의 사람들이 형식과 내용에 구애를 받지 않고 열린 N개의 대화의 장)이 열리는 곳에서 자리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소개팅’ 참가자 모집 글을 올린 지 3일 만에 예상 정원이 모두 차버렸습니다. 황급히 참가신청을 닫았는데도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랐지요. 이름 붙인대로, 정말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이 맞았나 봅니다.
한편으로 소개팅 주선자인 우리는 청년의 지역살이 관련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을 섭외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동안 지역 사는 청년들을 소개해달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던 곳이 많았던 터라 쉬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들을 소개팅으로 초대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 연재에 자세히 적겠습니다.
2018년 11월 2일, 잘 지은 이름 덕에 성황리에 열린 소개팅에는 50여명의 지역 청년, 공무원 및 이해관계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습니다.
제주에서 왔어요. 남해, 순천, 영암, 순창, 진주, 완주, 산청, 진주, 남원, 안동, 홍성, 천안 … 서울에서 왔어요.
말 그대로 전국 각지에서 세 시간의 대화를 위해 왕복 한나절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온 거지요.
세 시간의 대화를 위해 시간을 들여 먼 걸음을 한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날의 기록을 남겨야한다는 마음이 숙제처럼 남았습니다. ‘소개팅’이 끝난 지 세 달이나 지났지만 묵혀두었던 숙제를 하듯이 그 날의 대화를 요약해서 4회로 연재해보겠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으로 친구들과 떼촌한 청년들, 농사를 짓지 않지만 시골에서 귀촌해 살고 있는 청년들, 이젠 정책에서 부르는 청년의 나이를 넘어섰기에 청년 이후의 삶을 고민할 동료를 찾는 귀촌자, 지역에서 청년의 정착을 돕는 단체 활동가들, 직접 귀농과 창업을 하면서 실패담을 들려주고싶어서 온 사람 등 다양했습니다. 그 중 몇 명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2년 동안 농업 세계일주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 청년들이 어떻게 농촌에서의 삶을 구상하고 이어가는지를 봤어요. 한국에서 귀농을 생각하는 청년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인프라를 만들고 싶어서 팜프라라는 청년마을을 기획하고 있어요. 주거와 농사, 비즈니스 모델을 해보려고 여러가지 사업들을 벌이고 있어요.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땅이 없어서 기반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있어요.
지역살이 관심 있는 10명과 올해 2월에 남해로 무작정 귀촌했어요. 돈도 기반도 일도 없는 상황이예요. 친구들과 같이 식당, 창작활동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어요. 다른 지역은 어떻게 하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려고 왔어요.
순천에서 생태문화시장 장터, 새내기농부학교, 생태텃밭을 운영해요. 순천은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있다는 점에서 지역에 가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완충지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최근 콩 농사도 망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밀려서 농사가 어려워요. 이렇게 뭘 해보려고 할 때 지역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갈 수 있을까 고민이 커요. 최근에는 마을 공유지가 주민협의체에 위탁되었을 때 청년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거든요.
무주에서 열 명의 청년들과 청년일자리, 공동체 활성화 관련된 프로젝트 팀을 하고 있어요. 좋은 사례라고들 하는데, 그 속 내용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왔어요.‘과소화 대응인력사업’이라는 전북도의 정책사업인데 10명의 청년을 시골에서 공동체로 살도록 하면서 과소화에 대응할 일들을 벌이는 거예요. 멤버들은 6명이 도시에서 오고 4명이 현지 청년으로 구성됐어요. 모인 사람들이 마을에서 활동할 내용을 기획하고, 그 안을 1년 동안 실행하는데, 맘카페랑 산촌캠핑을 하고 있어요. 사업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예요. 인건비 지원이 안 되면 지역에서 마을 활동가로서 혼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 찾아야 하는데,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이런 고민을 해결하지 않으면 청년은 일시적 유입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청년을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연구소, 귀농귀촌지원센터 뿐 아니라 예상 외로 서울시와 서울의 중간지원조직 실무자들도 참여했습니다. 문화인류학자와 사회학자 등 연구자들도 많았고요. 플랫폼510, 완주의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 지리산 이음 등 서울이나 지역에서 청년의 도농교류나 지역살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민간 단체와 협동조합에서 온 참여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관심사로 이곳에 왔는지 몇 곳의 소개를 옮겨봅니다.
산림청 산하 연구기관에서 일합니다. 청년의 산촌 이주를 위한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어요. 산림청도 산촌 소멸로 고민하고 있거든요. 산촌에 청년들이 오는데 무작정 청년을 모을 수 없으니까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지가 고민이예요.
경북도 공무원들입니다. 청년들이 실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싶어서 왔어요. 경북도에서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라는 것을 하고 있고, 내년부터 ‘이웃사촌 시범마을’이란 걸 할 거예요. 도시청년시골파견제는 도시 청년을 경북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1인당 연간 천만원의 정착 활동비를 지급해요.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은 청년분들이 지역에 살기 어려운 요건으로 꼽히는 낙후된 인프라 문제가 없도록 의성에 인프라 잘 된 마을을 만들기로 했어요. 거기서 사업할 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팜 600평 규모 20개동을 임대해 드리고요. 예술할 분들,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열려있습니다.
홍성군 귀농귀촌센터에서 왔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안내하고 청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홍성은 청년 관련 정책들을 관리하는 부서가 다양하다. 그리고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지역 정착 사례도 많고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청년농 인큐베이터 사업비를 중앙정부에서 확보해서 진행 중입니다. 내년에 이 사업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서울시청에서 일합니다. 지역에서 교류하고 활동하는 일을 지원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들을 지원할 수 있을지 알고싶어서 왔어요.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왔어요. 저희는 올해 홍성으로 서울 청년들이 가서 지내볼 수 있는 '이주 농부'라는 프로그램 하고 있습니다. 2주 동안 지내면서 교육농장에서 농사일을 배우고, 마을 행사나 세미나에 참여하게 하는 건데요, 지역에 가서 안전한 곳에서 지역살이을 탐색할 기회를 만드는 거죠.
농부의 농사계획에 소비자가 투자하게끔 연결하는 기업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서 지역 청년들과 공공에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 위해 소개팅을 찾았습니다.
농사펀드는 농부가 농사 계획을 올리면 소비자가 계획을 보고 투자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크라우드 펀딩입니다. 농부가 빚을 내지 않고, 판매 걱정 없이 농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미션이예요. 저희 에디터들이 실제 농부를 취재하고 그 이야기를 도시가 이해할 수 있는 컨텐츠로 바꿔 올려요. 그러면 소비자가 에디터가 올린 컨텐츠를 보고 농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시스템이지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에디터 3명이 발굴할 수 있는 농부님들은 1년에 백 여 곳 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지역에 사는 청년들 중에 에디터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oo에디터’인데요. 예를 들어 자신의 지역에서 자신의 상황에 맞게 기준과 가이드만 지켜서 자신의 방법으로 활동하면 월 30~50만원 정도 에디터에게 수익이 발생하는 형태를 해 보려고 해요. 이런 방식은 지역 청년들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일자리를 만드는 접근이라고 생각이 돼요. 그래서 재원은 지역에 청년 일자리를 만들려는 공공자원을 활용할 수 없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할지 얘기 나누러 왔습니다.
이들은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요? 참여자들은 나누고 싶은 이야기 주제를 사전신청과 현장에서 모아서 그룹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래 다섯가지 주제로 나눈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서 자세히 적겠습니다.
1. 농촌 청년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나
2. 기반: 주거와 토지 등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3. 농업: 농사짓는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4. 일: 어떻게 먹고 사나요
5. 네트워크: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고 함께 지내나요
다음 글:
2화 - 귀촌 청년에게 기본소득과 기반을
3화 - 시골로 가면 어떻게 먹고 사나요
4화 - 네트워킹, 말이 쉽지 도대체 어떻게
by 듣는연구소 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