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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Jan 24. 2019

건강 '거점공간'이어야 하는 진짜 이유. '관계의 힘'

건강히 나이들 수 있는 마을의 비밀 #5

할머니들을 위한 독서모임 '은빛날개'


가재울 마을건강방의 운영주체 중 하나인 하.나.의. 공동체 주민 중 한 명이 동네를 위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관심을 살려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은데 함께할 참여 대상을 아이들로 할지 할머니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조금 염치없지만 아이들보다는 마을 건강방에 오신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아이들을 기르는 엄마인지라 아이들이 좀 더 편한 대상이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는 이런 모임을 해본 적이 없어 망설이기는 했지만 어렵게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동네 할머니들을 위한 독서모임인 '은빛날개'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함께 모임을 진행해 줄 30대 여성 둘이 더 모였다. 둘 다 교사이지만 육아로 인해 일을 쉬고 있는 중이었다. 도와줄 사람보다 참여자로 함께 할 할머니들을 모으는 것이 조금 더 힘들었다. 반드시 가재울 마을건강방 이용자일 필요 없이 '남가좌동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여성'으로 참가자를 모았고 마을건강방 참여자 분들이 주변 친구와 함께 와 첫 모임의 시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모임 때 '나는 이 사람하고는 모임 못해'하며 안 오시겠다는 분이 발생했다. 마을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에서 왕왕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했다. 기존의 관계가 있는데 억지로 함께 하게 하거나 새로운 관계로 기존 관계의 기억을 덮으려 해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총 10번의 은빛날개 모임이 매주 열렸다. 처음 기대대로 항상 고정된 멤버가 오기보다는 '나도 한 번 가봐도 되나'하며 새로운 멤버가 참여하곤 했다. 


관계의 힘이 작용하는 공동체적 공간


“대부분 얼굴이 익잖아요. 다들 안면은 있는데 서로 인사를 안 했을 뿐이에요. 알지를 못하니까. 근데 여기 와서 서로 인사도 하고 알게 되니까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김 00, 60대 여성)


“네네 저기 가다 보면 우리 집 자리 00 교회, 거기에 우리 집이 있었거든요. …(중략) (재개발로 인해) 내가 살던 마을은 없는 거죠 이제 그래도 같은 남가좌동이고 하니까 지리도 그렇고 안면도 있고 한데. 정은 있는데 교류는 없어요” (김 00, 60대 여성)


‘정은 있으나 교류는 없는’이라는 말은 아마도 도시의 오래된 주거지역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일 것이다. 30-40년 간 정주한 주민들이 많은 가재울 지역이지만 서로 얼굴을 아는 만큼의 교류는 없었다. 마을 공동체란 단순히 지리적 공간이 가깝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가 발전하고 확장되는 과정에는 지속적인 만남의 계기, 이를 가능케 하는 장소, 적절한 소속감을 부여하고 자발적 교류의 의지를 북돋는 과정이 모두 필요하다. 


“여기 나오면 좋은 사람도 만나고 운동의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좌담도 하고 그런 게 이 마을에 있다는 게 진짜 좋은 거 같아요. 개천에 나가면 사람들 볼 수는 있지만 여기는 오면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한 동네 사람들 이니까 오면 농담도 하고 좋은 얘기도 듣고” (심 00, 70대 남성)


건강해 지기 위한 공간이니 그냥 운동만 잘하는 공간으로 꾸미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젊은 세대라면 그 기능에 충실한 것이 매력일 수 있겠지만 보다 고령층으로 올라갈수록 관계에 대한 욕구가 중요해질뿐 아니라 그 관계가 운동을 하는데도 영향을 미쳐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역사회 건강 거점은 사회적 관계가 좁아지기 쉬운 은퇴 이후의 고령자가 관계를 맺고 심리적, 사회적 건강을 회복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을건강방을 통한 관계 확장의 효과


해외는 이와 같은 활동의 중요성을 보다 절실히 깨닫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은 2018년 1월 체육 및 시민사회(Sport and Civil Society) 장관을 국민의 외로움의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겸임하여 임명했다. (관련기사 : https://news.joins.com/article/22296232)  이 결정의 배경이 된 영국 내 조사에 따르면 고독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영국에서만 900만 명이며 영국의 고령자 3명 중 1명은 일주일에 단 한 번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흡연하는 수준의 해를 끼친다는 보고도 있다. 


가재울 마을건강방은 건강이라는 개인적이면서도 공공적인 목적을 함께 추구하며 관계를 형성의 계기를 마련 할 수 있으며 형성된 관계는 건강한 삶이라는 목적을 서로 지지해 주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을 보면 가재울 마을건강방에서 형성한 새로운 관계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는 평균 7.8명이었다. 


회원들의 서대문 정주 기간이 27.4년에 달하기 때문에 이미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가 많아 새로운 관계 형성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정주 기간이 길수록 새로운 관계가 더 많이 형성되었다. 정주 기간 20년을 기준으로 그 이하에서는 5.2명의 새로운 관계가, 이상에서는 9.4명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지나다니며 얼굴은 봤지만 알아갈 계기가 없어 인사하지 못했던 주민들을 마을건강방에서 만나고 관계 맺을 수 있었다. 관계란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단시간에 이뤄질 수 없고 시간이 필요하고 계기가 필요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OECD의 2016년 사회통합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27.6% 는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대상 국 중 가장 높은 수치였고 이 수치는 50대 이상에서 40%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건강방 이용을 통해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이웃이 늘어났는가’라는 질문에는 전체 40.5%가 긍정 답변(‘매우 그렇다' 13.5%, 그렇다 27%)을 했다. 건강방 내에서의 관계가 더 넓은 범위의 지역 안전망의 형성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신뢰'는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다양한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는 유용한 사회적 자본이다. 이와 관련해 '건강방 이용 후 지역에 대한 신뢰가 늘어났는가'는 질문에는 31.3%의 응답자가 매우 그렇다. 51.4%가 그렇다고 답했다.


마을 건강방에서의 주민 간의 관계는 마을건강방이라는 물리적 공간 너머로 확장되는 증거는 지역사회와 마을, 사회에 대한 관심의 증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공동체 공간운영 실태를 조사한 안현찬 등(2017)의 연구에서는 서울시의 공동체 공간이 ‘지역사회와 결부된 연계형 사회적 자본의 증가’라는 공적 목표를 달성하고 있음을 이용자들의 설문 결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즉 ‘마을활동 참여 횟수가 증가’했다 거나 ‘마을에 계속 살고 싶어 졌다’ 등의 지역사회와 연계된 주민의 활동 변화, 생각의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가재울 마을건강방 사용자들 역시 설문조사에서 ‘건강방 이용 후 마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81.3%), ‘건강방 이용 후 이 지역에서 더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78.3%)등의 응답을 해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터뷰를 통한 회원들의 목소리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소속감?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중략) 이거를 (마을 건강방)하면서 동네 일에 참여하면서 통장님도 알고, 여기 사람들도 알고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참여하면서” (윤 00, 60대 여성) 


“건강방에 가기 전 1년 동안 아예 밖에를 안 다녔어요. 처음 오는 동네인 데다 처음부터 제가 굉장히 인상을 안 좋게 받아서…(중략) 그런데 건강방 생기고 다니니까 아 왜 집에만 있냐고 홍제천도 걸으라 하고 막 다른 분들이 동네를 길도 가르쳐주시고 그러시는 거예요. …(중략) 그래서 전 너무 고맙게 생각해요. 건강도 문제지만 그렇게 이웃들을 알아간다는 게 그게 새로 인사하고 전혀 연고가 없는데 가서는 힘들거든요” (박 00, 60대 여성)


'경로당에 운동기구 갖다 놓으면 안 되나?'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사업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새로운 자원을 투입하기보다는 기존의 자원을 활용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맞는 말이다. 경로당에도 고령자에 맞는 맞춤형 기구들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가재울 마을건강방과 같은 동일한 효과를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린 이야기이다. 


우선 경로당과 마을건강방이 타깃으로 하는 대상자가 다르다. 65세 언저리의 어르신들이 경로당을 이용할까? 아무리 도심지역이라도 경로당의 주 이용자는 70중 반 ~ 80대 정도이다. 자주적 건강관리를 위한 예방사업의 경우 조금 더 타깃 계층을 낮춰 잡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경로당의 경우 새로운 참여자 유입도 쉽지 않다. 건강한 삶 만을 목적으로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번 사업 인터뷰 중에서도 경로당 내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위계관계 혹은 무료한 분위기 탓에 가기가 꺼려진다는 주민도 만나볼 수 있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이 '코디네이터'의 존재이다. 건강 거점공간을 유지 관리하며 건강생활에 대한 전반적 조언을 할 수 있는 상근자의 존재 유무는 이와 같은 공간이 잘 유지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건강방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더 열심히 활동하는데 영향을 준 요인의 순위는 1. 건강방 상근자와의 관계성 2.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건강수당 3. 건강방에서 만난 주민들과의 관계로 나타났다. 거의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수당보다 마을건강방에서 나에게 관심 가져주고 건강생활을 조언해 주며 지지해주는 사람의 존재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단순히 공간만, 기계만 있다고 해서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혹은 외출조차 안 하던 사람이 매일 습관처럼 운동하러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 아무리 바이크가 있어도 빨래 건조대로 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냥 경로당에 운동기구 넣어주고 끝내자는 생각으로는 아무 변화도 줄 수 없을 것이다. 대상자의 욕구와 삶의 패턴을 반영해 목적이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그 목적에 맞는 사람을 배치하고,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되  제대로 된 설계가 있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 가재울 마을건강방은 행정안전부 사업 이후에 다른 공공사업으로 연결되어 지속 운영되고 있다. 듣는연구소의 연구는 끝이 났지만 지금도 종종 마을건강방에 들러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우리에게는 미지의 목소리였던 고령자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6개월의 기간이 짧았지만 그 정도면 나름대로 괜찮았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Writer : 송하진 @ 듣는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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