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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듣는연구소 Feb 21. 2019

귀촌 청년에게 기본소득과 기반을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 - 2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정책이 할 일이라는 대화모임의 후기 연재 두번째입니다. '소개팅'은 지역 사는 청년들, 그리고 청년의 지역살이를 지원하려는 사람들 양 쪽의 ‘직거래 대화의 장’을 만들고자 열렸어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과 공무원, 민간 기업과 단체 50여명이 세 시간의 대화를 위해 모여들었는데, 지난 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왜 참여했는지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화는 소개팅에서 나눈 이야기를 적으려고 합니다. 참여자들이 제안하여 만든 다섯개 대화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역에 사는 청년 당사자들과, 그들이 궁금한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핫 이슈라고 할 수 있겠죠.

농촌 청년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나?

기반: 주거와 토지 등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농업: 농사짓는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일: 어떻게 먹고 사나요?

네트워크: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고 함께 지내나요?


그 날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어서 요약하여 옮깁니다. 

형식에 구애없이 자유롭게 이뤄진 토론이었고 대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까지 이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또, 대화에서 주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정리하였기 때문에 대화의 맥락이나 배경을 온전히 전하지는 못했다는 점도 참고하여 읽어주세요.


농촌청년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나?

기본소득은 남해에서 온 청년들이 즉석에서 제시한 대화 주제입니다. 참여자들이 구름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야말로 핫 이슈였습니다. 왜 이런 주제를 던지게 되었는지 남해 청년들의 이야기를 옮겨보겠습니다.

우리는 남해 거주한 지 8~9개월 정도 되었어요. 살아보니 돈이 계속 필요하더라고요. 뭘 하더라도 돈이 필요하고, 뭘 해도 돈이 없어 안 되더라고요. 수익을 위해 식당을 했는데 사업을 하는 것도 돈이 필요했어요.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이어갈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 그러한 고민의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생각했어요.
청년이 귀촌하기까지 큰 불안감을 가지고 어렵게 시도하지만, 기반 없는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어려워요. 청년이 지역에 산다는 것 자체의 ‘공공성’을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행정에서는 청년을 끌어올 실질적 고민을 하고 있고, 청년은 지역에 가고싶은 욕구가 있으니까 서로 만나면 좋겠지만 그게 충족되지 않는 것 같아요. 기혼자에 대한 지원은 있을 지언정, 비혼에 대한 지원 부족해요. 예를 들어 주소 이전을 둘이서 하면 30만원을 지원해주는데, 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법적 가족만 돼요. 저희같은 비혼 청년 커뮤니티는 대상이 될 수 없죠.
들어보니 청년이 귀촌하면 지원하는 여러가지 제도가 있는 것 같아요. 파견제도, 민간용역사업, 사회적기업, 에디터… 모두 매력있지만, 저는 기본소득이 가장 파격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기본소득제를 하면 얼마를 받나? 재원을 어디서? 국가? 지자체? 기간은? 지원은 어떻게? 증빙은 어떻게하나 등등 구체적인 내용들을요. (남해 귀촌 청년들)
 귀촌 청년 기본소득 대화 테이블 ⓒ 언서페2018 / 씨닷

이 테이블에 모인 청년들은 청년이 기반 없이 지역에 살 때에 버틸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은 기본소득이라는 강한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청년 뿐 아니라 지역 청년을 지원해 본 공무원들도 그런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죠. 지역 청년 기본소득은 과소화 되는 지역에 청년이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데에 대한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는 점도 공감을 샀습니다. 

청년 중에는 민간 재단과 지역 어른들의 십시일반으로 기본소득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

저는 지역에 살면서 민간 재단에서 기본소득 비슷한 지원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희 동네는 지역 어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지역 청년들에게 기본소득 조로 지원을해주기도 해요. 그렇게 2년간 기본소득을 경험했어요. 기본소득이 공적으로 이뤄지려면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할텐데, 행정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러려면 민간에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돼요. (지역 청년)

민간에서도 시도한 기본소득을 공적인 지원으로 확대하려면 제도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기본소득을 공적으로 지급하는 데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기본소득처럼 용처에 제한이 없는 지원 제도들도 마련되고 있는데, 여전히 이를 둘러싸고 오해와 논란이 많은 상황이기도 합니다(관련 글). 

저희도 정책을 짤 때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직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선 다른 이야기들부터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은 좀 급진적이다 보니 사용처 관련해서 논란이 있는데 해결하기 어렵고요. 여러분은 기본소득을 도입할 때 조례가 필요하다고 보나요? (지역 공무원)

지역 청년 기본소득의 제도화를 위해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한 가지 제안은, 청년들의 요구와 필요를 모아내어 제도화로 연결시키기 위한 공론화 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하냐, 어떻게 가능하느냐, 누가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요.

행정 측에 요구했을 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이를 공론화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이를 모으고 정리해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요즘 노력하고 있어요. (청년허브 실무자)


기반: 주거와 토지 등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기반 마련에 대한 이야기는 지역에 내려갔을 때 집 구하기의 어려움에서 시작됐습니다. 집 구하기, 땅 구하기 어려웠던 사례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8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집 주인분이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사는 집에는 방이 세 개가 있고, 창고가 있어요. 바닷가 바로 앞에 있어요. 그런 집을 얻은 게 행운이었는데요, 모두가 그렇게 집을 구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서 동네에 친구들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동네에 빈집들이 보이더라고요. 동네에 빈집이 많은데 쓸 수 있지 않을까하고요. 하지만 어려운 것 같아요. (청년 귀촌자)
시골은 부동산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게다가 방 구하는 어플 같은 플랫폼도 없잖아요. 도시에 집 없는 친구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시골에 있는 집을 연결해 줄 수 있나 고민이 되요. (청년 귀촌자)
이런 집은 어디에 - 영화 리틀포레스트 촬영현장 ⓒ 영화사 수박
청년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은 많지가 않아요. 저희 지역은 여성주의 운동도 하고 비교적 생각 트인 어른들이 있는 곳이예요. 청년이 온다고 하면 물적 기반도 내주고, 청년을 이해하지 못해서 크게 괴롭히는 일도 없고요.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귀촌지로 선호해서 땅값이 말도 안 되게 올랐어요. 저희 동네는 집 짓는 땅이 싼 데가 2-30만원이고 비싼 데는 50만원도 가요. 시골에서 땅값이 그 정도면 정말 너무 비싼 거죠. (귀촌 청년)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은 주거나 토지의 안정성 문제에 있는 것 같아요. 땅을 빌린다 할 때, 임대료 문제라기보다는 땅 주인 마음 바뀌는 문제인 거죠. 힘들게 애써서 유기농사를 지을 땅으로 만들어 놨는데 주인 마음 바꿔서 나가라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거거든요. 주거같은 경우에도 이 집을 나가면 아예 옆 면으로 가게 될 수도 있는 거죠. 시골에서 면 단위로 생활권이 바뀌면 이동권이 엄청 제약을 받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귀촌 청년)


청년들의 농업 진입 기반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팜프라'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참여자들은 기반 없이 내려가는 청년들을 위한 대안일 것 같다고 기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팜프라조차도 자신들이 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저희는 청년 농업 기반을 구축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집 짓고, 농사짓고, 양계 축산하고, 문화기획하고, 농업 교육도 해요. 그런데 농사 짓다가 쫓겨나고 다시 쫓겨나고를 3번이나 해서 정착까지 6년이나 걸렸어요. 계약서 없이 임대하다 보니 제대로 권리 보장받지 못해서 나와야 했고, 지금도 토지를 찾는 중이예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어떻게 하면 땅에서 쫓겨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지 행정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거였어요. 그러려면 행정과 소통하기 위한 공부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행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요구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갈리거든요. (팜프라)
팜프라촌 ⓒ 언서페2018 / 씨닷

시골생활을 하면서 청년 귀촌과 정책 간 괴리를 연구하고 있는 문화인류학 연구자는 귀촌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데에는 소유권을 가진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살펴보니까 공동체가 생길 수 있는 건 소유권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더라고요. 소유권이 없는 사람들은 계약기간 끝나면 이동해야 하니까 활동을 이어 가기가 힘들어요. 농촌으로 왔을 때 자기 집을 사서 자기 차를 굴릴 수 있다는 게 청년층은 불가능하잖아요. 외롭게 살다가 흩어지는 거 같아서 안타깝고… 공적인 지원이라도 있으면 커뮤니티가 유지가 될텐데 그것도 잘 안되니까요. 기존에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그룹들에 지원을 해야 청년 커뮤니티도 활성화가 될 수 있다고 봐요.(문화인류학 연구자)

행정에서 온 참여자들은 청년들이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겪는 어려움과 니즈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점차 더 깊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산림청은 청년들이 산촌으로 이주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하려고 하거든요. 오늘 말씀하시는 이야기 듣고 배웠는데요, 청년도 정착 초기의 청년이 있고, 2-3년 살아서 어느 정도 아는 청년이 있고, 정착한 청년이 있는 거네요.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정착에 성공하면 정부 지원을 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 들어요. 한편 청년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나 삶의 형태를 봐도 아주 다양하니까 규정화해서 정책화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산림청 산하 연구원)

이후 행정이 청년의 정착 기반 마련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적합한 지원은 어느 정도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도 있었습니다. (긴장과 꿀잼의 사이...)

저는 행정이 나서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민간에서 알아서 해야 된다는 입장이에요. 각자 없는 거에서 불려서 조금씩 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근데 요즘은 저희도 다들 형편이 힘들어서 행정 지원을 받아도 괜찮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옵니다. (일동 웃음) (귀촌 청년)
지역에서 오래 살다 보면 행정을 안 끼면 생존이 안 된다는 걸 느껴요. 무언가 일이 되게 하려면 한명의 것도 아니고 여러 주체가 있어야 되는 거죠. 관에서는 전기, 수도, 이런 인프라를 해 줘야 됩니다. (팜프라)

참여자들은 행정이 직접 청년에게 개별적으로 토지나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나 주거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나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했습니다. 

외국에서 아웃도어 라이프 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산 하나 골라서 들어가 기반을 마련해 보려고 했는데, 한국에는 규제가 지뢰밭같이 깔려 있어서 불가능하더라고요. 규제도 얼마간 완화를 해야 하지 않나요? (청년 귀촌자)
사실 산림청에서는 산에 주거지를 만드는 것을 지양하는 입장이예요. 자연인 TV 프로그램을 보고 산촌에 사는 게 숲 속에 사는 거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산림청에서는 그게 아니라 산촌 마을 자체를 활성화시키려고 하는 거거든요. 몇 십 년의 정책을 갑자기 확 풀 수는 없는 거죠. 규제 문제는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차츰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년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림청 산하 연구원)

결국 행정이 인프라와 제도를 만드는 데에도 당사자들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머지 주제 - 농업과 일,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계속 됩니다.

1화- 시골로 간 청년들의 레알 목소리

3화 - 시골로 가면 어떻게 먹고 사나요

4화 - 네트워킹, 말이 쉽지 도대체 어떻게


by 듣는연구소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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