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야외 공공공간 공론장 프로젝트 자료집
올해 듣는연구소는 공론장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특히 성북문화재단과 함께한 “성북 야외 공공공간 주민 공론장” 프로젝트에 집중했는데요. 야외 공공공간에 대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인지라, 최대한 다양하고 풍성하게 야외 공공공간에 대한 경험과 의미, 가치를 듣고자 했습니다. 성북구를 5개 권역으로 나누어 50명의 이야기를 들었고, 중요한 공간을 함께 지도에 표시하기도 했어요.
주민들이 이야기한 야외 공공공간의 의미는 “모두에게 열려있으면서 자연, 이웃, 나 자신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일상적 장소“였습니다. 공원이나 성북천처럼 뚜렷하게 특별한 자연부터, 정감어린 골목, 동네 주민들이 화분을 놓아둔 곳처럼 소소한 공간들까지 다양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나무‘, ‘담장‘, ‘벤치‘, ‘화장실’과 같은 사적이고 공적인 공간들이 우리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그 생태계를 잘 보존, 개선, 관리하는 일은 결국 커뮤니티와 또 얼마나 연결되어있는지를 손에 잡히게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볼게요. 더 자세하게 보고 싶으신 분들은 성북문화재단에서 멋지게 재편집한 기록물을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어요.
‘성북 야외 공공공간 주민 공론장 사업’은 성북문화재단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천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성북구 내 야외 공공공간 관련 이슈와 의제를 발굴하고자 제안되었습니다. 공론장을 설계하기 전,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공론장의 목표를 명료화 하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한 결과 이번 공론장의 목적은 성북구의 특성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밀집하여 살아가는 성북구의 야외 공공공간에서 ‘배제 없이’ ‘적당한 밀도’로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하려면 어떤 요소(프로그램, 정책, 캠페인 등)가 필요할지 주민들의 목소리 속에서 알아보자”
야외 공공공간은 실내 공간과 달리 골목, 공원, 자연 등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을 넘나들며 자연과 인공물 등 다양한 범주를 포괄하기에 특정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번 공론장에서는 사전에 야외 공공공간의 틀을 제시해 참여자들의 생각에 제약을 두기 보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실제 생활 안에서 야외 공공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경험하는지를 열어놓고 듣는 방식을 우선하기로 하였지요. 이에 주제별이 아닌 5개 권역별로 다양한 주민들을 모집하여 공론장을 진행했습니다.
각 공론장은 아래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성북구 주민들에게 ‘야외 공공공간’ 이란 무엇인지 서로 갖고 있는 상과 개념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공통의 특징과 차이점을 확인한다.
성북구 주민들에게 동네(권역)의 야외 공공공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존재하고, 활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경험과 사례들을 모아낸다.
정릉천 상류에 대해
“사람들 여기서 돗자리 깔고 있고, 애들이 버들치 잡고 그런 모습이 저한테 충격이었어요. 아름다워보이고. 그리고 정릉 위쪽에 가면 연탄봉사를 청년문간이랑 같이 했는데, 그런 게 저한텐 되게 신선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여기 좋아했던 건 ‘남아있어서’ 였던 것 같아요. 아파트나 무대 공연 같은 곳은 사실 제가 침범하는,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어요. 항상 미리 신고하고 조심스럽게 암암리에 해야했죠. 근데 정릉은 제가 그냥 앉으면 거기가 공연장이고 사람들이랑 대화하게 돼요. 결국 그 동네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건 결국 이야기인 것 같아요”
장위동 골목에 대해
”제가 20대이다 보니 옛 정취 느낄 곳이 별로 없었어요. 시장도 현대화, 골목골목 집이 별로 없는데, 성북구 장위동에선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골목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어요. 석관동과 장위동 분위기가 다른데 이게 장위동만의 특색이라고 생각해요. 재개발이 되지만 장위동의 옛스러움은 잘 보존이 되면 좋겠어요.”
화장실, 벤치, 작은 것들이 중요한 야외 공공공간
“나무 뿐 아니라 벤치 같은 것도. 어떤 분들은 넣어달라, 어떤 분들은 벤치 넣으면 모여서 시끄럽다, 벤치 밟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 어떡하냐고 하는데 이런 갈등과 공방은 당연한 것 같아요. 공공 장소니까. 그걸 누가 민원 넣어서 바로 집행하는 게 아니라 공론이 되어야 하는데, 공론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큰 것에 대해선 공론장이 이뤄지지만 내 집 앞, 일상적인 것에 대한 공론이 안 일어나요. 크게 보는 것도 좋지만 일상의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의견 나누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위해 화장실 개방한 카페
“카페 ‘성북동 콩집’ 앞 대로는 아이들 놀이터에요. 민간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배려해주고 계세요. 너무 더우면 콩집에 애들이 들어와있어요. 놀다가 화장실도 쓰고 거의 공공 공간이 되어버렸죠. 아이들을 위해 카프리썬을 갖다 놓으셨더라고요. 저렴하게.”
어르신들의 경험, 이동성에 따라 야외 공공공간이 다르게 느껴진다.
“나이가 먹어서 별 수 없이 이제는 가까운 데만 다녀야해요. 마트, 복지관, 병원, 치과. 우리 동네가 걸어다니기 세상 최고로 좋고요. 끝까지 종암동에서 살아야되겠구나 해요. 이전에는 종암시장에 다녔는데 이제는 못 다녀요. 다들 자동차로 외부로 나가던데 우리(노령층)는 걸어야 해요.”
골목, 담벼락, 자투리 공간의 소중함
"이런 자투리 공간들에 눈길이 가더라구요. 꼭 미용실과 부동산 앞에 화분이 참 예쁘지 않아요? 누구네 집 담벼락에 능소화 있으면 구경가기도 하고. 세레니티 아파트 구경가기 좋다면 봄에 가볼까? 궁금해요. 그런 거 철따라 구경다니는 거 좋아해요. 고려대에도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 되게 많은데, 고려대 정문 앞에 딱 내렸을 때 제일 많이 했다는 말이 ‘여기 서울 안 같애!’였다더라구요. 듣는 성북 사람은 응? 칭찬인가? 싶은데 칭찬이래요. 마천루에 스카이라인을 예상했는데, 여기는 되게 정스럽고 담벼락도 있고 다세대 주택도 있어서 우리 고향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서울살이 막 시작해서 마음 붙일 곳 없고 돈 번거 다 월세 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골목길 풍경이나 자투리 공간의 모습들이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골목이 가장 좋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지역 주민들의 손길이 가는 공간들이 지켜지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그냥 좋아
“월곡동이랑 종암동 맞닿는 데서 정릉천 하류 시작인데 청계천까지 이어져요. 여기가 저의 하루의 끝인데 제가 퇴근해서 아이랑 6시에 저녁 먹고 아이랑 청계천까지 러닝을 7km 정도, 한 시간 정도 운동해요. 여기가 사실은 제가 한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 시궁창, 하수구, 엄청 악취가 흐르고 썩은 물이 흐르던 곳인데 천지가 개벽한 거죠. 매년 업그레이드 되어왔어요. 수변을 계속 정화하는 거에요. 풀도 심고, 조명도 놓고 그렇게 매년 업그레이드가 되는데 건강도 챙기지만 여기 다니면서 좋은 건 사람들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는 거에요. 걸음이 어려운 어르신 분들도 걷고 있고, 어린 아이들은 킥보드 타고, 젊은 러너들은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그런 에너지, 그런 힐링이 있으니 매일 나가게 되는 거죠. 의무감에 나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혼자 운동하러 가기도 하고.
옛돌박물관,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 손기정 생가, 박완서의 집, 혜화문
“성북동 위에 있는 옛돌박물관. 이 근처 절들도 다 예뻐요. 좋은 절들이 주르륵 있는데요. 근데 걸어가기가 어려워요. 갈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좀 알려지면 좋겠어요. 1년권 끊으시는 분들도 많으실 정도거든요. 서울 시내가 다 보이는 뷰라서, 가면 돌들과 함께 멍하게 앉아있을 수 있어요. 그 안에서 명상하시는 분들도 있고. 젊은 친구들이 잘 모르다가 성북 야행 때 와보고 놀라더라고요.”
할머니들의 고스톱 스팟 오거리 사랑방
“삼선교 주택가 안에 오거리가 만나는 곳. 거기를 벤치랑 정자를 해놓았어요. 그 전후로 거기에 살았는데, 실제로 동네 분들이 쉬며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었죠. 저게 공공공간이 만들어지면서 크진 않더라도 분명히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이 되는 좋은 예시에요.”
주민들이 꼽은 키워드로 본 야외 공공공간은 전반적으로 ‘만남’, ‘휴식’, ‘건강’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선호하는 야외 공공공간을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 또는 자연이나 야외의 쾌적함,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소개했어요.
한편 권역별로 타 권역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키워드가 나타나 해당 권역의 특징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정릉 권역에서는 ‘시골 같은’,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과 같은 키워드가 등장했죠. 오래된 동네와 재개발 된 지역이 공존하는 장위・석관 지역에서는 ‘계속 변하는 공간(계절 개발)’이라는 키워드가 이야기 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이 지역 가로수와 기물 활용을 두고 많은 토론이 진행 된 성북・동선・돈암・삼선 권역에서는 ‘나무가 있는 공간’, ‘의자, 쓰레기’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며 지역 주민들의 논의가 필요한 요소들이 추가로 제안되었습니다. 아동, 청소년 인구가 많은 길음・월곡 권역의 경우 ‘아이가 친구와 약속하지 않아도 마주칠 수 있는 곳’으로 안전한 야외 공공공간 자체가 일종의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나왔어요.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7, 80대 주민들이 참석한 종암, 안암, 보문 지역에서는 ‘쉼터, 힘든 다리 쉬기’와 같은 키워드로 앉아 있을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곳으로써 야외 공공공간의 역할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참여자들이 제시한 키워드들을 관련있는 항목들 간 범주화 하면 야외 공공공간의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배제 없이 열려있는 공간’(종암・안암・보문), ‘일상에서 언제나 누릴 수 있는 행복’(성북・동선・돈암・삼선)과 같은 추상적인 의미와 야외 공공공간의 조건과 같은 복잡한 맥락은 누락됩니다. 이에 공론장 대화 내용을 참고하여 성북구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야외 공공공간의 의미를 야외 공공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와 이 가치를 얻을 때 일어나는 행동으로 추가적으로 분류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성북구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야외 공공공간의 의미와 여러 장소들에 대한 의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야외 공공공간은 무엇일까요? 5개 권역 두루 좋은 야외 공공공간으로 이야기 된 장소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을 수 있었어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근접성
시, 구, 마을 주민들이 적당히 관리하는 공공성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개방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달리 활용하는 다목적성
네 가지 특징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합니다. 예컨대 굉장히 잘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공간이어도 대중교통이나 보행접근성이 떨어지고, 주차 문제 등이 발생하면 근접성이 떨어집니다. 이는 개방성을 낮춰 다양한 이웃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보다는 “핫한 공간”으로 이해되면서 공간의 공공성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청년, 청소년만을 위한 ‘엑스 구장’처럼 특정 세대만 모이는 공간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는 공간의 다양성을 더욱 떨어뜨리는 순환이 일어납니다. 반면 집 근처 골목길 평상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은 화려하진 않지만 내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닐 수 있고, 가깝기 때문에 주민들이 함께 낙후되지 않도록 어렵지 않게 돌보는 공간이 됩니다. 누군가가 명확히 소유하지 않지만 아이들도 놀고, 노인들도 쉬어가고, 출근길의 직장인은 가볍게 기분을 전환하고 따뜻함을 느끼는 다양한 이웃들이 연결되는 공간이 됩니다.
5개 권역에서 두루 나온 개선점 또한 이러한 네 가지 특징과 관련된 보완사항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대개 높은 곳에 위치한 좋은 공간들의 경우 개방성과 근접성을 높여달라는 제안이 많았습니다. 벤치, 화장실, 작은 무대나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역할이 없는 버려진 공간에 다양한 역할을 주어야 한다는 제안 또한 전반적으로 두루 등장한 요구사항이었습니다.
관내 순환 버스 등 대중교통 개선 필요(개방성, 근접성)
높은 곳에 위치한 공간을 위한 접근성 고민(근접성, 개방성)
안전과 접근성은 구에서 관리하고 돌보되, 만남과 소통은 주민에게 맡기기(공공성)
벤치, 캐노피, 작은 무대 등으로 공간에 역할을 주기(다목적성, 공공성)
야외 공공공간은 다양한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하기(개방성, 다목적성)
이동약자, 정보약자도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공공간 개선하기(개방성)
고가도로와 언덕으로 끊겨있는 동과 동사이 보행권과 대중교통 접근성 확장 필요(근접성)
성북구 주민들이 이야기한 야외 공공공간의 가치와 의미를 통해 야외 공공공간은 “모두에게 열려있으면서 자연, 이웃, 나 자신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일상적 장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야외 공공공간은 물리적 공간, 소유자에 의해 정의되는 공간으로서는 하나로 특정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복합적으로 주민들의 삶에 질에 큰 영향을 주는 하나의 생태계이자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과 하천 등 지형을 결정짓는 큰 자연물과, 적당한 공공시설, 무엇보다 잘 관리된 도로와 공원, 낙후되지 않은 상권과 누군가의 집 마당 나무 등 사적인 영역까지 조화를 이루면서 유의미한 야외 공공공간의 생태계를 만들어냅니다. 이 안에서 주민들은 ‘활력’과 ‘건강’, ‘즐거움’, ‘친밀감’과 같은 가치를 획득하며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