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1박 2일 난 을이 되었다.

도도한 엄마 만들기 프로젝트

by 그리니아

언제부터인가 큰맘 먹고 친정에 가게 된다. 엄마밥 먹고 힐링하러 갔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이제는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되어서인지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다. 5월의 더위로 후덥지근한 날 큰맘 먹고 바리바리 싸들고 고속버스를 타고 친정에 갔다. 엄마는 두꺼운 진빨강 pk셔츠에 빨강 꽃무늬 치마를 입고 계셨다. 투머치 패션을 마주하며 평상시라면 우리끼리 나눴을 패션 지적 대신, 안 덥냐 물으니 춥다고 하셨다. 엄마의 체온도 예측 불가능 영역인지, 아니며 계절 감각을 잃은 엄마를 바로 잡아서라도 일일이 갈아입혀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지만 넘어갔다. 거실엔 큰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텔레비전도 켜져 있다.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유튜브 소리까지 더해지니 온기 대신 소리로만 가득한 이 공간이 더 무거웠다.



두 분의 공간은 시간을 비껴간, 오래된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차곡차곡 시간이 음영으로 짙어지고 있다. 하느님이 데생으로 명암을 그리는데 온통 그림자만 짙게 그리시는 것처럼, 조도가 바깥과 다르다. 그래서 엄마가 계절을 헷갈려하는 걸까.

아버지는 안방 흔들의자에 앉아 주무시고 계셨다. 낯선 모습이다. 앞으로 얼마나 낯선 모습을 보여주시려나. 순간 낮잠 주무시 듯 가시면 좋으실 텐데, 평온 속에서 날 선 진심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앞니에 구멍이 나셨다. 모서리가 아니라 이의 뿌리에서 드러나는 시작 부분이 잘려나갔다. 마치 맹구의 땜질 같고 기이했다. 엄마는 수치스러워하셨다. 나이 드니 별 게 다 고장 난 다고 하시며, 임시 휴무라 한동안 문 닫은 치과를 매일 찾아갈 만큼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엄마의 인사이드 아웃 속에 조종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엄마라 다행이라 여겼다. 엄마는 요즘 한 가지 일에 꽂히면 그것 얘기만 하신다. 현재 화두는 내일 성당에 가져갈 간식이다. 간식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네가 따라갈 건지, 어디로 들고 가야 하는지만 20번 넘게 물으셨다. 마지막 남은 사회생활에 총력을 기울이시는 듯, 지난주 동생이 엄마가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며 푸념을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할지 고민 끝에 앞동 사시는 엄마의 성당 친구에게 상의를 하니 그동안 번갈아 가며 간식을 챙겨 오고 있었다며 간단한 간식이 좋겠다고 언질을 받았다. 궁리 끝에 배달앱으로 컵과일을 주문하고 언니는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서 간식을 사서 내게 건넸다.


엄마는 내일 성당에 뭐 들고 가냐며 계속 물으셨고, 난 과일이 배달 올 거라고 재차 대답했다. 새벽에 내일 뭐 들고 가냐며 자는 나를 깨우셨다. 이른 아침 컵과일이 배달 오자 안심을 하시고 평소보다 30분 일찍 성당에 나섰다. 엄마는 조급한 마음에 성당 친구랑 통화를 하며 어제 한 질문을 다시 하셨다. 성당 가기 전에만 3번 전화를 하셨다. 내가 전화를 이어받아 말씀하신 그 장소에 간식을 두고 이제 간식 이슈를 종식할 수 있겠구나 했건만, 엄마는 갑자기 성경 대학 교실이 어딘지 모르겠다며 아줌마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5분 후 그분이 오셨다. 오시자마자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하시는데 그 말이 너무 진심으로 들려서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 2회 성당에 가는 게 유일한 스케줄인 엄마, 다른 문화센터는 엄마 친구분과 내가 통화할 때, 아무래도 다른 회원들이 불편해한다고 당분간 쉬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해 주셔서 이젠 사실상 다른 사회 활동은 전무하시다.


그나마 성당 활동은 오랫동안 함께한 단원들, 특히 엄마의 베프인 앞동 아줌마가 계셔서 마음 놓고 있었다. 어쩜 그분께 너무 많은 의지를 하고 짐을 떠맡겼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그분의 첫마디가 더 가슴에 찔렸다.

내게 하는 말인 것 같아서, 그간 너무 고생했을 그 아주머니께 순간 죄송하다고 조건반사로 사과가 나왔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앞으로 죄송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떠맡길 수 없겠다는 생각과 , 엄마의 마지막 사회 활동과의 결별이 머지않았음을 직시했다.

엄마를 교실로 보내고, 성전 안 어디라도 앉고 싶었다. 성당이 무지 넓어 길을 헤매다 대성전을 찾았지만,

이용제한 시간이었다. 더 헤매다 소성전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났다. 우리 엄마가 어쩌다 천덕꾸러기가 되었지, 속상한 마음과 내가 엄마 때문에 '을'이 되어 느낀 잠깐의 비굴함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운운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자식인 것만 같아 암마한테 미안했다. 요즘 엄마를 위해 '저를 하느님의 도구로 써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겠다는 마음까지 다다르지 못 한 나의 이기심이 엄마를 대하는 자세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걸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의 노년이 행복하길 매일 기도 하면서 고귀하고 흠집 없이 엄마를 돌보게 해 달라는 것은 모순이었다.

엄마가 작년에 주간보호센터를 등록하고는 하루 만에 가기 싫다고 하셨다. 늙은 노인들이 많고 유치하다며

거부하셨다. 우리 엄마가 다른 회원분들 보다 수준이 높은 것 같아서 드는 우월감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만 가보시라고 억지로 들여보낼 묘책만 떠올리며 설득하기 바빴다. 불현듯 예전에 아이 키울 때 내 모습과 상반되어 소름이 끼쳤다. 아들이 4살 때, 동네 친구들이 어린이 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심심해하며 미운 4살로 힘들게 해서 어린이 집을 알아보다가 수 십 번을 망설였다. 아이는 분리불안으로 떨어지기 싫어했고, 내가 데리고 있는 게 안심이 돼서 결국은 보내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엄마를 강제로 등 떠밀어 보내버린 거다.


이기적인 자식이라며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혼자 낮에 유튜브만 틀어놓고 계실 엄마 걱정을 덜어보겠다고 갖갖으로 한 달을 보냈다. 딱 한 달만 가보고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겨우 달랬다. 사실 한 달을 지내면 누군가와 벗이 되거나, 어느 요양보호사와도 정이 들어 달라지겠거려니 했건만, 예전의 내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간과했다. 결국 한 달 후 안 가는 것을 선택하셨다. 다행이다 싶게 엄마의 선택이 고마울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었다.


엄마와 친구분이 교실에 가시고 긴장이 더 밀려왔다. 어서 성전에 앉고 싶었다. 엄마가 건강할 때 매일 바라보며 기도드린 십자가를 마주하고 싶었다.


요즘 엄마는 간구하지 않은 걸까요? 그간 무수히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을 텐데요. 불쌍한 미카엘라 착하게 살아온 것 적금이라 여기고 잘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마 자신을 위한 기도는 드려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들어줄 게 없다면 제 모든 기도를 다 바칠게요.


기도와 원망을 오가며 한참을 바라보다 나왔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침 먹자마자 뛰쳐나와 설거지가 가득하고, 아빠와 단 둘이 있으면 신세 한탄에 엄마 험담을 늘어놓을 것이 뻔했다. 친정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여유를 부리는 저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걱정 없는 이들처럼 보였다. 직원은 혼자 온 내게 당연히 테이크아웃을 할 거냐 물었지만, 난 굳이 먹고 가겠다고 방황의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평상시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마시며 고독에 슬 苦를 더 들이켰다.



30분 정도 오버됐을 거다. 집으로 돌아가니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계시고 적막했다.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설거지가 말끔히 돼있었다. 항상 병을 주던 우리 아빠가 오늘은 약을 주시니 감동이었다. 일비일희하는 내가 너무 웃기기도 했다. 아마 평상시 아침 먹고 엄마가 허둥지둥 성당에 가시면 아빠가 말끔히 설거지를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의 방식대로 이 난관을 메꾸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빠의 하소연조차도 들어주기 싫어서 피신 간 게 미안해졌다.


그간 엄마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게 아빠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 잔소리, 밥상 타박 스트레스가 제일 독인데 아버지가 원인 제공자라고 탓을 했다. 아빠가 운동하는 모습조차도 얄미웠다. 오로지 자기 건강, 자기 안위만 챙기는 이기적인 남편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 엄마 곁에 건강한 남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달리 생각하니 감사한 일이다. 어제 낮잠 주무실 때 든 생각은 고해성사를 해야겠지.

요즘 듣게 된 '가장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이다'라는 말이 아빠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고마운 말인지 아빠는 더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오늘의 '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아이 키우면서 남에게 사과한 적 없던 내게 또 겸손을 채워주시려나보다. 엄마 때문에 을이 되었지만 엄마 덕분에 내공이 조금 쌓여가겠지. 쌓인 내공으로 우선 아빠에게 엄마를 잘 봐달라고 '을'이 되어야 한다. 달리 생각하면 남에게 하느니 아빠께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참 쉽지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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