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아 3시간전

내 허영과 헤어질 결심

중년의 테피리스트

   일요일 오후,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ott로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있었다. 까무룩 졸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 Y, 3년 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것도 영상통화로, 학교 다닐 때 이 꼴 저 꼴 본 사이니까, 번거롭지만 초점을 맞추며 전화를 받았다.      

3년, 우리 사이에 코로나가 비껴갔구나, 반가웠고, 먼저 연락 못 해 미안했다.


“가스나, 성가스럽게 왜 영상통화야?”

Y는 인근에 사는 다른 친구 C와 함께 있다고 했다. 원래 난 C와 더 친하다. 우린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만나고, 생일을 챙긴다. C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 아이 교육을 위해 연고지를 떠나, 자주 못 만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지금 C의 아들까지 셋이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내게 연락을 한다고 했다. 영상에 비친 내 얼굴울 보고

Y는 살찐 거냐며 달덩이 같다고 놀렸다. 그 사이 갱년기를 직격으로 맞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친구들은 요즘 날도 좋으니 대전으로 놀러 오라고 운을 띄웠고, 앞뒤 잴 것도 없이 덜컥 날을 잡았다.

3주 후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이것들아 인생 선배가 출정 간다. 기다려라’    

 

 다음날 C에게 연락을 했다. 어제의 상황과 C의 근황을 물었다. C는 Y가 연락을 해와서 오랜만에 만났더니

아가씨인 Y는 여전히 팽팽하고, 자기만 늙은 것 같다고 푸념했다. 심지어 이미 동네 주민센터에서 크로스핏을 하고 있는 C에게 Y는 주부도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설파를 해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조차 못했다고 했다.   


친구이지만 아가씨이고 직장 생활하면서 자기 운신만 책임지는 Y가 근 6년 만에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할지 신경이 쓰였다. 3주간의 프로젝트, 제일 먼저 할 일은 미용실 가기, 그리고 관리받는 여자의 상징인 네일아트를 떠올렸다. 받은 적이 까마득해서 어디서 받는지도 몰라 네이버를 검색하고, 수업시간 비는 틈과 맞는 곳을 겨우 물색해서 예약을 했다. 거금 9만 원을 들여서 손, 발 오가는 시간 포함 2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손톱을 당당히 치켜들고 젤로 예쁜 여름옷을 뻗쳐 입고 대전행 KTX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만남이 어색할까 걱정이 되고, 긴장돼서 피로가 몰려왔다.

Y가 역에 마중을 나왔다. 잠결에 뛰쳐나왔다고 했다. 내 눈에는 파자마만 안 입었을 뿐 대학 때 무수히 본

부스스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예전 기분이 빨리 소환되고 어색함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 피부 나이는 30대 같아서 부러웠다. 맨 얼굴로 6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오는 Y를 보며

선선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쌩쇼를 한 게 억울했지만 따질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나니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어제 만난 듯, 가식이 없는 만남에 편안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지난 3주간 내가 헛수고를 했다는 게 더 분명해져서 씁쓸했지만 좋았다.


Y가 자기 집을 숙소로 내주었다. 혼자 사는 아파트의 평수가 넓었다. 하지만  화장품이며 옷장에 걸린 옷들이 예상과 달리 단출했다. 혹시나 어딘가에 있을 허영의 기미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Y에게는 내 허영을 위안해 줄 껀덕지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Y는 예배를 보러 가고, C와 나는 근처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다. 오랜만에 함께 미사를 드리는

기분이 날씨만큼 산뜻했다. 신부님의 강론도 더 와닿았고, 성가대의 성가도 낯선 곳에서는 울림이 더해져 모든 것이 영화 속 장면처럼 완벽했다.      


성가를 부르려고 성가집을 친구랑 함께 맞잡는데, 내 손이 어울리지 않게 칼라풀했다.

그때 친구의 오므린 손가락이 보였다. 초등학교 때 손톱검사를 할 때  손톱이 긴 날 내가 했던 행동인지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친구의 오므린 손톱을 보며, 나의 허영심이 친구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해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부끄러움은 내 몫인데......      


다시 셋이 만나 근교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일정이기도 했다. C는 조심스레 쇼핑백에서 직접 손뜨개한 수세미와 집에서 남는 시간에 만들었다며 퀼트 파우치를 선물해 주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꼼꼼하고 끈기가 있어서 바느질을 잘해, 내게 퀼트 가방과 출산 전에는 아기 이불을 선물로 준 적도 있다.

그런데 아이 키우면서 여기저기 치료센터 다니느라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얽매이는 생활을 해서 퀼트를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인 걸로 아는데, 그간 틈틈이 만들어 선물로 준 것이다. 친구의 마음이 담긴 선물에 코끝이 찡했다.     


 난 치장할 준비만 했는데, 나를 생각하며 분주했을 친구의 손이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햇살 찬란한 그날,

내 허영의 실체를 마주했다. 가식 떠는 사람을 너무 싫어하고서는, 가까운 친구에게까지 가식을 떠는 게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간 내 삶에서 거추장스럽게 시간을 잡아먹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부자연스러웠던 가면과 결별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번 여름 쇼커트를 쉽게 결심했을 수도, 그리고 옷 사기를 멈추게 되었다는 것을

6개월이 지나서 되짚어 본다. 빛나는 Y의 얼굴과, C의 손이 내 인생의 모드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언젠가 얘기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날 오후를 자주 꺼내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달디 단, 층간 소음 해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