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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아 Feb 28. 2024

아낌없이 주는 나무

-끝이 아닌 끈으로 이어진 우리-

시외할머니께서 쌀을 보내셨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벌써 4년째 우리는 할머니 쌀을 받아먹고 있다. 5년 전 93세에 73세의 큰딸을 잃은 할머니의 통곡은 단장을 끊는 슬픔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가깝지 않은 문상객들도 할머니의 울음에 눈물을 훔쳤다. 흡사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우리의 슬픔은 자식을 잃은 어미 앞에서 미약해졌다. 


한동안 어머니를 잃은 비애에 할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려 슬픔이 배가 됐다. 그 후로 어버이날이나 명절 때면 할머니께 안부 전화와 용돈을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여전히 어머니 얘기에 눈물을 흘리시지만, 고맙다며 전화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시골에서 농사지은 쌀을 보내주셨다. 처음 쌀을 보내 주셨을 때는 어머니께 가야 할 쌀이 우리 차지가 된 것 같아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이걸 손자에게 보내는 할머니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 목이 메었다. 그 쌀로 밥을 지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과 어머니 생각이 날 것만 같아서 이 많은 걸 어찌 다 먹을지 막막했다. 


하지만 미리 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인간의 본성은 감성을 이겼다. 그 쌀은 밥맛이 너무 좋아 어느샌가 슬픔보다 설레는 밥 짓기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셔도 자기 살을 내어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직도 우리를 챙겨주는 것 같았다. 우린 그 쌀을 먹으며 나날이 피와 살이 늘어가고 있다. 이제는 쌀이 택배로 오면 ‘내가 요즘 입맛이 없는 걸 어찌 알고 보내셨지’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다. 어느새 할머니가 내 산타가 되었다. 어머니는 가셨어도 우리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게 든든하고 따뜻하다.

          

                      

나는 기다립니다 (저자:다비드칼리, 그림:세르주블로크)-문학동네-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처럼 어머니와 우리 관계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남은 우리를 포근하게 해 준다. 나도 누군가의 견고한 끈이 될 수 있도록, 더 너른 품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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