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끝나자 모임이 재개됐다. 만나면 똑같이 하는 말이 ‘여행 가자’였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각자 스마트폰 캘린더로 날짜를 체크하고 있다. 그간 참고 지낸 금쪽같은 여행을 왜 하필 여기서 가려고 하는지 의아했다. '우리가 그런 사이인가?'
말만 무성한 경우가 많았지만, 유독 이 모임은 빠르게 기장여행 1박이 확정되었고, 이야기가 확장되어 연차를 받을 테니 2박을 가자, 심지어 그럴 거면 해외로 가자며 급물살을 타고 2주 후 출발로 일본행이 추진되었다.
남편친구 와이프 모임, 그간의 내 사정을 속속들이 너무 잘 아는 이들, 겉으로는 친한 것처럼 TMI가 많아도 내적 친밀도는 그다지인 그녀들과 가기가 내키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날 좋은 5월 딱히 계획도 없었으니 선우정아의 ’ 도망가자 ‘를 흥얼거리며 부엌에서 도망칠 생각에 들떠있었다. 어느덧 내가 항공권을 티켓팅하고, 일정을 짜며 현지 교통편을 예약하고 있었다.
원래 난 여행을 참 좋아한다. 내가 제일 여행을 자주 하는 멤버는 엄마와 언니들, 거기서 일정 짜고, 운전, 총무, 예약을 내가 도맡아서 한다. 그래서 여행 일정 짜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너무 잘 안다. 누구 하나가 나서야만 자유여행이 진정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클레임도 감내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이 여행에서까지 내가 총대 메고 봉사하고 싶지 않았다. 난 교통편 담당만 맡고, 나머지 멤버 둘에게 역할을 지워줬다. 한 명 총무, 한 명 숙소 예약, 그녀들은 선뜻 잘 응해줬다.
그리고 각자 정보검색 해오고 가서 취합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컨셉도 목적도 없이' 공항땅이 밟고 싶어 떠난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시험 치러 가는 것 같이, 무성의하기 그지없어서인지 출발 전날에는 압박감에 악몽도 꿨다. 그때는 몰랐다, 악몽이 복선이 될 거라는 사실을......
그래도 비행기는 연착도 없이 시작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 어느덧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는 인내심이 발휘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줄곧 이어졌다. 역할을 지어주지 않은 한 명, 그 언니가 문제였다. 그녀는 이 여행에서 일조는커녕 인사치레로 건넨 모든 호의를 권리인 양 누렸다. 그 언니에게도 역할을 지어주려고 본인 아이폰으로 우리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이 찍고 싶을 때만 찍겠다고 했다. 이에 질세라 스스로 길을 잘 찾는다고 자부하길래 그럼 후쿠오카 시내 이동 때 구글 지도 담당이 되어달라 하니 난색을 표하며 또 거절당했다.
‘뭐지? 도대체 왜 우리랑 같이 여행 온 거지? 대접받으려고 온 건가?” 여행 가기 싫다고 넋두리하는 나를 설득하더니, 자기가 일본 가고 싶어 날 이용하려고 온 거였네’
첫째 날 밤 숙소에서 그 언니에게 벽 자리로 양보하고는 입에 수면 밴드를 붙이고 자자고 멤버 모두에게 건네자, 자신은 코를 골지 않는다며 주는 손을 무안하게 거두게 하더니, 밤새 그 언니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었다. 밤새 미움이 재크와 콩나무처럼 료칸 지붕을 뚫고 자라났다.
다음날 낯선 여행지에서 내 컨디션은 최악으로 종일 피로감과 긴장으로 강행군을 해야 했다. 이제는 일행이 다음 행선지에 관해 꼬치꼬치 묻는 것도, 식사 메뉴 묻는 것도 짜증이 났다. 같이 알아보자고 일러뒀건만 내게 기대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내 수고가 그 언니에게 닿는 게 아까웠다. 급기야 동갑 친구에게 “내가 집 밖까지 나와서도 ’ 뭐 먹어?'에 시달려야 하냐 “며 엉뚱한 대상에게 화를 냈다.
마치 일주일을 붙어 다닌 것처럼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와중에 그 언니는 백화점 명품관에 볼 게 있다고 했다. 명품에 관심 없는 우리 셋은 끌려다녀야 했고 명품관에서 이것저젓 해보는 그녀에게 썩소가 담긴 리액션을 쥐어 짜내야 했다. 친구라면 욕이라도 퍼붓겠는데, 애매한 관계라서 억지로 화를 눌러 담느라 스트레스가 차올랐다.
하필 그날 옮긴 숙소는 2개의 호텔방이었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그 언니와 내가 한 방이 되어버렸다, 난 조용히 동갑 친구를 불러 부탁을 하고 방을 바꿨다. 그날은 다행히 잠을 잘 잤다. 금쪽같은 마지막 날에도 그 언니에 대한 실망감이 점입가경으로 커지는 상황이 이어져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공항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아끼고, 성질을 죽이고 겨우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기보다, 이용당한 기분에, 불쾌함으로 치를 떨며 보냈다. 그녀와는 손절했지만 다른 두 명과는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체력이 떨어지면 감정적으로 변한다는 약점을 들켰지만.
예전엔 여행 가서 친구끼리 틀어져서 공항에 따로 들아오는 경우가 있다는 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여행을 해봐야 그 사람의 진가가 보인다더니, 그간 그리 붙어 다녔음에도 몰랐다. 어쩜 내가 그 밤을 함께 보내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덮을 수 있는 진실일 수도 있었겠지만. 덕분에 애매한 관계에서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있게 됐다.
사실 내게는 여행 후 손절한 무리가 또 있다. 아이 초딩 엄마 모임에서 마카오 홍콩 패키지여행을 갔었다. 그때도 내가 젊다는 이유로 총무를 떠맡았었는데, 문제는 또 둘째 날이었다. 옵션에 있는 홍콩행을 난 원치 않았는데 그들은 퍽이나 가고 싶어 했다.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데 배려와 양보는 낯선 나라에서 더 자취를 감췄다. 새벽에 무리해서 배를 타고 밤도깨비처럼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일정으로 가고 싶지 않았건만, 그 언니들은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며 강행을 주장했다.
그때쯤이 갱년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오가는 배에서 잠만 자고, 버스 안 승객들의 환호성 소리에 눈을 뜨고 본 홍콩 야경은 별 감흥 없이 차창밖에 흘러갔다. 마카오로 다시 돌아와 기진맥진한 채로 다시 한국행 비행을 하는 이상한 루트는 내 예상대로 에너지를 완전히 고갈시켰다.
여행 전 계획을 짤 때 한국 들어오면 먹기로 한 복불고기 식당도 내가 거부해서 못 가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뻗어 버렸다. 그 후로 그 언니들과 소원해지고 남은 곗돈을 폭탄 돌리듯 얼른 돌려주고 모임에서 탈퇴했다.
두 번의 여행이 손절이 이어지니 트라우마가 생겼다. 누가 여행 가자고 하면 당일치기가 아닌 이상 강아지 핑계를 대며 외박은 힘들다고 거절한다. 친한 이가 가자고 한 여행도 한달살이로 하자며 무기한 연기를 해버렸다. 타인과 외박을 하는 여행은 내 체력과 인내심이 동시에 하강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지양한다. 소중한 이를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작년 일본 여행 후, 이젠 타인과 더 가까워질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이기적인가, 나아가 수많은 손절을 쉽게 하는 내 인성에 문제가 있나 의심했다. 하지만 대학 때 같이 자취한 친구들과 여전히 잘 지내는 걸 보면, 내 인성이 문제가 아닌 걸로 나 좋을 대로 결론지었다. 이제 와서 문제라고 한들 서로서로 개조의 여지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안 보고 싶은 이를 안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고 감사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아이만 크면 여행을 언제든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체력과 인내심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여행을 큰 마음먹고 가뭄에 콩 나듯이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이제라도 내 약점을 명징하게 알게 되어 당일치기 일정이 더 피곤하다며 돌아올지언정, 내일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을걸 알기에 신데렐라 호박마차가 마법에서 풀리기 전에 돌아오기를 선호한다.
그래도 종종 ‘도망가자’ 노래가 떠오를 때는, 인내심 따위는 넣어둬도 되는 이들과의 여행만 계획한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옛 친구가 좋은가보다. 못하는 것도 늘지만 좋아하는 것도 늘어나니 샘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