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테피스트리
지난주 엄마의 정기검진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뇌일혈로 쓰러지시고 1년 만이다. 의사는 뇌혈관. 인지검사, 피검사 결과가 다 괜찮다고 했다. 나아진 게 아니라 더 악화되지 않은 것일 뿐, 1년 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우리는 1년 새 엄마가 더 나빠진 사실을 알고 있다. 엄마는 생활 전반에서 모든 게 서툴러졌고, 기억이 모래시계처럼 새어 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엄마가 낯설다. 예전에는 힘들고 아플 때 떠오르는 엄마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엄마를 떠올리면 강물에 일렁이는 모습처럼 형체도 감정변화도 제대로 읽히지가 않는다. 어떤 날은 너무나도 밝아서 남 같고, 어떤 때는 너무 노파심이 과해서 우리 엄마 같지가 않다. 엄마는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인 적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는 우직한 분이셨다. 쿨하고 쉬크했던 엄마가 이젠 너무 작아져서, 울지 않아도 약해져 있다는 것이 보인다.
요즘 엄마의 대화 주제의 8할은 어렸을 적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는 6.25 때 서울에서 오산까지 걸어서 피난 간 이야기를 너무도 생생하게 해서 깜짝 놀랐다. 백투 더 퓨처처럼 과거로 훌쩍 넘어가 어린 엄마를 공감해 주고 위로하는 금쪽상담소가 자주 열린다. 다만 같은 레퍼토리로 대화패턴이 반복되는 것만 빼면 즐거운 시간이다. 우리가 엄마를 위로해 주는 것 같지만 ,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니 우리가 내담자가 된다.
그런데 엄마의 기억 오류인지, 진심인지 헷갈리는 말이 내 명치에 걸렸다. 요즘 난 청소년기에도 겪지 않았던 비교를 당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이 방목적인 환경에서 나름 자유롭게 자랐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성장기의 추억을 단물 삼아 빼먹고 살면서 인생의 고비를 나름 잘 넘기며, 안분지족으로 지내고 있는 내게 엄마가 찬물을 퍼부으셨다.
사실 이놈의 친정 동네가 문제다. 학군으로 유명한 동네에서 35년간 이사 없이 지낸 게 더 문제다, 그때의 엄친아들이 지금은 전성기를 달리며 그들 부모의 어깨에 첨탑을 세워주고 있어서,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는 그들의 소식을 미주알고주알 전해주고 있다. 엄마의 최근 기억이 잘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 청신호라 여기고,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인 양 재미있게 들으며 영혼을 쥐어 짜내서 리액션을 해준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랑 호젓이 산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콤플렉스가 하나 있어. 크게 성공한 자식이 없다는 거"
왜 하필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당혹스러웠다.
하얘진 머릿속을 헤집고 나와
엄마께 반박 대신 회유를 했다. 아니 궁색한 위로를 한 것 같다.
”엄마, 우리 형제가 크게 잘 나가지는 않아도, 다들 안 아프고,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살면 잘 사고 있는 거 아냐!?”
아무리 성공과 건강을 대척점에 두고 얘기를 해도 엄마께 위로가 되기는커녕 설득의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열이 올랐다. 빨리 이 이야기를 쫑내고 싶어서
“엄마 행복한 게 중요해, 성공이 중요해?”
하지만 예상밖으로 3초간의 정적이 대답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성공이 더 중요하구나. 우리 엄마 속물이네.”
서로 머쓱해서 그냥 같이 웃었다.
“엄마가 니들한테 열성적으로 푸시를 안 해서 그런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해 “
문득 엄마 아빠의 불화의 큰 원인이 우리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런 내색이 없더니 이제사 왜 저런대?’ 화가 났다.
내가 몇 년 전 일을 그만 둘 때도 아직 젊은데 왜 그만두냐고, 이제 뭐 할 거냐, 뭐가 되고 싶냐에 시달렸다. 40대 중반 아줌마가 취준생의 고충을 겪었다. '엄마 딸이 지쳐서, 갱년기와 갑상선이 와서 쉬고 싶다'라고 말을 못 하고 그냥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 말을 5년이나 들을 줄이야. 그 엄친아들이 기라성 같이 잘되고, 동네 스피커가 30년 후에도 서라운드로 가동될 줄 몰랐다.
지금도 나보고 요가 강사 자격증을 땄으면 이제 뭐 안 차리냐, 강사를 안 하냐고 매번 묻는다.
“엄마 그런 거 차리면 월세 걱정에 늙고 아파. 그리고 수업하면 엄마 지금처럼 나랑 놀러 못 다녀”
‘사실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지금이 딱 좋아’
말로는 못했다.
과연 울 엄마 그때 못 날린 치맛바람이 아쉬운 걸까? 오늘도 엄마 모습이 일렁거린다. 그래도 미소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성공으로 웃음 짓게 해주지는 못해도, 엄마를 웃게 할 궁리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엄마는 웃을까, 실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