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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북이 Feb 14. 2021

STOP 공포증

휴식 앞에서 나는 무단횡단을 했다.

설 연휴가 끝나간다. 사실 휴일의 지나감이 아쉽지 않다. 나는 멈춤이 선사한 고뇌로부터 탈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쉬는 걸 두려워한다. 약속한 마감 시간이 있는 과제가 마무리 되지 않은 채 저지른 도피성 딴짓에 불안해한다. 꼭 무언가를 하지 않고 넘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하루가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나가 버릴까봐 염려한다. 나는 이런 기분이 싫어서 자꾸만 일을 만들어낸다. 마감이 한참 남은 과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리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독서 브이로그 올리기와 일러스트 인스타 업로드라는 일거리로 취미를 변장시킨다. 그러면서도 불어난 할 일 틈새로 잠깐 피어오르는 놀고싶은 욕구에 굴복한 것을 자책한다. 약속 시간까지 넉넉하게 출발했는데도 신호등 앞에만 서면 급해지는 마음에 무단횡단을 하는 것 같다. 그 이후 밀려와있는 불편한 마음이 꼭 그렇다.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밤 9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던 터다. 오랜만에 집에 온 이모와 그동안 같이 못 놀았던 설움을 풀겠다는 조카의 세상에 초대되면 생각보다 휴일의 시계는 빨리 돌아간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7시, 8시를 넘겨 조카가 잠들 9시가 다가올수록 마음은 급해진다. 미리 해놓으려고 했던 스터디 과제도 못해놓고 책도 못 읽고 일러스트 에피소드도 생각 못했는데 소희가 9시에도 안 자면 어떡하지. TV도 잠깐 보고 친구랑 카톡도 하다보니 졸려졌지만 TV도 보고 스마트폰으로 놀기만 하고 할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할 거니까 하나라도 해보고자 졸음을 참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버겁거나 해내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잠시 쉬기만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불편한 마음이 턱 걸리기 시작했다. 낮잠을 자면 낮잠 잘 잤다, 한참을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일어나서 잘 놀았다, 이제 다시 할 거 해봐야지. 이게 생각보다 잘 되지가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온 시간에 익숙해져서 당장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뭔가 내가 다른 걸 원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기는 했으니 일단은 좋은 출발인거겠지! 내일은 나를 위한 시간에 조금은 관대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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